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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의 커넥션(32)
인공지능 경쟁력 원천은 다양한 연구 생태계
생성형 인공지능 판도에 격변의 바람을 몰고 온 중국 딥시크 웹사이트의 첫 화면.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가장 잘 적응한 종이 살아 남는다.”

-찰스 다윈(1809~1882)-

정보는 경쟁으로 진화한다. 과학 정보는 가설로 구현되어 학문 생태계에서 경쟁을 벌이고, 기술 정보는 상품으로 구현되어 시장 생태계에서 경쟁을 벌이게 된다. 모든 정보 진화의 원형은 유전 정보의 진화다. 유전자에 담긴 생명 정보는 생물로 구현돼 자연 생태계에서 경쟁을 벌인다. 환경이 지속되면 최적으로 진화한 생물 종이 생태계를 지배한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이 닥치면 기존의 승리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생명 에너지가 흘러 넘쳤던 중생대는 거대 공룡이 생태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유카탄 반도에 운석이 떨어져 태양이 수만년 동안 약해지자, 거대 식물이 죽고, 초식 공룡이 죽고, 육식 공룡이 죽는다. 중생대를 지배한 힘과 크기가 운석이 떨어지자 치명적 약점이 된 것이다. 대신 공룡에 억눌려 있던 작고 약한 생물은 살아남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며 환경 변화를 이겨낼 다양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양이 뜨자 살아남은 포유류는 생태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이런 운명의 교차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진화다. 어제의 승리자는 내일의 패배자, 어제의 패배자는 내일의 승리자가 된다. 정보 진화에서는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이다.


연휴 직전 중국 딥시크(Deepseek)가, 미국의 공룡 기업들이 주도하는 인공지능 생태계에 운석처럼 떨어진다. 그 충격파로 인공지능 하드웨어를 독점 공급하는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만에 17.52% 폭락해 880조원이 증발했다. 하지만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충격은 의구심으로 바뀌고 있다. 기술 차원이든, 투자 차원이든, 아니면 호기심 차원이든 딥시크의 진실은 흥미롭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소동을 좀 더 거시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누군가의 위기는 누군가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 자원을 투입하며 이끌어 나가는 인공지능 생태계가 중국 스타트업이 던진 돌멩이 하나에 요동을 치는 것일까?

2012년 11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챗지피티 등장 이후, 인공지능 생태계는 거대언어모델이 지배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뇌와 학습이 필요하다. 인공 지능의 두뇌는 심층신경망, 학습은 심층신경망 내부 연결을 데이터로 다듬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을 똑똑하게 하려면 심층신경망을 키우고 학습을 많이 시키면 된다. 이 모든 것은 컴퓨터 하드웨어가 결정한다. 하드웨어의 준비에도 천문학적 자금이 투자되고, 학습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도 치솟고 있다. 이제 똑똑한 인공지능 개발은 머니 게임이다. 최신 챗지피티는 1년 동안 훈련을 위해 천억달러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하드웨어 투입으로 얻는 지능의 상승 폭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딥시크가 등장한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이디오그램’에 “미국과 중국의 국기를 배경으로 두 나라간 인공지능 기술 경쟁을 묘사해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폐쇄 전략의 미국에 맞선 중국의 ‘공개 개발’ 역공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경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하드웨어와 기술, 중국은 개발 인력과 데이터 확보가 장점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최신 하드웨어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하드웨어가 무기와 동일한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전 세대의 성능과 용량이 뒤떨어지는 낡은 하드웨어로, 최신 하드웨어를 마음껏 사용하는 미국 기업의 인공 지능에 필적하는 딥시크를 만든 것이다. 그것도 훈련 기간은 6분의 1, 비용은 20분의 1로 충분했다고 주장한다. 말 그대로 달러를 태워가며 인공지능 생태계를 지배하던 빅테크 기업들에 가성비의 충격파가 밀어닥치는 것이 당연하다.

딥시크는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였다. 먼저 계산의 정밀도와 연산의 매개변수를 대폭 줄여 하드웨어 요구량을 감소시켰다. 또한 단어가 아닌 문장 단위로 처리하고, 복수의 전문 지식 알고리즘을 중간에 삽입해 매개변수의 양을 실시간으로 조절하였다. 이 방법들은 새로운 마법도 아니고, 세상에 공짜도 없다. 공부에 요령을 피우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딥시크의 정확도는 최신 인공지능에 비해 떨어진다. 또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도 없다. 대신 딥시크는 이미 알려진 방법들을 총동원해 학습과 지능의 균형을 조절하였다. 성능이 살짝 떨어져도 저렴한 가격의 서비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다. 시장은 가성비를 좋아한다.

물론 딥시크의 주장을 아직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거기에 기존 상업 데이터를 대량으로 추출해 비용과 시간을 단축시켰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챗지피티로 딥시크를 훈련시킨 것이다. 좌우간 진실은 시간이 흐르면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딥시크 개발진이 프로그램 소스를 MIT 라이선스로 투명하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 자유로운 지적 재산권으로 누구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뜯어볼 수 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조하거나 서비스를 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이 숨기던 장사 밑천을 오픈한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 생태계를 열린 개발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이 딥시크 충격파의 핵이다. 미국에 의해 하드웨어 제재를 받고 있던 중국이 MIT 라이선스를 이용해 판을 엎으려고 흔드는 셈이다. 공개 개발을 통해 성장한 미국의 기업은 폐쇄 개발로 돌아서고, 폐쇄 개발로 따라가던 중국 기업은 공개 개발을 선택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8일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 기념 강연을 하고 있는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 그는 같은 회사의 존 점퍼와 함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재단 유튜브 갈무리

인공지능 진화의 두 축 ‘환경 변화와 다양성’

지난 20세기 냉전까지 패권 경쟁의 지배원리는 무력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무력을 투사하는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과학 기술 경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고, 자본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21세기 막이 열린다. 세계화 시대에는 군대가 아닌 기업이, 전쟁터가 아닌 시장에서, 총칼이 아닌 상품과 서비스로 싸우는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미래 기술의 기반이 될 인공지능으로 기술 경쟁 초점이 모이고 있다. 작년 노벨상은 세계화 시대 패권 경쟁의 핵심이 인공 지능 기술에 있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물리학 수상자인 제프리 힌턴은 물리학자가 아니라, 인공지능의 두뇌인 심층신경망 연구를 이끈 컴퓨터 과학자다.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허사비스 역시 화학자가 아니라, 우리에겐 알파고로 친숙한 인공지능 개발자다. 노벨상 위원회가 기성 학계의 논란을 감수하고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는 수상을 결정한 것은, 인공지능이 인류의 집단 지성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벨상에 컴퓨터 분야가 없는 것은 노벨이 살아 있을 때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역사가 짧지만, 컴퓨터는 어떤 분야보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반세기에 불과한 인공지능 연구 개발의 역사에는 두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 이때는 연구 환경이 꽁꽁 얼어붙었다. 학계에서는 인공지능이 금기어가 되고, 관련 연구비는 완전히 말라붙었다. 이 시기에 인공지능 연구를 한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제프리 힌턴은 인공지능 연구의 냉탕과 온탕을 평생 견뎌야 했다. 구현을 해야 증명이 되는 공학 분야에서, 구현되지 않는 기술에 대한 믿음을 평생 지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그는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두뇌의 모방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드웨어가 발전하면서 그의 믿음은 심층신경망으로 구현된다.

인공지능의 진화도 환경 변화와 다양성으로 진행된다. 연구 생태계 환경의 조성에는 연구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구비를 움직이는 것은 대중의 관심이다. 대중의 관심이 올라가면 연구비가 풍부한 해빙기를, 실망은 혹독한 빙하기를 부른다. 소수의 연구자들은 빙하기를 겪으며 다양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 결과 가시적 인공지능이 구현되면 대중의 관심이 올라가면서 해빙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풍족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대중의 관심 분야로만 몰리면 다양성이 줄어든다.

그러다 해빙기를 이끈 아이디어의 한계가 오면, 기대는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한다. 그럼 다시 빙하기로 들어간다. 이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연구 환경 변화는 개별 연구자에게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전체 인공지능 생태계의 진화를 위해서 환경 변화는 필수다. 만약 원시 세포의 등장 이후 지구 환경에 변화가 없었다면 현재 지구에는 세균만 득실대고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생태계의 다양성은 이제 연구를 시작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싱싱한 머리에 들어 있다. 픽사베이

연구 다양성 없애버린 ‘과학 카르텔 척결’ 정책

진화가 일어나려면 다양성도 중요하다. 생물 다양성이 없다면 지구 생태계는 반복되는 환경 변화를 버티지 못하고 소멸되었을 것이다. 인공지능 생태계에서도 다양성이 중요하다. 인공지능 연구의 주도권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간 상태다. 현재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큰 모델 더 빠른 하드웨어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진 거대 기업이 승리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공룡의 멸종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딥시크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인공지능 생태계의 지각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상황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궁지에 몰린 중국이 딥시크를 공개하는 바람에, 미국이나 중국 정도만 가능했던 규모의 경쟁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뒤꽁무니만 쫓아가면 새로운 기회는 다른 곳으로 날아갈 것이다.

현재의 지배원리를 벗어난 다양성에서 새로운 지배원리가 등장한다. 인공지능 생태계의 다양성은 이제 연구를 시작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싱싱한 머리에 들어 있다. 미국의 수출 제재로 국지적 생존 압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던 2023년의 중국에서 한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설립되었다. 이 설립자는 위기 상황 돌파를 위해서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인공지능 개발 경험이 2년을 넘지 않는 젊은 개발자만 뽑아서 딥시크를 개발한다. 하지만 이 시기 우리나라는 중세 암흑기처럼 정치가 과학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과학 카르텔 척결이라는 구호가 과학계를 휩쓸며 다양성을 소멸시켰다. 젊은 과학자들은 굶지 않기 위해 연구 생태계를 떠나야 했다. 작년 실업수당을 신청한 젊은 과학자가 2만명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인공지능 패권 경쟁의 변방으로 밀려난 우리나라에서도, 제2의 제프리 힌턴이 등장하길 기대라도 할 수 있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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