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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 해고 노동자, 일본 원정 고용 승계 투쟁
일본 법원은 투쟁 돕는 일본 시민에 접근금지 결정
일본 기업 니토덴코의 법인 청산으로 해고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일본 오사카 니토덴코 본사 건물 앞에서 대화와 면담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의 요구에 공감하는 일본 시민들이 집회를 함께하고 있다. ‘손잡고’ 제공


[주간경향] 일본 도쿄에 사는 오자와 다카시(尾澤孝司·77)와 부인 오자와 쿠니코(尾澤邦子·74)는 지난해 한 통의 통지서를 받았다. 발신인은 일본 기업 니토덴코의 법률대리인. 니토덴코 측은 오자와 부부가 회사 대표의 자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했다. 접근금지를 요청한 거리는 무려 자택 반경 1700m. 이 일본인 부부는 무슨 일을 했길래 이례적으로 광범위한 접근금지 신청을 받은 것일까.

한국에서 온 해고 노동자들을 도왔다는 게 접근금지 신청이 제기된 이유였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의 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 한국옵티칼의 모회사인 니토덴코 측과 면담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니토덴코는 면담에 응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두 차례 회사 대표의 집을 찾았다. 오자와 부부는 일본어를 못 하는 한국인들을 대신해 대표의 집 앞에서 일본어로 의사를 전달하고, 노동자들의 편지를 대독했다. 확성기나 스피커는 쓰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는 대표를 만나려고 했던 한국인들이 아니라 이들을 도와준 오자와 부부에게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일본인들에게 소송의 부담을 지워 일본 내에서 소란이 커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회사의 의도는 한·일 노동자의 연대를 끊으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해 기업의 본거지인 일본에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자와 다카시는 말했다.

돈이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시대, 외국계 기업은 새로운 나라에 둥지를 틀기도 몸을 빼기도 쉽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어느 날 직원들을 해고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글로벌 기업에 남겨진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 대부분은 해고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비좁은 돌파구가 있다면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있는 나라에서도 연대할 동료를 만나는 것이다. 말이 통하는 한국 땅에서도 찾기 쉽지 않은 연대를 이국땅에서 찾아야 한다. 어렵사리 찾은 동료가 글로벌 기업의 전략적 봉쇄 소송에도 불구하고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물론 이 모든 조건이 충족돼도 ‘복직’이라는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옵티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글로벌 기업의 국경을 넘는 탄압과 그에 맞서는 국경을 넘는 연대를 들여다봤다. 수십 년째 외국 자본의 무책임한 철수가 반복되는 원인도 짚어봤다. 외국 자본의 ‘책임 있는 철수’를 담보하지 못하는 국내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일 양국에서 소송, 소송, 소송

일본인 오자와 다카시, 오자와 쿠니코 부부가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에서 재판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니토덴코 측은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 회사 대표의 집을 방문한 오자와 부부를 상대로 반경 1700m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손잡고’ 제공


오자와 부부는 2023년부터 일본에서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부부는 일본기업 덴소가 100% 지분을 가진 한국의 자동차 부품 제조 자회사 한국와이퍼의 해고노동자들을 돕고 있었다. 덴소가 돌연 청산을 결정해 해고됐다는 점에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처지는 한국옵티칼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자와 부부를 찾은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일행에는 최현환 한국옵티칼 노조 지회장도 포함돼 있었다.

최 지회장은 “사전 소통도 없이 불쑥 찾아갔는데 (오자와 부부를 포함한 일본 시민들이) ‘함께하겠다’고 말해줬다. 한국옵티칼에서 벌어진 일을 저보다 더 억울해했다”며 “지난해 11월 3주간 도쿄에 있는 니토덴코의 영업본사 앞에서 매일 선전전을 하는데 일본 시민 10여명이 함께했다. 그분들 집에서 도쿄 본사까지 편도로만 1~2시간씩 걸리는데도 매일 나오는 걸 보면서 싸움을 포기 못 하는 이유가 생겼다”고 했다.

LCD에 들어가는 편광필름을 만들던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은 경북 구미 공장에 불이 난 2022년 10월부터 줄곧 회사와의 대화를 요구해왔다. 일본 니토덴코는 화재 한 달 만에 법인 청산을 결정해 한국옵티칼에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폐업과 청산을 전제로 하지 않은 대화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응하지 않고 희망퇴직 절차를 밟았다.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직원 17명은 정리해고됐다.

공장에 불이 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글로벌 제조기업이 한 지역의 법인을 해산할 때, 정리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거래처에 공급해야 할 생산 물량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력이다. 니토덴코는 해고로 정리한 노동력과 달리, 생산 물량은 경기 평택에 있는 또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겼다. 새로 일감을 맡은 한국니토옵티칼은 30명가량을 신규채용하기도 했다. 회사의 이윤은 지키면서도 노동자들의 충격을 최소화할 조치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일 양국에서 이뤄지는 대화 요구에 회사 측은 전략적 봉쇄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구미 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공장 철거를 방해해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한때 집과 전세보증금이 압류되기도 했다. 현재도 노조와 노동자들을 상대로 억대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지난 1월 오자와 부부를 상대로 한 니토덴코 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회사 대표 자택 반경 200m 이내에서 면담을 요구하는 활동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일본 국회 상원 격인 참의원에서 한국옵티칼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는 사회민주당 소속 오쓰바키 류코(大椿ゆうこ) 의원은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의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한다. 단체교섭에 응해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하고, 노조나 이를 지원하는 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니토덴코 본사는 대기업으로서 성숙함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먹튀 방조하는 한국

외국 기업의 철수와 노동자의 해고가 오래전부터 잊힐 만하면 반복되는 데도, 이에 대한 한국의 대책은 사실상 없다. 오직 싸울 의지가 있는 한국 노동자들과 이들과 기꺼이 연대하는 다른 나라 시민들의 손에 이 문제가 맡겨져 있다. 특히 오자와 부부 같은 일본 시민들의 어깨가 무거웠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돌연한 철수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오자와 쿠니코와 한국 노동자들의 연대는 1989년 한국수미다전기 노동자들의 해고로 시작됐다. 그만큼 역사가 길다는 얘기다. 2020년 이후로 한정해도 일본 기업의 철수가 문제가 된 사례는 경북 영천의 다이셀코리아, 경남 창원의 한국산연, 경기 안산의 한국와이퍼,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 등 그 수가 적지 않다.

일단 일본의 국내 투자 기업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국내의 외투기업을 투자한 국가별로 분류했을 때, 일본의 기업이 2713개(17.3%)로 가장 많았다(민주노동연구원 2023년 분석). 이 문제를 오랫동안 지켜본 오자와 다카시는 하나의 이유를 추가했다. 그는 “노동조합에 대한 심한 혐오, 멸시, 적대시가 바탕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 경영자들이 거의 전쟁 전과 같은 식민지 의식을 가지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멸시하고 무엇을 해도 좋다는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에선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외투기업은 토지 무상 임대, 각종 세제 혜택 등을 받는다.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외투기업의 갑작스러운 청산 시 고용 충격을 완화할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외투기업이 폐업 등을 검토할 때 이 사실을 노동자와 정부에 알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사·정 3자가 협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니토덴코는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과 일본 시민들은 지난해 니토덴코를 한·일 양국의 OECD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제소했다.

지난 1월부터 한국옵티칼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일본 시민들과 연대하고 있는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국장은 “한국사회가 제도적인 대책을 만들지 못한 책임이 크다. 지금까지 외투 정책이 묻지마 투자 유치 정책이었다면, 앞으로는 투자 유치 단계부터 면밀히 심사하고 혜택에 상응하는 고용유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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