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청계광장의 시민들이 양산과 손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기상청은 당분간 전국의 낮 최고기온이 25도 이상 오르는 초여름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뉴스1]
“1994년 여름에 100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폭염이 왔는데 불과 30년 만에 그 기록이 깨졌어요. 지구 온도는 직선으로 올라가지만, 폭염 발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상청 폭염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26일 역대급 폭염의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올여름에도 폭염과 열대야가 평년보다 더 길고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여름철 폭염은 점점 빠르고 길어지는 추세다. 기상청 폭염백서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20년 전인 1990년대보다 첫 폭염 발생일이 6~7일 빨라지고, 마지막 폭염 발생일은 1~2일 늦어졌다. 그만큼 더위에 시달리는 날이 길어졌다는 뜻이다.
폭염은 보통 초여름 중에 이동성 고기압과 강한 햇볕에 의해 기온이 오르면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6월에는 체감온도가 27~28도 수준이지만, 7월은 30도, 8월은 32도 이상으로 오르면서 폭염의 강도가 극대화된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비가 적게 오는 6월과 8월에 폭염일수가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높은 해수면 온도 탓에 습도가 높아지면서 체감 온도는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박경민 기자
기후학자들은 폭염과 열대야가 길고 독해진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함께 ‘키 큰 고기압’에 주목하고 있다. 대기 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과 상층의 티베트고기압이 동시에 확장하면 한반도 상공에서 키 큰 고기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마치 두꺼운 이불을 덮은 것처럼 열이 축적되는 이른바 ‘열돔(Heat Dome)’ 현상이 발생해 폭염이 길어진다. 지난해에도 열돔 현상으로 인해 가을까지 지독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졌다. 폭염일수는 30.1일, 열대야 일수는 20.1일로 각각 역대 2위와 1위를 기록했다.
올해에도 5월부터 한여름처럼 푹푹 찌는 무더위가 일찍 나타났다. 기상청은 올여름에 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폭염일수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교수는 “전지구 온도 증가, 북서태평양 고수온 등의 영향으로 평년에 비해 폭염일 수가 굉장히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처럼 키 큰 고기압이 한반도에 열돔을 만들면서 폭염과 열대야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50대 이상의 고령층이나 야외 근로자를 중심으로 온열질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처음으로 기후보험 제도를 도입해 온열질환 진단 시 10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작년에 우리나라를 뜨겁게 만들었던 기압계 조건이 올해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을까지도 폭염과 열대야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