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 관세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EP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각 나라별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대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는 한국은 상호관세만 적용할 경우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단순 관세뿐만 아니라 수입을 제한하는 비관세장벽도 살피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농축산물 수입과 플랫폼 규제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상품, 평균 관세율 1% 미만… 공산품은 ‘0′
14일 정부에 따르면 상호관세는 기본적으로 상대국이 자국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만큼 자국의 관세를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현재 유럽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유럽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럴 경우,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10%로 상향해 비대칭적인 관세 구조를 조정하겠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이다.
한국은 FTA를 체결한 이후 미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대부분 철폐한 상태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공산품의 관세율은 상호 0%이다.
현재 관세가 남아 있는 분야는 농축산물 일부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1.2~2.6%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미국은 한국산 쇠고기에 대해 3.5%의 관세를 부과한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는 내년부터 철폐될 예정이다.
낙농품은 우리가 미국산 제품을 수입할 땐 1.8~2.7%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미국이 한국산 제품을 수입할 땐 종량세로 kg당 11.5~30.2센트를 부과하고 있다.
채소·과일류는 미국산 제품을 수입할 때 1.8~9.5%의 관세가 붙는다. 우리 농산물을 미국으로 수출할 땐 관세가 없다. 반대로 화물차는 미국산 제품을 국내에 수입할 때 관세가 없지만, 한국산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엔 25%가 붙는다.
기획재정부는 “한미 FTA가 2012년 3월 발효됐고, 현재 대미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지난해 기준 0.79% 수준”이라며 “연도별 양허 계획에 따라 올해는 관세율이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 간에 관세 수준이 매우 낮으면서 상호 관세 조치로 한국산 상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이 급등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부 내 평가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가격 할인 행사 중인 미국산 소고기를 구매하고 있다. /뉴스1
농산물 검역·플랫폼 규제 등 대미 협상서 풀어
관건은 비관세 장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 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각서에 서명하면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에게 상대국의 관세와 함께 비관세 장벽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관세정책에 대해서 “수입 정책, 위생조치, 무역에 대한 기술적 장벽, 정부 조달, 수출 보조금, 지적 재산권 보호 부족, 디지털 무역 장벽, 정부가 용인하는 국영 또는 민간 기업의 반경쟁적 행위 등을 포함해 정부가 부과한 모든 조치와 정책, 비금전적 장벽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율 정책과 임금 억제 정책,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을 불공정하게 제한하는 관행을 검토하라고도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부품(ERC) 인증 규제, 환경부의 수입차량 무작위 검증 절차를 무역장벽으로 꼽은 바 있다.
이 외에도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수입 승인 절차, 수입 쇠고기 연령(30개월 미만) 제한, 농산물 수출 검역 지연 등 농축산물 수입 제한 조치도 언급했다. USTR은 외국 콘텐츠 공급자들이 한국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네트워크 사용료(망 사용료)를 내는 것도 ‘반경쟁적 제도’로 꼽았다.
러트닉 지명자는 상호관세와 관련해 “국가별로 다루게 될 것”이라면서 “이 문제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연구는 4월1일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4월부터 정책을 시행할 기반을 3월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발표한 상호관세 조치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은 당장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비관세장벽으로 언급한 문제에 대해선 상호 입장을 확인해가며 대응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