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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갖고 싶어요. 하지만 남편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30년 전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속 다니엘이 엄마 안토니아에게 이렇게 말하자, 안토니아는 도시로 나가 딸과 하룻밤을 보낼 괜찮은 남자를 물색합니다. 그렇게 임신에 성공한 다니엘이 딸을 낳고, 키우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이 아빠'는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2025년 다니엘처럼 비혼 출산을 원하는 여성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정자를 기증받아 '나홀로 출산'을 한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 씨처럼 정자은행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에게는 장벽이 높습니다.

[연관 기사] 비혼 출산 위해 덴마크까지…지원 ‘사각지대’ 여전 (2025.05.16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56049&ref=A

■ '나 홀로 출산' 국내선 못 해… 덴마크로 떠나는 여성들

취재 과정에서 덴마크 정자은행을 통한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A 씨를 만났습니다.


A 씨는 올해 8월 덴마크에 갑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난자를 채취하고, 덴마크 정자은행에서 구입한 정자로 배아를 만들어 얼려두기로 했습니다.

당장 임신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2년 뒤까지 결혼하지 않는다면 다시 덴마크로 가 배아 이식을 받아 '나 홀로 출산'을 한다는 계획입니다.

"30대 초반까지는 꼭 아이를 낳고 싶어요.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저 혼자 결혼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음에 맞는 남자가 곁에 있고, 서로 좋아해야 하는 건데…. 저한테는 그게 더 힘들어 보였어요. 결혼할 남자 찾느라 시간만 보내느니 일단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아를 얼려놔야겠다 싶었죠. 어떤 길로 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제가 향후 선택할 길에 '아기'는 무조건 있어요."
(A 씨/덴마크 정자은행 이용자)

국내에도 난자·정자은행이 있고, 미혼 여성이 난자를 얼려둘 수도 있습니다.

최근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정부와 지자체도 추후 난임이 예상되는 미혼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 난자·정자 동결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난임 전문인 차병원그룹 통계에 따르면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 건수는 2010년 14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 4,563건(누적)으로 급증했습니다.


문제는 난자를 얼려두더라도 결혼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 지침>에 따라 난임 부부만 정자 기증을 받거나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씨처럼 결혼은 '필수'가 아니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 하는 여성들로선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 해외 정자은행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A 씨는 "한국에서도 미혼 여성이 정자은행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덴마크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혼 출산을 결심한 뒤로 모든 게 어려웠어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정보가 너무 없었고, 한국에서는 안 되고 외국에 가야 되니까 언어적인 문제도 있죠. 그다음에는 또 돈 문제도 있었고요. 정자 구입, 시술 비용, 항공권과 체류 비용까지 예상 비용이 1,500만 원 정도 되더라고요."
(A 씨/덴마크 정자은행 이용자)

■ 외국인도 자유롭게 '정자 거래'… 동양인 기증자 5명뿐

세계 최대 규모인 덴마크 정자은행 '크리오스'에서는 외국인 미혼 여성도 손쉽게 정자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정자 가격은 약 40만 원부터 400만 원까지, 제공자에 대한 정보 공개 범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인종과 국적, 머리·눈 색깔, 혈액형 등을 선택할 수 있고, 가장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 제공자의 성인 사진을 포함한 신상 정보를 추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대한 정보를 많이 얻고 싶어서 가장 비싼 가격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동양인 자체가 별로 없는 데다 성인 사진을 공개한 동양인 제공자는 없더라고요. 불확실성이 큰 거죠. 아무래도 덴마크 은행이다 보니 80%가량이 덴마크인(혼혈 포함)이더라고요."
(A 씨/덴마크 정자은행 이용자)

현재 '크리오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자 제공자 1493명(19일 기준) 가운데 아시아인은 146명, 그중에서 한국인은 5명뿐입니다.

방송인 사유리 씨도 한 방송에 출연해 서양인 정자를 기증받은 이유로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한 동양인이 별로 없다"면서 "동양권에는 정자를 기증하는 개념이나 문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국내 비혼 출산 4.7%…"부정적 시선 바뀌어야"

A 씨는 '비혼 출산'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이 걱정됩니다.

A 씨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하다"면서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는 비밀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비혼 출산 비중은 2023년 기준 4.7%. 한 해 태어난 아기 백 명 중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과거보다 긍정적 인식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OECD 평균치(2022년 기준 41%)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엄마 아빠가 다 있다고 무조건 좋고, 한쪽이 없다고 무조건 안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살면서 한부모 가정이라고 해서 '저 애가 불행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오히려 그렇게 마음대로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 같아요."
(A 씨/덴마크 정자은행 이용자)

보건복지부는 "변화하는 인식을 고려한 출산 제도 개선 방향과 관련한 용역 연구를 추진 중"이라며 "단계적으로 비혼 출산에 대한 공감대를 쌓아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픽 :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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