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율 줄었으나 규제 아직 미흡…액상 전자담배 ‘정의’는 논쟁적 현안
내년에 담배 유해성분 첫 공개…담배소송과 금연 정책 등에 효과 기대
내년에 담배 유해성분 첫 공개…담배소송과 금연 정책 등에 효과 기대
[주간경향] 흡연에 관대한 시대는 저물었다. 공공장소는 물론 학교 주변, 실내에서의 금연은 철칙이다. 담배는 1600년대 초 일본을 통해 전래해 그 무렵부터 건조한 담뱃잎을 태워 그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소비돼왔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 전매제로 담배사업이 시작됐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국가가 담배사업을 독점 운영하다가 2002년 민영화(한국담배인삼공사→KT&G)했다. 현재는 KT&G와 외국계 회사들이 담배사업을 벌인다.
이런 역사 속에 1990년대 중반까지도 담배는 ‘성인이 되면 당연하게 피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흡연의 건강피해가 널리 알려진 후 1980년대 국내에서도 금연운동이 발화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1984년 금연운동을 시작했고, 1988년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설립됐다. 21세기로 넘어온 후로는 보건당국이 담배규제를 강화했다. 담뱃갑 경고그림·경고문구의 강화, 담뱃값 인상, 금연구역 확대 등의 정책이 추진됐다. 그 결과 흡연율은 크게 감소했다. 2023년 기준 한국 성인의 현재흡연율은 19.6%.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향조사 기준으로 1998년 35.1%에 비해 15.5%포인트 감소했다. 남성 성인 흡연율은 1998년 66.3%에서 32.4%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의 성인 흡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6%) 수준이다. 흡연율을 확 떨어뜨린, 한국의 금연정책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담배 판매 마케팅, 신종담배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각심이 부족한 실태라고 지적한다.
■전자담배는 덜 유해할까
질병청이 매해 수행하는 국민건강영향조사에서의 흡연율은 일반 궐련담배를 기준으로 조사한 것이다. 질병청이 2019~2023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담배제품(일반담배 궐련형+전자담배 액상형·궐련형) 현재사용률은 2023년 22.2%로 5년 전(21.6%) 대비 0.6%포인트 증가했다. 일반 궐련담배 현재사용률은 37.4%에서 2023년 36.1%로 대비 1.3%포인트 감소한 반면 전자담배 현재사용률은 5.1%에서 8.1%로 3.0%포인트 증가했다.
‘전자담배는 일반 궐련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인식이 전자담배 사용률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에서는 전자담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담배에 대해 일반담배와 동일한 규제정책을 이행하도록 각국 보건당국에 권고하고 있다. 정부도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21년)에서 전자담배 규제 계획을 밝혔다.
지난 2022년 10월 국내 전자담배 사용자 집단 흡연인권연대 측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전자담배가 일반 궐련담배보다 건강을 덜 해치며 전자담배를 니코틴 대체제 또는 금연보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건강증진개발원이 제작한 담뱃갑 경고그림과 금연광고로 인해 흡연권, 건강권, 평등권, 명예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법원은 지난해 2월 21일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피고에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제적으로 공인되거나 과학적 검증에 기초하여 건강에 덜 해로운 담배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정부에서 국민에게 건강에 덜 해롭다는 이유로 권장할 수 있는 담배 제품 역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또 전자담배의 중독성과 건강 위험을 설명하는 담뱃갑 경고그림과 금연광고 제작 행위는 사실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길용 건강증진개발원 금연정책팀장은 “그동안 밝혀진 과학적 사실, WHO의 권고, 정부가 그동안 추진한 정책들을 종합해봤을 때 전자담배에 대해서도 보건당국이 사람들의 건강 위험을 줄이기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정부로서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흡연율을 낮추겠다(성인 남성 흡연율 25%까지)는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나 건강증진개발원이) 여러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고, 신종담배를 포함해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책 수단을 활용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최근 가장 논쟁적인 현안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정의해 동일하게 과세·규제할 것인가이다. 담배사업법상 연초의 잎을 원료로 사용하면 담배로 본다. 전자담배도 원료를 연초의 잎을 사용하면 규제 대상이 된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주로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사용해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 액상형은 청소년들도 접근이 용이해 논란이 되고 있다. WHO는 2023년 12월 액상형 전자담배가 초래할 중독 위험과 유해성,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는 마케팅 등에 대해 국가 단위의 시급하고 강력한 규제 행동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 콜롬비아를 제외한 35개국에서 합성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를 담배에 준해 규제한다.
지난해 11월 합성니코틴 원액에 유해물질(발암성·생식독성 등)이 상당량 존재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복지부 연구 용역 최종 결과가 나왔다. 이에 기획재정부가 합성니코틴을 담배사업법상 ‘담배’에 포함해 규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정했다. 지난 2월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합성니코틴을 규제하기 위해 담배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논의됐으나 액상 전자담배 업자들의 생존권 문제가 거론되면서 통과되지 못했다. 전자담배 총연합회 측은 합성니코틴 규제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연합회에 속하지 않은 액상 전자담배 판매업자들과 입장이 다르다.
서울 종로구 금연구역 인근 골목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하반기 담배 유해성분 공개, 그 영향은
‘기업 영업기밀’로 감춰져 있던 담배의 유해성분이 일반에 공개된다.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6일 ‘담배 유해성 관리법’(2023년 10월 제정)이 올 11월 시행됨에 따라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WHO에 따르면 담배는 4000여가지 화학물질과 70종이 넘는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타르, 니코틴,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클로라이드, 비소, 카드뮴 등 8종 성분만 담뱃갑 포장지에 표기해왔다. 이 법이 시행되면 담배 제조업자 및 수입·판매업자는 판매 중인 담배에 대해 법 시행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유해성분 검사를 검사기관에 의뢰해야 하며, 이후 2년마다 해당연도 6월 말까지 검사를 의뢰해야 한다. 이후 검사 결과서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식약처장에 제출해야 한다.
식약처장은 매년 12월 31일 시판 중인 담배의 유해성분 정보와 유해성분별 독성·발암성 등 인체에 미치는 정보 등을 식약처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법 시행일 일정에 맞춰 내년 하반기에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유해성분 공개 범위와 방법은 담배유해성관리정책위원회에서 정한다. 당국과 소비자단체 등은 유해성분이 공개되면 흡연의 건강피해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고 담배소송, 금연정책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법은 한국이 WHO 담배규제기본협약을 비준한 지 18년 만에,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10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담뱃세를 걷는 기획재정부가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담배 판매를 국가가 허용하고 담뱃세를 걷으면서, 담배를 규제하거나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는 상황이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담배의 유해성분이 충분히 알려졌는지는 더 다툴 필요가 있는데 일단 개인의 자유 선택을 존중하지만, 국민 건강에 유해한 것을 최소한으로 막는 것 또한 국가 책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법이 시행되면 담배의 유해성을 일반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전달해야 하며, 그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어떻게 실효성 있게 유해정보를 전달할지 추가로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 금연정책은 성공적인가
정부가 금연정책을 확대하고 있지만, 담배사업법이 있는 한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대학원장(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은 “금연운동협의회에서 할 일이 줄어들 정도로, 공공영역에서 여러 가지 금연정책이 추진되면서 흡연율을 낮추고 질병 부담을 감소시키는 성과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근본적인 담배 문제 해법은 아니다. 담배는 유해성은 물론 중독성 측면에서 마약과 다름없다. 금연정책을 강화함과 동시에 담배의 제조와 유통을 보호하고 양성하는 현행 담배사업법을 폐지하고 마약을 마약관리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듯이 ‘담배관리법’을 제정해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관욱 덕성여대 인류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 기준에 맞춰 현행보다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한다면 담배가격을 8000원~1만원까지 인상해야 흡연의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며 “누구나 알듯이 담배는 세수 확보원이다. 보건당국이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정책을 추진하고자 해도, 가격을 너무 올리면 담배 판매량이 떨어질 것이기에 재정당국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편의점에서 가장 눈에 잘 보이는 판매대에 담배를 팔고 있고 흡연자 유입이 매우 효과적인 광고를 하고 있다”며 규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흡연은 이미 유해하다는 것이 알려져서 선택한 사람이 건강 문제를 소홀히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퍼지면서 신종담배, 청소년 흡연, 과소 집계되는 흡연율 등의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표면화하지 않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