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일부 탈환했지만 전 면적의 19% 상실
장기전 피로감에 국민 과반 “평화 협상 지지”
장기전 피로감에 국민 과반 “평화 협상 지지”
게티이미지뱅크
개전 후 3년이 다 돼 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종전의 분수령에 도달했다. 자신의 힘으로 즉각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취임 직후부터 교전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각각 관세 부과나 지원 중단 등을 시사하며 종전을 압박했다. 결국 지난 1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연쇄 통화로 종전 협상의 물꼬를 텄다.
푸틴과 젤렌스키는 저마다 요구 사항은 다르지만 대화할 의지를 드러내며 협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전쟁 피로감이 높아진 양국의 여론조사에서도 평화 협상을 지지하는 비율이 우세하다. 어느 때보다 높아진 협상 기회를 놓치면 소모적인 장기전으로 인한 양측의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개전 초반 “72시간이면 끝난다”는 말이 나왔던 전쟁은 어느덧 오는 24일이면 딱 3년이 된다. 전장에서는 여전히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 19% 상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산하 밸퍼과학·국제관계센터는 개전 첫날부터 지난 12일까지 양국의 피해 현황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영토 손실 규모는 약 11만3117㎢에 달한다. 전쟁 초기 한때 14만㎢까지 빼앗긴 영토를 일부 탈환했지만 여전히 많은 땅을 러시아군에 빼앗긴 상태다. 케네디스쿨은 “우크라이나가 잃은 영토는 전쟁 전 면적의 19%에 달한다”며 “이는 미국 오하이오주와 거의 동일한 면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러시아의 영토 손실은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에 처음으로 본토를 기습당한 서부 쿠르스크주 일대에서만 발생했다. 양국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무렵부터 북한군까지 전투에 가세한 쿠르스크 일대에서 러시아가 수복하지 못한 영토는 448㎢다. 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7.5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다만 미국 등 서방국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손실 규모는 전사자와 중상자를 합해 40만명으로, 러시아군 손실 규모(70만명)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실종된 병력은 러시아군 4만8000명, 우크라이나군 3만5000명으로 파악됐다. 또 우크라이나군은 1만1786대의 러시아군 전차·장갑차를 파괴하는 동안 3910대만을 잃었다.
반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피해 규모는 우크라이나가 훨씬 크다. 우크라이나에서 1만234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02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피란민의 경우 전쟁 전 인구 4400만명 중 23%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중 650만명은 전란을 피해 유럽 주변국 등 해외로 이주했고, 370만명은 고국에서 실향민이 됐다. 러시아에선 민간인 사망자가 387명으로 우크라이나보다 적지만, 정치·경제적 사유로 해외로 떠난 이주민이 80만명이나 된다.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은 전쟁 전보다 22.6% 하락했다. 기반 시설 붕괴도 심각하다. 케네디스쿨은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 수요 56기가와트(GW) 중 64%인 36GW를 책임지는 시설이 파괴됐거나 러시아군에 점유됐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2월 40%였던 전력 시설 손실률이 1년 새 급증한 것이다.
반면 러시아 GDP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5.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개전 첫해 서방의 자금 동결과 해외 기업 이탈로 역성장했지만, 전시경제 체제를 가동하고 중국·인도 등 비서방국에 원유를 헐값에 팔면서 경기를 부양했다. 러시아는 국제사회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다른 국가 선적으로 운영하는 ‘그림자 선단’에 원유를 실어 해상에서 판매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장기전으로 누적된 피로감은 평화 협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높이고 있다. 케네디스쿨은 “평화 협상을 지지하는 여론이 러시아에서 61%, 우크라이나에선 51%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 협상 지지 여론은 이미 전쟁 1000일을 넘긴 지난해 11월 갤럽 조사에서도 52%로 절반을 넘었다.
협상 속도 내는 트럼프 속내는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쏟아부으며 러시아를 압박했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종전 협상 중재에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16일 진행되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키스 켈로그 특사를 파견해 종전 협상의 밑그림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 회의에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참석한다.
켈로그 특사의 보폭은 뮌헨안보회의 이후에도 넓어진다. 유럽 주요국을 거쳐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할 계획이다. 다만 모스크바 방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켈로그 특사의 이런 행보는 유럽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푸틴과 젤렌스키에게 제시할 선택지를 구체화하고 협상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트럼프의 복안으로 해석된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바라는 것은 자원과 광물이다. 젤렌스키에게 종전 이후 안보를 볼모로 희토류 등 전략 광물 개발권 파트너십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5000억 달러 가치의 희토류를 원한다고 이야기했고, 그들은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희토류와 석유, 가스 등 매우 가치 있는 자원을 가졌다. (전쟁 지원에) 수천억 달러를 쓴 우리는 그 돈을 안전하게 지키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