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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관람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돈 PD, 윤 전 대통령,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선고를 받은 지 한달 보름여 만인 지난 2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화제의 중심에 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극장에서 직접 관람하러 외출을 했기 때문인데요, 실시간 포털 뉴스는 물론 신문과 방송에서도 크게 다루었습니다.

뉴스 가치의 비중은 작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날 종합일간지 9곳 가운데 8곳이 사설로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한결같이 비판적인 어조였습니다. 보수 성향의 조선일보는 ‘국민 인내 시험하는 윤석열 김건희 부부’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는 ‘윤 전 대통령, 아직도 부정선거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했나’라며 윤 전 대통령의 대외 공개행보로서의 영화 관람을 비판했습니다. 그날 사설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은 동아일보도 23일자 사설에서 ‘대선-지선 다 이긴 尹의 부정선거 집착은 도착적 자기모순’이라며 결국 준엄하게 비판했습니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이길래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되는 걸까요.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면, 유죄가 확정될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밖에 없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피고인인 윤 전 대통령이 활보한 것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둘 다 문제일까요. 이런 궁금증이 들어 직접 영화관에 가서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해 봤습니다.

①어떤 영화인가…‘배우 이영돈-감독 이영돈’

영화 관람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문화부 기자로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리뷰 기사를 쓰겠다고 전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과연 이 영화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또는 기사로 쓸만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가 우선 드는 고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리뷰 기사 자체가 또 다른 화제나 관심거리가 돼 영화 홍보에 이용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름의 결론은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본다’였습니다. 다만 ‘볼 사람’에게도 객관적인 정보 전달은 필요하고, ‘안 볼 사람’에게도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에 대한 구체적인 논박을 일일이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바탕으로 한 다른 기사들을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 제작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등등을 비판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윤석열이 본 영화, 선관위 감상평은? “깊은 우려”···12개 항목으로 반박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2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겨냥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 대부분은 이미 우리 위원회에서 설명하거나 법원 판결로 해소된 사항”이...https://www.khan.co.kr/article/202505221610001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각본·연출을 맡은 이영돈 감독이 의외로 출연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입부에 이영돈 본인이 인터뷰 대상으로 나와서 “믿기 어려웠어요. 대통령이 선관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비상계엄을 했다? 초기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쭉 말을 이어가다 “문제는 선관위가 가림막 속에서 외부 통제 없이, 스스로 정말 썩어가고 있거든요”라고 말을 마치는데, 이어서 내레이션을 맡은 이영돈 본인이 “선관위가 썩어가고 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이런 코멘트를 합니다. 자문자답,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런 구조는 영화 전반에 걸쳐서 반복됩니다. 비단 ‘이영돈→이영돈’뿐 아니라, 평소에 ‘부정선거론’을 설파하는 유튜버들을 취재한 뒤 이들의 주장을 다시 반복할 때에는 이미 확정된 사실처럼 내용을 전개합니다. “부산 교육감 선거에서 부정이 없었다면 보수 진영 정승윤 후보가 당선됐을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말미에 가면 아예 방송 뉴스에 나온 수치를 지워서 고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20대 대선에서 48.56%를 득표한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을 ‘스윽’ 바꿔서 53.15%라고 기록합니다. 물론 이런 그래픽 작업의 밑바탕에는 ‘부정선거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이 전제가 돼 있긴 한데, 그들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어떻게 바꿔치기하거나 조작한 표의 숫자까지 그렇게 정확하게 계산이 가능할까요. 이에 대한 근거는 별도로 설명되지는 않으나 몇몇 유튜버들이 주장한 것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 주장을 이 ‘원래 득표율’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지요.

이영돈 감독이 바닷가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담긴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속 한 장면. 더콘텐츠메이커 제공


마치 영화 <매트릭스>를 보는 듯 현란한 그래픽도 등장합니다. 사전투표자의 개인정보가 선관위 서버에 소스코드로 저장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이를 이미지화하는 듯한 별 상관 없는 그래픽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시사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이긴 합니다.

②누가 영화를 보는가…“여보세요. 나 영화 보는 중”

사실 영화 내용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관객들이었습니다. 누가 돈과 시간과 수고를 들여 극장까지 와서 이 영화를 보는가. 저는 지난 23일 금요일 오후 영화를 봤습니다. 평일 낮 시간대여서 관객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영화관이었고, 해당 상영관 129석 가운데 20명 조금 넘는 사람이 관람했습니다. 눈대중으로 보기에는 60대 여성이 가장 많아 보였습니다. 탄핵재판 시기 한창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서 보이던 집회 참가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연령이 젊은 편이었고, 남성은 대여섯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20대로 보이는 남녀 커플도 한 쌍 있었습니다.



주 관람객의 나이대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전화벨이 울리는 일이 몇 차례 있었고 예외없이 모두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나 영화 보는 중이야, 부정선거라고~ 윤석열이가 본 거” 이런 식으로 말이죠.

관람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사와 탄식도 연발했습니다. 영화에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2020년 총선 개표 직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주셔서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라는 말을 할 때에 객석에서는 “쳇” “허이구” 이런 소리가 들려왔고, 고민정 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이 화면에 등장할 때에는 혀를 차는 소리가 자주 들려왔습니다.

소름돋는 대목은 관객 일부가 종교적인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를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입니다. 영화 상영이 끝날 무렵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객석에서는 한 관람객이 외치는 “아멘” 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호응하는 듯 어떤 관객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신앙의 느낌은 영화 내부적으로도 드러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성경의 마태복음 10장 26절을 배경화면과 자막으로 깔고 시작합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는 내용입니다. 초반부에는 이영돈 감독이 바닷가를 거닐며 고뇌하는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그는 “선관위와 부정선거에 대해서 취재를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라고 한 뒤,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문득 계시처럼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영화 전반에 이런 어조가 깃들어 있다고 해석해도 과히 틀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황교안 후보 현수막


영화 관람을 마치고 영화관이 있던 백화점 정문을 빠져 나오는데, 같이 나오던 60~70대 여성 관객 두 분이 대선 후보 현수막을 가리켰습니다. 백화점 앞 사거리에 걸려 있던 기호 7번 무소속 황교안 후보의 현수막에는 ‘부정선거 척결로 청년에게 미래를’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③영화와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아마도 부정선거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돈과 시간과 수고를 따로 들여서 이 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강하게 믿고 있는 사람 내지는 솔깃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주 관객층일텐데 이 영화는 이런 그들의 생각을 강화시켜줄 것으로 보입니다. 주장과 근거의 논리적 정합성과는 무관하게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영상매체의 힘이니까요. 그런데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수두룩한 유튜브 채널들만 봐도 충분할 텐데 왜 굳이 영화관까지 와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여기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닐까요.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비상계엄으로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데 대해선 사과나 반성 한마디 없었다. 그래 놓고 또 다시 부정선거 타령이니 혀를 차게 한다”고 했습니다. 영화 만드는 데 돈을 댄 제작자 전한길 강사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간 것으로도 생각되긴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영화 관람 행보는 사람들의 ‘계엄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이영돈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하기 위해 상영관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전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려면 공익광고를 봐야 했습니다. 영화가 호환마마보다도 더 나쁠 수 있다는 내용의 만화가 나가고 난 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함께 나갔습니다. 직접 보니 이 영화는 그만큼 위험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대한민국이 이 정도 수준으로 높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영화에 등장하는 허위사실 유포행위나, 이 영화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명예훼손 등에는 법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윤석열 정부 당시 검찰이 비판언론을 상대로 했던 수사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면, 제작자와 감독은 벌써 몇 차례 압수수색을 당하고도 남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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