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암표상 설치는 공연장
최근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업자들의 매점매석 때문에 인기 공연의 정상적인 티켓 예매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최근 암표상들의 타깃이 됐던 조성진, 임영웅, 변우석(왼쪽부터). [중앙포토]
5일 한 클래식동호인 카페에 ‘암표 신고할 수 있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12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경기필의 협연 티켓을 못잡은 한 팬이 정가 8만원 짜리 VIP티켓 상당수를 암표업자들이 당근마켓에서 40만원에 팔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지난해 5월 70대 모친을 위해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구입한 A씨도 정가 18만7000원짜리 티켓을 80만원에 샀다. 7월에 ‘선재 업고 튀어’로 상종가를 친 배우 변우석의 팬미팅에 갔던 B씨는 7만7000원짜리 티켓을 사기 위해 235만원을 썼다.

‘티켓플레이션’에 요즘 공연팬들은 호구 신세다. 뮤지컬 티켓 최고가가 20만원에 육박하는 등 정가도 비싸졌지만, 더 큰 문제는 정상적인 예매처를 이용할 수 없어서다. 매크로(자동 반복 프로그램)를 이용해 인기 티켓을 사재기하는 암표상 탓이다. 야구장 가기도 힘들어졌다. 지난해 정가 3만5000원짜리 한국시리즈 티켓도 2~6배 값을 치른 사람이 많았다. 코로나 이후 공연·스포츠 시장이 살아났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중고거래 플랫폼을 거쳐야 티켓을 살 수 있다. 아티스트나 기획사 수익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유통마진’만 커진 셈이다.

지난해 3월 공연법이 개정되긴 했다.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거래가 전면 금지되고, 위반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매크로 사용을 입증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어 암표 근절은 요원한 상태다. 지난해 검거된 암표상 중에는 한 공연에 1억원 넘는 불법 수익을 챙긴 사례도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사기 피해도 늘고 있다. 2016~2023년 국내 공연 티켓 매출액은 6107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2배 정도 커진데 비해 티켓·상품권 피해 사례건수는 5165건에서 3만8388건으로 5배 이상 급증했고, 중고거래 사기 피해 1위도 티켓·상품권 차지다. 온라인 개인간 직거래로 인한 사기·폭력·편취도 매년 증가하고 있고, 외국인 K팝 팬들의 피해까지 늘고 있다.

암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정부와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춘석 의원 등이 매크로 이용 여부와 무관하게 입장권 등을 부정판매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고 제재 조치를 강화하는 ‘공연법’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모든 형태의 티켓 재판매를 금지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지나치게 포괄적인 제재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지난해 아이유 콘서트 당시 친구 도움으로 산 티켓을 부정 거래로 의심받아 표를 몰수당한 팬의 사연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성급하게 재판매를 전면 금지하면 시장 음성화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사기 피해에 더 크게 노출되고, 개인의 불가피한 사정에 따른 재판매나 양도를 막는 건 소비자 권리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2차 시장은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거래 신뢰성과 안전성이 크게 저하된 상황”이라며 “단순 금지보다 2차 시장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 규제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사후 구제 절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피해 발생 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는 이미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의 해외 사례 발표에 따르면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EU 등 주요국 대부분이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티켓 재판매를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매니토바주의 경우 과거 티켓 재판매를 전면 금지한 적이 있지만, 음성 거래가 확산되자 규제를 철회했다.

암표에 대해서는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매크로를 이용해 티켓을 구매 및 재판매할 경우 최대 1500달러(약 217만원)의 벌금을 물리고, 일본은 판매가보다 비싸게 재판매하는 불법 전매에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엔(약 9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캐나다는 위반 시 벌금 5만 캐나다달러(약 5000만원) 또는 2년 미만의 징역에 처한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2차 거래는 양성화 추세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업 그로스마켓리포트(Growth Market Reports)는 2019년 약 15.6조원이었던 글로벌 2차 티켓 거래 시장 규모가 2027년 약 37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북미와 유럽이 세계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고, 스텁허브·티켓마스터·비아고고 등의 글로벌 기업이 경쟁 중이다.

한국도 2차 티켓 거래 양성화에 대한 요구가 높다. 그러려면 공인 플랫폼 중심의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가격 상한제, 정보 공개 의무화 등 실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인 남기연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티켓 재판매에 있어 허용과 금지 행위를 구별하는 기준과 범위를 정해 관리·감독 영역으로 가져와야 한다”면서 “재판매업 라이선스 부여와 사업자 주의의무 강화, 환불정책 및 분쟁해결 절차 등을 포함하는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투자도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최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과 뉴욕 레드불 아레나는 블록체인 티켓 솔루션 도입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하이브가 이번달 투어스 팬미팅부터 얼굴인식 기술인 ‘얼굴패스’를 적용한다. IT전문 변호사인 구태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부의장은 “티켓이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이상 매크로를 방지하는 방어 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R&D 지원과 모태펀드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기술을 채택한 예매 플랫폼을 국가나 지방정부가 먼저 이용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암표에 대한 인식 변화도 수반되어야 한다. 한정호 공연평론가는 “블록체인 티켓이 공정한 상거래에 대한 기대감을 주긴 하지만 해킹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라면서 “기술혁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사용자 윤리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8937 [단독] 방첩사 간부 "'14명 구금' 지시 1분 뒤 국방부·경찰에 전파"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6 다시 뚫린 하늘길…“드디어 집으로”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5 건물도면 올리고 “척살” 선동…‘헌재 난동’ 모의 커뮤니티 수사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4 온난화에도 ‘기습한파’ 여전…한랭질환 위험↑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3 건달과 결혼 3년 뒤 암에 죽은 딸…“얼마나 다행” 부모의 속뜻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2 저탄고지, 다이어트에만 효과? 갑자기 몸 떨리는 이 병에도 좋다 [건강한 가족]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1 전국 곳곳서 尹 탄핵 찬반 집회… 동대구 5만2000명 집결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30 한국, 하얼빈 동계AG 첫날 金 7개… ‘슈퍼 골든데이’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9 이진우 "김용현, 경호처 비화폰으로만 전화"‥'계엄폰' 수사 시급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8 미일, ‘완전한 비핵화’ 원칙 재확인…북한 “핵은 흥정물 아닌 실전용”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7 "헌재, 탄핵하면 을사오적"…전한길, 대구서 尹탄핵 반대 집회 참석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6 태국 여성들 갇힌 채 ‘난자 채취’ 당해… 中 조직 연루 의혹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5 북극 기온 평년보다 20도 뛰었다...한국 맹추위 원인도 '이것'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4 집회에선 "헌재 파괴하자! 을사오적!"‥국민의힘 의원들도 참여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3 "65세부터 노인이라고요?"…44년 만 노인연령 조정 본격화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2 美법원 "재무부 결제시스템에 DOGE 접근 안돼" 머스크에 제동(종합)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1 3월부터 하루 12시간 주식거래… 800종목 거래 예정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20 헌재 답사에 내부 평면도까지‥온라인서 또 다른 '폭동' 정황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19 英 정부, 애플에 암호화 개인정보 요구…"그러면 시장 철수" new 랭크뉴스 2025.02.08
48918 美언론 "트럼프 입이 귀에 걸렸다…이시바 아부의 예술 보여줘" new 랭크뉴스 202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