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수수혐의로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은 배경에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진술에 관한 판단이 있다. 유 전 본부장이 입장을 번복하면서 진술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1·2심 모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 전 본부장 진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재판 사건과도 관련 있다. 이번 선고가 향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김 전 부원장은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전후인 2021년 4~8월 유 전 본부장, 정민용 변호사와 공모해 대장동 민간업자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총 8억4700만원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김씨가 이 중 6억원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2심 “유동규 진술 신빙성 없다고 볼 수 없어”
김 전 부원장 재판의 핵심쟁점은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 여부였다. 유 전 본부장은 김 전 부원장에게 돈을 줬다고 했지만, 김 전 부원장은 부인했다. 돈을 줬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물증이 없는 이 사건에서 돈을 건넨 유 전 본부장 진술이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됐다.
140쪽 분량에 달하는 판결문에는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판단이 상당수 담겼다. 재판부가 유 전 본부장 진술 전체를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일관되게 법정에서 한 진술은 대부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은 근거에 의해 사실을 인정하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해 규정하고 있다”며 “객관적인 사실에 명백히 반하는 증거를 근거 없이 채택·사용하는 등으로 논리와 경험의 범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법관은 자유심증으로 증거를 채택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의 진술 신빙성이 중요 쟁점이 된 건 스스로 불러온 것이기도 하다.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관련 혐의를 계속 부인하다가 2022년 9월을 기점으로 이 대표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검사와 면담한 뒤 함구하던 태도를 바꾼 것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 대표의 대선 경선자금을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2심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추이, 당시 유 전 본부장이 처한 사정 및 그와 같은 태도 변화를 일으킨 경위 등에 관해 직접 신문하면서 진술에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관한 원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세하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 판결문에는 ‘이재명’이라는 단어가 총 130여회, ‘경선자금’은 30여회 등장한다. 다만 이 대표의 지시나 관여가 있었는지 등은 판단하지 않았다.
객관적 증거 제출 ‘구글 타임라인’ 인정 안 돼
김 전 부원장 측은 유 전 본부장의 진술에 기대어 1심 판결이 나온 것을 반박하기 위해 2심에서 ‘구글 타임라인’ 감정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구글 타임라인은 스마트폰의 위치정보시스템(GPS) 등을 통해 실시간 위치기록을 온라인에 저장하는 서비스다. 김 전 부원장이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지목된 2021년 5월3일 자신의 행적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라고 했다. 이에 감정도 진행됐다.
법원 요청에 따라 지난 3개월간 구글 타임라인 신빙성을 감정한 IT 전문가는 “구글 타임라인 기록에 수정·삭제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오차가 있을 수 있고, 디지털 증거조작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글에서는 작동원리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조작가능성 여부, 정확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조작 및 수정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구글 타임라인의 증거채택은 개별 사건마다 달랐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당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2심에서 구글 타임라인을 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는 구글 타임라인이 1심 유죄를 2심에서 무죄로 뒤집는 데 핵심 증거로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