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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파리 화단은 우아하고 세련된 인상주의 화풍이 지배했다. 모네,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빛과 그림자가 빚은 순간을 포착해 캔버스에 담았다. 미술계는 아름다운 풍경화가 주류를 이뤘다. 미술품 수집가들은 앞다투어 인상파 작품을 사들였다. 신진 작가들은 인상파 스타일을 모방하며 성공을 꿈꿨다.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수직선과 수평선, 원색을 사용해 추상화를 그렸다. 1912년 그가 발표한 회색 나무(The Gray Tree)는 실제 나무를 기하학적 선으로 해체한 작품이다.

대표작 빨강·파랑·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Blue and Yellow)에 이르면 자연물은 흔적을 완전히 감춘다. 몬드리안 작품 초기, 많은 이들은 그가 내놓은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무를 나무처럼 그리지 않는가?’ 같은 질문이 잇따랐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어린아이도 그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깎아내렸다.

몬드리안은 이런 비난에도 “자연의 외형이 아닌 본질을 표현하고 싶다”며 본인 철학을 고수했다. 그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꿰뚫어 보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순수한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흘러 그의 과감한 도전은 20세기 추상미술의 이정표가 됐다. 몬드리안 본인은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래픽=정서희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은 남반구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 가운데 하나다. 학계는 독특한 기후와 토양 덕분에 소비뇽 블랑이라는 화이트 와인 품종 재배에 이상적인 장소로 이 지역을 주목했다.

하지만 학계와 상관없이 당시 일반 소비자들은 이 지역에 관심이 없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지역 와인은 국제 시장에서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첫 포도나무조차 다소 늦은 1973년에야 심어졌다.

1985년, 평가는 뒤집혔다.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라는 이 지역 브랜드가 첫 와인을 출시하자 전 세계 평론가들이 열광했다. 영국 유명 와인 평론가들이 이 와인이 뿜어내는 강렬한 열대과일 향과 신선한 산도에 찬사를 보냈다.

이후 말보로 지역 소비뇽 블랑은 순식간에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별안간 이 지역에 포도 농사 붐이 일었다. 1990년 370헥타르에 불과하던 말보로 포도밭은 2020년 2만8000헥타르로 75배 늘었다.

갑작스러운 성공은 오히려 족쇄가 됐다. 수많은 생산자가 클라우디 베이와 유사한 와인을 만들기 급급했다. 짜릿한 풍미에 매료됐던 소비자들도 ‘말보로 소비뇽 블랑은 획일적’이라는 평가와 등을 돌렸다. 전문가들 역시 “말보로 소비뇽 블랑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하니 어떤 브랜드 와인을 사더라도 상관없다’며 쓴소리를 남겼다.

블랭크 캔버스(Blank Canvas) 설립자이자 와인메이커 매트 톰슨(Matt Thomson)은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와인 양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위해 효모를 전공하는 생화학을 선택할 정도로 일찍 와인에 열정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25년간 뉴질랜드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와인을 만들었다. 톰슨는 “전통이나 인기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만의 규칙으로 와인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2013년 아내 소피와 함께 블랭크 캔버스 와이너리를 세웠다. 톰슨의 부인 소피는 전 세계에 300명 남짓한 ‘와인 박사’ 마스터 오브 와인(MW) 학위를 뉴질랜드 남섬 최초로 딴 와인 권위자다.

매트의 과학적 배경과 소피의 치밀한 지식이 빚은 블랭크 캔버스 앱스트랙트 빈야드 소비뇽 블랑은 전형적인 말보로 지역 소비뇽 블랑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와인은 석회암 토양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그 덕분에 흔한 열대과일 향 대신 짭조름한 미네랄리티와 백리향과 회향 같은 동양적인 허브 향이 두드러진다.

발효와 숙성에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방식을 차용했다. 500리터 크기 큰 참나무통에서 14~15개월간 숙성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빚는다. 연간 생산량은 600~700케이스(약 7200~8400병)에 불과하다. 톰슨은 “우리는 말보로 지역 소비뇽 블랑다운 신선함을 유지하면서, 복잡성과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는 일부 결실을 맺었다. 일반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이 열대과일을 중심으로 한 강렬한 향으로 즉각적인 만족감을 준다면, 이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매력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세계적 와인 평론가 팀 앳킨은 이 와인을 “말보로 소비뇽 블랑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평가했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신세계L&B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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