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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 출연 중인 방송인 겸 수어 아티스트 사오리(후지모토 사오리)는 ‘452’라는 등번호를 달고 아침과 저녁 두 시간씩 훈련한다. 방송이 없는 ‘시즌 오프’에도 드리블 복습을 포함한 개인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생활방식은 방송인이라기보다 운동선수에 가깝다. 그의 가방에서 풋살화와 탈취제, 파스가 굴러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오리는 한국을 ‘나를 도전하게 만드는 나라’라 정의한다. 그의 일상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축구부터 한국 수어, 한글 서예까지 모두 이곳 한국에서 시작한 것들이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축구는 중독이다

<골때녀> 참가팀 중 외국 출신 방송인 중심으로 구성된 ‘FC월드클라쓰’ 소속인 사오리는 축구에 다소 불리한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스피드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팀의 에이스가 됐다. 지난해 열린 제5회 슈퍼리그 결승전에서는 전반전에만 3골을 몰아넣어 팀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해당하는 ‘골롱드로’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는 운동선수 출신이 아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온 사람도 아니다. 그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 하나만으로 축구에 빠져들었다.

“<골때녀> 출연진은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만 ‘1일 1축’을 시작했다 하면 1일 2축, 3축으로 횟수가 점점 늘어요. 뛰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오거든요.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의 뿌듯함은 축구를 한 번이라도 해본 분이라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반대로 축구를 하지 않는 날은 불안해져요. 금단현상처럼 말이죠. 그야말로 중독이에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경기만큼은 실전이다. 부상 역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골때녀> 시즌 1 경기 중 사오리는 선수 출신 참가자의 골을 막다 손가락 골절과 발목 인대 파열 사고를 당했다. 허벅지 파열은 여러 번 겪었다.

“발목 인대는 총 세 개인데 하나는 완전히 끊어지고 또 다른 하나는 절반 정도 끊어진 상태예요. 그래서 많이 뛰면 통증이 오죠. 더는 삐끗하면 안 되니까 ‘폭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조심하고 있어요.”

축구로 인해 라이프스타일도 완전히 바뀌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운동을 하다 보니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든든히 먹는다. 본격적인 시즌 한 달 전부터는 파스타, 삼겹살 등으로 야식까지 챙기며 탄탄한 ‘피지컬’을 유지한다.

“원래 소식가였는데 축구를 하고 7㎏ 증량했어요. 그런데도 안색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또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어선지 머리숱도 전보다 많아졌어요. 이젠 축구가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의 가방에는 축구공부터 자신의 등번호가 새겨진 이름표 등 축구 관련 키링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알아보시는 분의 대부분은 ‘사오리’라는 이름보다는 ‘아, 축구선수!’라고 불러요. 이어서 많이 듣는 말은 ‘다치지 말라’는 당부예요.”



■한국, 나를 도전하게 만드는 나라

사오리는 한국에 대해 ‘나를 도전하게 만드는 나라’ ‘솔직해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한국을 만나 축구와 한글 서예, 그리고 한국어 수어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는 일본 요코하마 페리스여학원대학에서 한국어를 부전공하고 JYP 일본법인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일본 대표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한국 활동에 나섰다.

“평창 패럴림픽에서 아이스하키 한·일전을 봤어요. 핸디캡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때 경기를 돕는 수어 통역사의 모습을 보고 ‘나도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한국 수어를 공부했어요.”

사오리의 가방 속에는 그가 한국에 온 후 꾸준히 이어온 ‘도전의 흔적’이 가득하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한국 수어(한국 수화언어)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받았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도 문법 체계가 다른 농인의 고유한 언어다. 나라별로도 모두 다른 만큼 일본인 사오리에게 한국 수어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시도였다.

“2월3일이 한국수어의 날인 거 아시나요? 한국은 법률 제정으로 수어를 언어로 인정한 나라예요. 그래서 뉴스에 반드시 수어 통역이 있어야 하고 드라마 안에서도 일정 부분 수어 통역이 있어야 해요. 농인이 정보의 불평등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만약 수어 안내가 없다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계엄령’같이 평소에는 익숙하지 않은 중요한 단어를 바로바로 알 길이 없으니까요.”

2020년 사오리는 국가 공인 수어 통역사 자격증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였다. 일본인인 그는 왜 굳이 한국 수어를 배우고자 했을까.

“일본 수어를 선택했다면 쉽게 배웠겠지만 희소성도 떨어지고 나만의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적어질 거로 생각했어요. 1차에는 합격했지만 아쉽게도 2차 실기시험은 0.3초 시간 부족으로 떨어졌어요.”



사오리의 가방은 풋살화와 신가드(정강이 보호대), 탈취제, 바르는 파스, 스포츠 보충제, 간식 등 축구 관련 물품 못지않게 수어책과 수어를 공부하는 태블릿 PC가 채우고 있다. 그의 삶에서 수어가 차지하는 비중도 그만큼 크다.

그는 ‘수어 아티스트’로서 농인과 청인이 선입견 없이 음악을 즐기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창작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아름다운 가사를 가진 곡 위주로 수어를 표현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창작곡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공연을 꾸리는 것이 목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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