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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일본 교토 도시샤대에서 열린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윤동주 시인의 조카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왼쪽)와 고하라 가쓰히로 총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주오사카총영사관 제공

윤동주 시인 순국 80주기를 맞이한 16일,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윤동주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윤동주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몸담았던 학교다. 학교가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건 1875년 개교 이래 처음이다. 윤동주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유족 대표로 참석해 대신 학위를 받았다.

이날 수여식 참석자들은 도시샤대 캠퍼스 안에 있는 시비에도 헌화했다. 시비에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란 그의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다. 시비는 도시샤대 출신 자이니치(在日·재일) 동포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도시샤 코리아클럽’ 회원 주도로 95년 2월 16일 세워졌다. 함께 건립에 참여했던 자이니치 2세 박희균(75) 윤동주 추모회 회장에게 당시 비화를 들었다.

1995년 재일 동포 박희균(75) 윤동주 추모회 회장 등이 모여 윤동주 추모 시비를 건립했다. 사진은 2017년 기타규슈 도시샤 모임에서 발언 중인 박 회장의 모습. 사진 윤동주추모회 제공


Q : 윤동주 시인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을 본 소감은.

A :
우선 윤동주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사랑받는다는 걸 뜻하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윤동주의 인간성이 도시샤대 건학 정신인 ‘양심 교육’과 일치하기 때문에 수여를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Q : 시비를 건립한 계기는.

A :
90년대 초는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남북 관계도 변하는 격동의 시기였다. 남·북한이 각각 연결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구상했다. 그때 떠오른 인물이 윤동주였다.

Q : 과정은 어땠나.

A :
92년 봄 도시샤대에 처음 제안했을 때 ‘졸업하지도 않은 사람을 왜 추모하나’, ‘노벨상 수상자 동상도 없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윤동주는 자이니치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다며 반쯤 체념했다.

Q : 건립에 물살을 탄 계기가 있나.

A :
94년 국내 한 지상파와 함께 윤동주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던 일본 NHK에서 “시비를 반드시 완성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시 부딪혀보자며 학교에 연락했는데 2년 전 말을 꺼내놓은 덕분인지 이번엔 총장과 학장, 이사장이 찬성을 했다. 유족 측에 시비 건립 허가가 났다고 하니까 처음엔 믿지 않았다.

Q : 이후엔 난관이 없었나.

A :
95년 1월 17일 준비위원회를 열기로 한 날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이 발생했다. 모금할 상황이 아니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사연을 접한 민단과 조선총련 등 동포 사회가 경쟁하듯 1~2주 만에 돈을 모금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16일 일본 교토 도시샤대에서 윤동주 시인 80주기를 맞이해 추도식이 열렸다. 도시샤대는 이날 윤동주 시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사진 독자 제공

시비 건립 뒤에도 도시샤 코리아클럽과 윤동주 추모회 등 자이니치 동포들은 윤동주를 기억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일본에선 윤동주의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시샤대·릿쿄대 등 그가 몸담았던 대학 출신을 중심으로 그의 시를 읽고 연구하는 모임이 결성됐다. 90년대 이후 문학 작가 고(故) 이바라키 노리코가 윤동주 시를 인용해 쓴 수필 『한글로의 여행』이 일본 교과서에 실리면서 점차 인지도가 높아졌고, 이후 도시샤대를 비롯한 학계도 윤동주의 작품과 삶에 관심을 가졌다. 2017년엔 도시샤대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하지만 동창회 등에선 여전히 “끝내 졸업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에게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윤동주(왼쪽) 시인과 후배인 정병욱. 사진 윤형주 제공

이번에 도시샤대가 명예박사 수여를 결정한 데에도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저항하지 못했던 반성과 시대적 성찰이 있었다. 도시샤는 개신교 대학이지만 일본강점기 학도병 출진 등 국가 방침을 따른 역사가 있다. 윤동주는 도시샤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43년 7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에 가담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가 광복을 6개월쯤 앞두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도시샤대는 “당시 시대 추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소중한 윤동주라는 학생을 지키지 못했다.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고하라 가쓰히로(小原 克博) 학장도 “과거 일본에 전쟁의 시대가 있었고 많은 학생이 희생됐던 역사와 그 안에 윤동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위 수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시비 안내문에 쓰인 ‘코리아의 민족 시인’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시비엔 남한과 북한을 각각 상징하는 무궁화와 진달래가 새겨져 있다”며 “윤동주 시인이 살아있다면 소망했을 것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크게 발전한 이 시점에도 한민족과 식민지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원 코리아(One Korea)’의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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