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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의 비선 기획자로 의심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서부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재판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구속되기 전까지 사용한 수첩에 관심이 쏠린다. 이 수첩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한 500여명이 ‘수집’ 대상으로 명시됐고, 이들을 중국·북한을 활용해 ‘처리’하는 방안까지 적혀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무속에 심취한 불명예 전역자의 망상’이란 평가가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노 전 사령관이 계엄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친분을 앞세워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는 작업을 주도한 사실이 이미 확인된 만큼 철저한 수사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70쪽 분량의 ‘노상원 수첩’에는 정치권·언론계·민주노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어용판사’ 등이 ‘1차 수집’ 대상 500여명에 포함됐다. 수첩엔 ‘수거’ 대상을 A~D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A 등급에는 문 전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적혀있었다. ‘유창훈’이라는 이름도 기재됐는데, 2023년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대령→해병수사단장’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수첩엔 체포 대상자와 함께 ‘A급 수거 대상 처리 방안’이 담겼는데, ‘이송 중 사고’ ‘실미도 등 무인도와 GOP, 민통선 이북에 수용한 뒤 자체 사고 처리’ ‘GOP 상에서 수용시설에 화재·폭파’ ‘외부 침투 후 일처리 사살, 수류탄 등’ ‘확인 사살 필요’와 같은 살해를 암시하는 표현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내국인 사용 시에는 수사를 피하기 어렵다’며 ‘외부(중국) 용역업체’나 ‘북한’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비공식 접촉 시 ‘무엇을 내어줄 것’인지를 검토하는 듯한 문구도 있었다.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하거나 아예 북에서 나포 직전 격침시키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상계엄 선포 후 ‘수거 대상 처리’에 북한과 중국을 활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좌파들에 대한 신속한 재판·구속’을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최장 1년간 운영하는 방안 등 비상계엄 선포 이후 실행 방안도 담겼다. ‘헌법·법 개정’ ‘3선 집권 구상 방안’ ‘후계자는?’이라는 대목도 등장한다. 윤석열 대통령 장기집권까지 구상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차린 경기 안산시 상록구 소재 점집 앞에 지난해 12월23일 제사용품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수첩에 담긴 내용은 아무리 비상계엄이라고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에 성범죄로 불명예 전역해 별달리 의지할 곳 없이 무속에 빠져있던 노 전 사령관이 혼자 비현실적인 ‘망상’을 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단순한 망상으로 무시하기에는 노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 계획·준비 과정에서 한 역할이 너무 크다. 노 전 사령관은 민간인 신분으로 지난해 9월부터 비상계엄 선포 당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장관 공관을 20번 넘게 방문했고, 특히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3일까지는 매일 김 전 장관과 만났다. 김 전 장관은 정보사령부 수장이던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에게 “노상원 장군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고 지시했고, 이후 정보사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과 부정선거 음모론 수사를 위한 제2수사단 설치·운영 준비는 노 전 사령관이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그가 김 전 장관과 깊은 관계를 기반으로 정보사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수첩에 적힌 내용이 노 전 사령관 혼자만의 구상이 아니라 윤 대통령·김 전 장관 등과 논의한 것이라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윤 대통령의 ‘경고성 계엄’ 주장이 완전히 힘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내란죄뿐 아니라 국헌 문란을 위해 외국과 공모했을 때 성립하는 ‘외환유치죄’ 적용도 가능하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노 전 사령관은 지난달 10일 구속 기소 전까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 질문에 진술을 거부했다. 수첩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단어들이 파편적으로 적혀있고, 수첩에 나오는 ‘수집 장소’가 비상계엄 당시 실제 마련한 곳과 다른 점 등을 볼 때 이번 비상계엄과의 관련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스모킹건’ 역할을 한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과 비교되지만 검찰은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종범 수첩’은 안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 등에 배석해 직접 들은 내용 등이 날짜별로 적혀있어 증거 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졌다. 검찰은 윤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 공소장에 ‘노상원 수첩’ 내용은 담지 않았다.

검찰은 주변 인물 등에 대한 추가 수사를 통해 ‘노상원 수첩’ 작성 경위 등에 대한 파악을 계속 시도할 방침이다. 김석우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상원 수첩’ 내용과 관련해 “재판 과정에서 심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 전 사령관 측은 “노 전 사령관이 법정에서 다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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