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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족에 소비되는 중국 소수 민족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먀오족 자치주 가보니
소수 민족 안 보이고 먀오족 옷 입은 한족만
'한족 유흥거리' 전락해 버린 소수 민족 문화
소수 민족 중앙정치 참여도 갈수록 어려워져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먀오족자치구에서 한 한족 여성이 먀오족 전통 신부 의상을 입고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첸둥난=조영빈 특파원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남부 구이저우성 첸둥난주에 위치한 먀오(苗族)족 자치주. 구이저우성 성도인 구이양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3시간 이동해 이곳을 찾았다. 이름 그대로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먀오족이 집단 거주하는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선 보기 힘든 먀오족의 일상적 삶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먀오족 1,000여 가구가 살고 있다는 이 마을 관광대(전망대)에 오르자,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수백여 명의 한족 관광객. 은색 장신구로 촘촘히 치장된 화려한 먀오족 전통 의상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데 바쁜 모습이었다. 먀오족 신랑·신부 의복을 입고 결혼 기념 촬영을 하는 커플도 몇몇 눈에 띄었다.

마을 골목마다 먀오족 전통 의상 대여점이 빼곡했다. 관광객과 대여점 주인 간 가격 흥정이 여기저기에서 이뤄졌다. 관광객도, 대여점 직원도 모두 한족이었다. 식당가도 마찬가지였다. 발효시킨 토마토로 국물을 내 시큼한 맛이 매력적인 쏸위탕을 파는 대형 식당이 즐비했으나 이를 맛보기 위해 자리에 앉은 사람도, 음식을 파는 이들도 한족이었다.

식당 한가운데 마련된 무대에 먀오족 전통 의상을 입은 가수와 무용수들이 올라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종업원에게 "저들 모두 먀오족이냐"고 묻자 "먀오족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먀오족 자치주에 정작 먀오족은 없고, 그들의 춤·음식·의복이 한족에 의해 '소비'되고 있을 뿐이었다.

"中 소수 민족, 빙글빙글 춤추는 연예인"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먀오족 자치구의 한 식당에서 먀오족 전통 의상을 입은 종업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손님에게 술을 따르고 있다. 먀오족 종업원도 있지만 한족 종업원이 더 많다고 식당 직원은 귀띔했다. 첸둥난=조영빈 특파원


중국에는 한족을 포함해 56개 민족이 살고 있다. 한족이 절대다수인 91%다. 나머지 9%는 좡족(1,630만 명), 후이족(1,060만 명), 만주족(1,040만 명), 위구르족(1,010만 명), 먀오족(940만 명), 이족(870만 명) 등 소수 민족이다. 30개 자치주를 이뤄 살고 있다.

중국은 당당하게 다민족 국가를 자처한다.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중국은 만주족, 몽골족, 먀오족 등 '민족 대표' 수십 명을 등장시켰다. 당시 한국인들은 한복을 입고 등장한 조선족 대표를 바라보며 중국이 '한복마저 빼앗으려 한다'고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때 중국이 세계에 발신하려 했던 진짜 메시지는 "55개 소수 민족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중국 소수 민족 문화가 '주류 한족'을 만족시키는 '관광 상품'으로 급격히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너태샤 마이클스 미국 텍사스주립대 종교사 교수는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55개 소수 민족의 문화는 그들 자치주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경제 발전과 문화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관광객 유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드루 글래드니 미국 포모나대 교수도 영국 BBC방송에 "중국 소수 민족은 언젠가부터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빙글빙글 도는 연예인이 돼 버렸다"며 "소수 민족은 중국에서 '야만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고 짚었다. 표면적으로는 다민족 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에서 '정체성 보호'를 받고 있는 듯하나, 소수 민족 실상을 뜯어보면 주류(한족)에 의해 소비되는 관광 상품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상신' 없는 먀오족 박물관

중국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치우 모사도. 치우는 중국 소수 민족 먀오족이 숭상하는 전쟁의 신이다. 그러나 구이저우성에 위치한 첸둥난 먀오족 자치주 어느 곳에서도 치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바이두 캡처


민족 정체성이 유독 강하다고 평가되는 먀오족도 예외가 아니다. 먀오족이 지금까지도 섬기고 있다는 '치우(蚩尤)'의 모습을 찾기 위해 첸둥난 자치주 안에 위치한 '먀오족 박물관'을 찾았다. 먀오족 신화 속에 등장하는 치우는 중원의 황제와 오랜 기간 전쟁을 벌인 '전쟁의 신'이다. 먀오족이 실제 치우의 후손인지 고증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최고 조상 신'으로 숭앙을 받는 존재다.

그러나 박물관 어디에서도 치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2층짜리 목조로 세워진 박물관 곳곳에는 베를 짤 때 쓰는 물레, 은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 농기구, 전래된 노랫말 등이 전시돼 있었다. 하지만 정작 먀오족의 정체성을 가장 극적으로 대변하는 치우와 관련된 전시물은 없었다. 박물관 관계자에게 치우 신 형상이 담긴 공예품 사진을 보여 주며 "어디서 볼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 관계자는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예전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다른 곳에서도 못 찾을 것"이라고 답했다. 지역 당국이 치우 신과 관련된 공예품을 치워 버린 탓이었다.

대신 박물관 관계자들은 바로 옆 공연장에서 열리는 먀오족 전통 가무 공연을 보라고 권유했다. 먀오족 정체성을 대변하는 조상 신의 존재는 지워지고, 화려한 의상을 입힌 무희들의 춤 정도가 먀오족 마을을 뒤덮어버린 듯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먀오족 자치주에서 먀오족 노인들이 곁불을 쬐고 있다. 첸둥난=조영빈 특파원


다른 소수 민족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몽골족은 관광객들에게 화려한 기마(騎馬)쇼로 소비된다. 좡족은 민요 합창, 조선족은 동북식 냉면으로 각각 소비된다. 중국은 작년 9월 먀오족의 자수 의상을 '2024 봄·여름 밀라노 패션위크'에 출품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먀오족이 긴긴 세월, 붓으로 새긴 아름다움이 패션쇼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지난해 처음으로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나의 알타이'를 방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물론 위구르족 정체성이 아니라, 중국 서부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에 초점을 맞췄다. 소수 민족의 경제·인권 수준은 날로 낮아지고 있는 반면에 그들의 문화를 차용해 만든 상품은 불티나게 팔리는 '역설적 현상'이다.

장샤오웨이 영국 셰필드대 교수는 BBC에 "소수 민족 묘사 방식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명분 강화를 위해 매우 정교하게 전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의 전통문화 계승을 장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수 민족 문화는 한족이 유흥거리로 활용할 수 있는 '하위문화'라는 프레임을 은밀히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물론 중국도 소수 민족 우대 정책을 펴 왔다. '한 자녀 정책' 예외, 세금 감면, 대학 입시 가산점 부과 등이다. 심지어 중국 형법에는 '양소일관(兩少一寬)'이라는 정책도 있다. 소수 민족 범죄자에게는 사형과 체포를 적게 적용한다는 뜻이다. 다만 이는 각 소수 민족의 독립 의지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유화책일 뿐, 실제 그들의 정치 참여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공산당원 중 소수 민족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소수 민족 고위직 비율 4%... 인구 대비 절반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에 따르면 당원 중 소수 민족 수는 2013년 595만 명, 2017년 650만 명, 2023년 759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반면에 중국공산당 상위층인 중앙위원회 간부 중 소수 민족 비율은 △2002년 7.6% △2007년 7.8%로 7%대를 유지하다가 △2012년 4.9% △2017년 8.33% △2022년 4.39%로 뚝 떨어졌다.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직 진출 비율이 전체 인구 중 소수 민족 비율(9%)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내 소수 민족 출신 간부 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부총리급 이상 고위직에 진출한 경우도 2003년부터 10년간 부총리를 지낸 후이량위(후이족), 2013년부터 5년간 국무위원을 지낸 양징(몽골족) 정도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2기 집권이 시작된 2018년 이후 소수민족 출신 고위직 진출 명맥은 완전히 끊어졌다. 심지어 1954년 이래 늘 소수 민족 출신이 맡았던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장관급)도 현재는 한족이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구이저우성 첸둥난주 먀오족자치구의 판자촌에서 먀오족 인부들이 건설 자재를 나르고 있다. 화려한 먀오족 전통 의복을 입고 관광을 즐기는 한족들과 달리,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먀오족 주민들의 삶은 고단해 보였다. 첸둥난=조영빈 특파원


주로 대도시인 한족 주거 지역과 농촌인 소수 민족 주거 지역 간 경제 격차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 31개 성·시별 국내총생산(GDP) 상위 10곳은 광둥성(14조1,000억 위안), 장쑤성(13조7,000억 위안), 저장성(9조 위안), 상하이시(5조3,000억 위안) 등 모두 '한족 절대다수 지역'이 차지했다. 소수 민족이 밀집한 윈난성(3조1,000억 위안), 광시성(2조8,000억 위안), 구이저우성(2조2,000억 위안) 등은 하위 그룹을 형성했다. 개혁·개방 시기 투자가 대도시 위주로 이뤄지며 형성된 도농 간 빈부 격차 탓에 소수 민족 다수는 여전히 상대적 빈곤에 시달린다.

좀처럼 찾기 어려웠던 평범한 먀오족 주민들은 먀오족 자치주 관광 구역 건너편 판자촌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건설 자재를 나르느라 연신 땀을 흘리고 있던 그들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고단해 보였다. 한족 관광객들이 입고 있던 먀오족 전통 의상의 화려한 자태와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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