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과 김용원, 남규선 상임위원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2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권고를 하는 안건을 의결한 데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 보편적 인권 향상에 힘써야 할 인권위가 인권 문제도 아닌 안건을 상정하고 내란 12·3 비상계엄을 일으켜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받는 윤 대통령 구명에 앞장선 것은 “인권위의 본질을 흔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11일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이 인권위 심의 범위에 속하는 ‘인권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현재 헌재 심판 자체가 특별히 인권 침해적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인권위가 개입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이런 상황은 윤석열 개인을 구하려는 목적이지 인권위의 인권 보장 책무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인권위원을 역임한 김수정 변호사는 “안건에 찬성한 위원들의 발언이 인권위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인권위법상 인권위가 다뤄야 할 안건이 있고 독립성을 지키면서 국민의 인권을 수호하고 옹호해야 하는데, 이런 안건을 상정한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개인이 아닌 ‘헌법기관’으로서 탄핵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 문제와 큰 연관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은 개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현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서, 국가기관이 내란을 일으킨 것에 헌재가 절차를 진행 중인 것”이라며 “인권위가 기관인 대통령에 관해 ‘탄핵심판에서 방어권을 보장하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은 “헌재에서 진행되는 탄핵 재판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 남용의 문제”라며 “인권 문제도 아닌데 어떤 재판을 먼저 하라는 등의 주장은 인권위에서 논의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원회에서 원민경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남규선 상임위원·소라미 비상임위원(왼쪽부터)이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결의 철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재에 인권위가 이러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재판 관여·권한 침해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 교수는 “인권위는 인간의 존엄과 기반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지, 헌재에 이런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은 기관에 대한 간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 내에서도 반발과 비판이 터져나왔다. 남규선·소라미·원민경 인권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독립해 인권침해 업무를 수행해야 할 인권위의 본질인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위법·부당하다”며 “인권위의 권한 범위를 월권한 것으로서 법원·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 방어권 안건 의결 철회를 촉구하고, 안건에 동조한 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위 직원들은 호소문을 내고 “안건에 찬성한 위원장과 위원들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했다. 인권위를 망치러 온 파괴자들”이라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건을 통과시킨 인권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철저하게 내란수괴를 옹호하는 안건”이라며 “이를 지지하는 극우세력에 메시지를 주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전날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상정했다. 전원위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윤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안건이 재적 위원 10명 중 찬성 6명(안창호·강정혜·이충상·이한별·한석훈), 반대 4명(남규선·김용직·소라미·원민경)으로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