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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안에서 폐어구에 걸린 채 발견된 새끼 남방큰돌고래

"해수부가 못하면 우리가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남방큰돌고래 한 마리라도 다 구해내겠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3주 전 해양수산부의 소극적인 행태를 비판하며,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의 남방큰돌고래 전담 구조팀(TF)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오 지사는 "많은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물 한 마리 폐어구에 걸린 것 가지고 매번 구조 체계를 작동할 수 있느냐'는 해수부의 대응 방식은 매우 아쉽다"고 공개적으로 중앙 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남방큰돌고래 등 구조가 필요한 해양 보호 동물의 구조는 해수부가 구조기술위원회를 열어 구조 필요성과 방법 등을 종합 검토해 조치하고 있는데, 이 시스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지난달 16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주간혁신성장회의에서 오영훈 지사는 최근 제주 해상에서 폐어구에 걸린 남방큰돌고래 구조가 지연되는 상황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양생태계 보호는 인류의 책임인 만큼 남방큰돌고래 구조를 위해 제주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제주도)

하지만 거창한 구호와 다르게 3주가 흐른 지금까지 TF는 구성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대리 신고'를 요구하는 황당한 일까지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 "해경에 신고해야 TF 만들 수 있다" 제주도 공무원, 대리 신고 요구

제주에서 수년째 남방큰돌고래를 모니터링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오승목 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어제(1일) 오전 10시 30분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별방진성 북동 앞바다에서 거대한 폐어구 옆을 지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화면제공 오승목 다큐제주 감독)

그는 어제(1일) 오전 10시 30분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별방진성 북동 앞바다에서 거대한 폐어구를 발견해 제주도 해양관리팀장 A 씨에게 신고했다. 해당 구역은 돌고래 무리가 지나다니는 경로다. 폐어구를 즉각 치우지 않으면 돌고래 꼬리에 걸리거나 몸통을 휘감을 수 있어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A 팀장은 신고 이튿날인 오늘(2일) 배를 이용해 폐어구 수거를 시도할 예정이라고 오 감독에게 전했다. 그러면서 오 감독에게 "지난번에 신고해 달라는 거 신고 됐느냐. (감독님이) 신고해야 TF팀을, 원인이 있어야 TF팀을 만들 건데 아직도 신고를 안 해주니까 어떤 말도 못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 민원인이 해경에 돌고래 관련 신고를 하지 않아서 TF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오 감독은 "이미 폐어구 돌고래 문제는 이슈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형식적인 신고를 하라는 얘기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A 팀장은 "형식적인 신고가 아니고, 규정상 해경과 소방, 해양환경 포털에 신고하는 방법이 잘돼 있지 않느냐"며 재차 신고를 요구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구조 TF팀을 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도 덧붙였다.

오 감독은 결국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신고를 진행했다. 관련 내용을 들은 해경 상황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 해경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제주도에 관련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고 전했다.

■ "이해 못 할 형식적 신고 요청"…제주도 뒤늦게 잘못 인정

해양동물 전문구조·치료기관의 관리와 지원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해양동물의 부상이나 좌초, 혼획에 관한 신고를 접수한 해양경찰서장 또는 119구조구급대장은 해양동물의 구조와 치료를 위해 구조·치료기관의 출동을 요청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 어디에도 민원인이 해경에 신고해야 TF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오승목 감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영상과 사진으로 폐어구에 걸린 돌고래가 확인된 상황에서 형식적인 신고를 요청한 행위는 이해할 수 없다"며 "가장 중요한 건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구조하고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민원인에게 대리 신고를 요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조치라고 시인했다. 강승오 제주도 해양산업과장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문제여서 (A 팀장이) 절차를 밟으려고 한 것 같다"며 "해경에 신고하지 않아도 TF는 만들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관련 기관에 추천을 받아 11명 정도로 TF 팀을 구성할 계획"이라며 "이미 인원을 대부분 구성했고, 7월 중순에 공식 출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리 신고를 요구한 해양관리팀장은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다.

지난 5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수중에서 촬영한 남방큰돌고래 ‘종달이’ 모습. 처음 발견 당시 이미 낚싯줄에 온몸이 얽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던 종달이는 이날 또 다른 낚싯줄에 더 심하게 감긴 채 발견됐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이미 제주에선 2년 전 낚싯줄에 걸린 새끼 남방큰돌고래가 발견돼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근에는 낚싯줄이 주둥이와 꼬리까지 몸통을 옭아맨 상태로 발견됐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실상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년간 당국의 적극적인 구조가 이뤄지지 않아 생명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굵은 폐어구에 걸린 또 다른 남방큰돌고래 '행운이'도 발견됐다. 행운이는 성체지만, 꼬리를 옭아맨 폐어구가 바닷속 암반이나 버려진 그물 등에 걸리면 언제든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태다.

지난달 24일 오후 3시 10분쯤 제주시 김녕항 앞바다에서 폐어구에 걸린 행운이가 폐어구 옆을 지나가는 모습(화면제공=오승목 다큐제주 감독)

최근엔 행운이가 김녕 앞바다에 있는 거대한 폐어구 옆을 가까스로 지나가는 모습까지 포착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앞바다에 사는 120여 마리 남짓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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