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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방한용품 지원 동행…돌봄 손길 뻗지만 거리감도


서울 종로구 한 지하도보에 자리 잡은 노숙인. 페트병 속 물이 꽁꽁 얼어 있다.
[촬영 이영섭]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이불은?"

4일 오후 7시 30분께 시청역 근처 고가도로 밑. 서울시립 '브릿지종합지원센터' 직원 A씨가 말을 걸자 침낭 속에 있던 한 남성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귓불이 떨어질 것 같은 추위를 그는 핫팩 몇 개로 버티고 있었다.

A씨는 "따뜻한 센터에서 주무셨다가 아침까지 드시고 가요"라고 설득했지만, 남성은 한사코 거부했다. A씨는 남성에게 새 핫팩과 양말을 건네고 이내 자리를 떴다.

브릿지종합지원센터는 구세군복지재단이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강북 지역 노숙인들의 기초 생활을 지원하는 곳이다. 시설 입소를 거부하고 거리를 고집하는 '만성 노숙인' 50∼70명을 돌보는 게 A씨의 업무다. 기자는 수은주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이날 A씨의 '저녁 순찰'에 동행했다.

실외 환풍기 옆에 자리잡은 80대 여성 노숙인.
[촬영 이영섭]


시청역에서 북쪽으로 올라와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자, A씨는 익숙한 듯 광장과 접한 한 대형건물의 실외 환풍시설로 향했다. 환풍시설 옆엔 한 80대 여성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누워 있었다.

이 여성은 5년 전까지 조계사 인근에서 노숙하다 비교적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A씨는 설명했다. A씨가 핫팩을 건네며 "흔들어서 따뜻해지면 품으셔요"라고 하자 여성은 "네"라고 하며 웃었다.

5분 거리에 있는 지하 도보에는 남성 3명이 종이상자로 만든 '울타리' 안에 각각 누워 있었다. 한 남성은 맨발이었다. A씨가 양말을 건넸지만, 그는 "잘 때는 안 신어"라며 받지 않았다. 머리맡에 놓인 페트병 속 물은 꽁꽁 얼어 있었다.

양말은 그 앞을 지나가던 다른 남성에게 전달됐다. A씨는 그에게도 "센터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권유했다. 남성은 "무슨 말인지 아는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박스로 만든 울타리 속 펼쳐진 노숙인의 침낭
[촬영 이영섭]


A씨와 동행한 1시간 동안 만난 노숙인은 10여명. 모두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만성 노숙인'이었다. 살을 에는 강추위 속에서도 이들은 왜 '거리의 삶'을 택할까.

당장 시설에 가면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부터, 전과나 채무 등 신상 정보가 드러날까 봐 입소를 꺼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신 질환으로 소통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보호의 손길을 뿌리치고 찬 바닥에 누운 이들에겐 A씨에게 받은 방한용품이 이 밤을 버티게 할 유일한 온기인 셈이다.

광화문에서 종각역 방향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한 70대 여성은 짐보따리를 들고 바삐 이동 중이었다. A씨가 "어디를 가시냐"고 묻자 "자러 가지, 뭐"라는 다소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핫팩을 건네자 여성은 이내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혔다. A씨는 발걸음을 옮겼지만, 여성은 계속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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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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