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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사건
지난해 10월19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길거리에서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이 모로코인 결혼이주민 엘아비디 압둘 모리츠(32)를 거세게 밀치는 모습. 모리츠씨 아내 정을림(36)씨 제공 폐회로티브이(CCTV) 화면 갈무리

지난해 10월19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길거리에서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이 모로코인 결혼이주민 엘아비디 압둘 모리츠(32)를 거세게 밀치는 모습. 모리츠씨 아내 정을림(36)씨 제공 폐회로티브이(CCTV) 화면 갈무리

한국에 10년째 사는 모로코인 결혼이주민 엘아비디 압둘 모리츠(32)는 지난해 10월19일 새벽, 일하는 식당이 있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황당한 소동을 겪었다. 택시를 타려는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택시기사가 “불법체류자 무슬림이 손님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이 출동했다. 이때부터 한국 생활에서 흔히 겪어 온 ‘차별 소동’은, 이후 6개월 이어지며 모리츠와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 되기 시작했다.

30일 모리츠 쪽의 이야기와 경찰의 현행범인체포통지서 등을 종합하면, 출동한 경찰은 다짜고짜 반말하며 모리츠를 거세게 밀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리츠가 이 상황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으려 하자, 휴대전화도 빼앗았다. 항의하는 모리츠를 넘어뜨린 경찰은 그에게 테이저건(전자충격기)을 네 차례 쏘았다. 모리츠는 수갑이 채워진 채 용산경찰서로 끌려갔다. ‘불법체류자가 시비를 걸었다’는 애초 신고 내용은 사라지고 모리츠에게는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그가 경찰관의 멱살을 잡았다는 이유였다.

“처음 들었을 때 남편을 완전히 믿어주지 않아서, 지금 내가 (남편한테) 죄인이에요.” 처음 남편의 체포 소식을 듣고 모리츠의 아내 정을림(36)씨조차 ‘경찰이 전자충격기까지 쓴 데는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로코대사관의 도움으로 얻어낸 피의자신문 조서에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19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길거리에서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이 모로코인 결혼이주민 엘아비디 압둘 모리츠(32)를 거세게 밀치는 모습. 모리츠씨 아내 정을림(36)씨 제공 폐회로티브이(CCTV) 화면 갈무리

경찰은 모리츠에게 “경찰관 멱살을 잡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조금씩 내용만 바꾸어 집요하게 던졌고, 결국 “멱살을 잡은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긴장된 조사 분위기에 더해 ‘멱살’ 따위 잘 모르는 단어가 반복되자 혼란스러운 와중에 적힌 진술이었다. 아랍어에는 멱살이란 단어가 없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모리츠는 정씨에게 한사코 “나는 경찰 멱살을 잡은 적이 없다”고 했다.

정씨는 생업을 멈추고 남편의 결백을 입증하려 동분서주했다.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가게 폐쇄회로티브이(CCTV)를 찾아냈다. 담당 형사에게 전화를 걸자 “현장을 비추는 시시티브이는 없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제가 가지고 있는데요.” 정씨의 말에 형사가 답했다. “아, 그래요? 저한테도 하나 주세요.”

아내 정씨가 동석한 두 번째 피의자신문에서 모리츠는 ‘경찰의 멱살을 잡거나 때린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시시티브이 영상과 진술을 종합적으로 살핀 경찰은 결국 지난달 23일, 그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건 여섯 달 만이었다. 이태원 파출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모리츠에게 사과했다.

‘사건’ 이후 모리츠 가족의 일상은 뒤틀렸다. 모리츠는 이태원에서 21년째 모로코 식당을 운영하는 삼촌네 가게에서 요리사로 일했는데, 사건 당시 경찰관을 마주칠까 봐 지금까지도 이태원에 가지 못한다. 속눈썹 미용 가게에서 일하는 아내 정씨는 처음 두 달 동안 손이 떨려 일을 못 했고, 그 뒤로도 남편의 결백을 입증하러 뛰어다니느라 일을 쉬었다.

정씨는 택시기사가 남편의 겉모습만 보고 ‘무슬림 불법체류자’라며 경찰에 신고한 일이나, 경찰이 남편의 말을 듣지도, 신분증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작정 범죄자 취급한 것이 제일 속상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솔직히 남편이 금발 백인이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모리츠의 한국 생활 동안 수사기관과의 악연은 처음이 아니다. 모리츠는 2021년에도 한국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 법무부가 모리츠의 비자 기간을 잘못 안내하면서 불법체류자로 몰려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남편은 결혼이민 비자가 있다. 저희 사이에 아들도 있다”고 항의하는 정씨에게 법무부 직원은 “두 분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맞느냐”고 되물었다. 행정 착오에 대한 사과도 끝내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모리츠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사건 뒤 아내 정씨의 부모님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경찰이 그렇게까지 나왔느냐’며 사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남편 삼촌네 식당이 이태원에서 가장 오래돼서, 모든 모로코 사람들이 다 오거든요. 남편에게 한국인 가족이 있다는 게 그분들한테는 그동안 자부심이었는데. 바로 그 식당 앞에서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은 것 때문에 남편이 수치스러워했어요.”

모리츠는 사건 이후 ‘여기서 더는 못 살겠다’고 아내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 한국에 정착하고 10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다. 정씨는 “그동안 ‘무슬림’, ‘다문화’ 꼬리표에 따라오는 편견을 피하려 늘 조심하며 살아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원망스러웠다”며 “저 같은 한국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얼마나 더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23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1만 명, 전체 인구의 약 5%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미 ‘이주 사회’로 들어섰음에도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김주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 외국인센터)는 “외국인 관련 사건을 맡아 보면 경찰이 (조사 대상자의) 국적에 따라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인과 달리 법적 대응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좀 더 차별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잦다. 공공기관이 내부 지침을 통해 외국인을 대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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