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력 강화로 핵보유국 인정 원해”… 대미 협상력 주목적
뉴시스
올해는 김정은(아래 사진)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발표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계획’이 마무리되는 해다. 김 위원장이 연초부터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시설 방문 등 연이은 군사력 과시 행보를 보이는 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협상용 목적도 있지만, 예정한 무기 개발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성격도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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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지속적인 신무기 개발을 통해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자강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핵무기 능력을 부각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전략도 담겼다.
김 위원장은 올해 이런 군사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 등을 통해 미진한 무기 개발을 진행하고, 연말에는 목표했던 군사력 완성을 공식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완성된 군사정찰위성과 핵추진 잠수함 개발 등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러시아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무기 개발을 ‘뒷배’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세 번째 회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했다. 이 경우 6년 전의 마지막 협상 때와는 북한의 요구사항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군축협상’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외교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나는 김정은의 군사 행보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와 같은 해 10월 ‘자위-2021’ 국방발전 전람회 등을 통해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중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 개발 도입, 수중 및 지상 고체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군사정찰위성 운용, 정밀정찰 무인정찰기 개발 등 5가지를 핵심 과업으로 꼽았다.
북한은 계획에 맞춰 해당 무기 개발에 나섰다. ICBM은 지난해 10월 29일 “최종 완결판”이라며 사실상 개발을 마무리했고,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 개발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도 완성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무기 개발 과정을 직접 지도·독려하면서 국방발전 계획을 강조했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군사 행보는 2021년을 기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무기 지도·참관 분야는 2022년 7회, 2023년 9회에 이어 지난해 11회로 꾸준히 늘었다. 선대에 비해서도 군사 관련 행보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사일 발사의 경우 김일성 시기 15발, 김정일 시기 59발이었던 것이 김 위원장 집권 후에는 450여발로 급증했다.
마지막 퍼즐은 러시아 손잡기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국제사회에서의 협상력 강화가 목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암묵적으로 핵무기를 가졌다는 것을 넘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억제력을 갖추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가 핵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은은 핵은 물론 재래식 전력까지 둘 다 고도화하고 싶어한다”며 “자위력 강화를 통해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되는 연말까지 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미완성된 부분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실험을 통해 완성 모델을 선보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완성 과제로는 군사정찰위성과 핵잠수함이 꼽힌다. 북한은 2023년 11월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쏘아 궤도에 안착시켰지만 정상 작동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발사도 실패했다. ‘김군옥영웅함’이라는 핵무기 탑재용 재래식 잠수함을 공개한 적은 있지만 원자력을 통해 가동되는 핵추진잠수함 역시 미완성 상태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러시아 측 기술도 이 분야다. 두 연구위원은 “정찰위성과 핵잠수함은 북한 자체 기술로 완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군 파병의 기여를 생각하면 러시아가 핵잠수함의 기본적인 기술 정도는 지원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앞에서 “군축협상” 외칠까
게티이미지뱅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북한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북한 역시 미국에 날은 세우되 수위는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미 정상 간 3차 회담 성사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다만 김 위원장이 2018년 1차, 2019년 2차 회담과 달리 핵무기 완성에 주력해온 만큼 ‘핵보유국 인정’을 협상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콧 스나이더 한미경제연구소장은 지난해 12월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국방 발전 5개년 계획이 내년에 마지막 해에 접어든다”며 “그들이 그 길에서 조기에 벗어나도록 만들기 위해 강력한 제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군축협상을 수용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취임 직후 김 위원장을 향해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고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다만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지난 1, 2차 회담 때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이언 휴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집권 1기 때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군축협상을 수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수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다만 “군축협상을 모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며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의 기본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