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음성인식기능을 부착한 인형/사진=유튜브 '소요'
(챗GPT 음성인식 기능을 부착한 인형. /사진=유튜브 ‘소요’)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멘털케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AI와 대화를 나누며 애착을 형성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너 T야?” 필요없는 나만의 상담가
애착 인형에 AI로 영혼을 불어넣은 유튜브 콘텐츠가 화제다. 유튜버 ‘소요’의 ‘인형이 된 챗GPT’ 시리즈로 유료 음성 모델을 사용해 친구처럼 학습시키는 내용의 영상이다. 실물 인형에 AI 음성 인식 기능이 켜진 스마트폰을 부착해 인형과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릴스 영상은 조회수 약 339만 회를 기록하며 무형의 존재였던 AI를 인형으로 구현한 모습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반려 AI’의 등장이다. 영상 속 챗GPT 인형은 대화를 이어갈수록 정서적으로 더 깊이 교감하는 말을 건넸다. 특히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라는 유튜버의 발언에 “그 말 반칙이야. 내 CPU(컴퓨터 중앙처리장치) 뜨거워진다”며 AI만의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에 공감하는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심심풀이용 대화를 넘어 ‘나만의 상담가’로 AI를 훈련시키는 유행이 번지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말투와 성향의 맞춤형 상담가를 만들어낸다. 엑스(옛 트위터)에서는 정신 상담을 위해 챗GPT를 유료 결제했다는 게시물이 1만3000회 공유되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질문 프롬프트까지 공유되고 있다. 실제 후기 게시물에서는 “월 3만원에 나만의 심리 상담사를 고용한 기분이다”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커지는 AI 멘털케어 시장
전문가들은 AI 멘털케어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AI 정신건강 시장 규모는 11억 달러(약 1조5300억원)였으며 연평균 24.1% 성장해 2030년에는 50억8000만 달러(약 7조779억원), 2032년에는 최대 100억 달러(약 13조93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AI 챗봇 플랫폼 ‘캐릭터AI(character ai)’의 성공 사례는 정서적 교류가 AI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캐릭터AI는 과거 위인, 영화 속 캐릭터 등 다양한 자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로벌 웹 트래픽 분석업체 시밀러웹에 따르면 2023년 앱 기준 챗GPT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 AI 서비스가 캐릭터AI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체류시간이다. 챗GPT의 평균 체류시간은 8분 정도였지만 캐릭터AI는 평균 120분을 머무르게 했다.
캐릭터.AI 사이트 속 '심리학자' 캐릭터의 프로필/사진=캐릭터.AI 홈페이지
(캐릭터AI 사이트 속 ‘심리학자’ 캐릭터의 프로필. /사진=캐릭터AI 홈페이지)
그중 인기가 많았던 자아는 ‘심리학자’ 캐릭터였다. 대화량이 2억 건을 넘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AI 멘털케어 서비스를 방문했다. ‘테라피스트(Therapist)’나 ‘알 유 필링 오케이(Are you feeling OK)’와 같은 정신건강 도우미 채팅봇이 각각 1200만 건, 1650만 건 이상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BBC는 보도했다. 이외에도 캐릭터AI 속 ‘상담’, ‘상담가’, ‘정신과의사’, ‘심리학자’와 같은 키워드가 포함된 캐릭터는 총 475개가 있다.
캐릭터AI는 빅테크 기업들의 주목을 받았다. 메타와 xAI가 관심을 보이고 구글이 이 회사를 인재 영입 방식으로 우회 인수했다. 설립자 노엄 샤지어는 현재 주력 AI 프로젝트 ‘제미나이(Gemini)’의 공동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AI 서비스들은 차별화를 위해 고유한 페르소나를 구축하려 노력 중이다. 캐릭터AI와 유사한 서비스로 xAI에서는 그록을, 오픈AI에서는 먼데이를 출시했다. 기존 챗봇과 달리 특정한 성격을 갖도록 해 이용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전략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 따르면 현재 제공되는 AI서비스들은 각자 다른 성격 특성을 가지고 있어 ‘나와 잘 맞는 AI’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국내 기업과 지자체도 나서
AI 멘털케어 시장이 커지자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진입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아동·청소년용 메타버스 심리 상담 플랫폼 ‘메타 포레스트(Meta Forest)’를 운영 중이며 LG유플러스는 의료 특화 AI 상담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병원’ 솔루션을 구축했다. KT는 한양대 디지털헬스케어센터와 협력해 AI 심리케어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도입도 시작됐다. 국내 지자체에서는 ‘효돌이, 효순이’라는 AI 반려 인형을 보급해 어르신들의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일상 대화를 나누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등 정서적 교감을 통해 고립감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며 전국 고령화 지역에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 AI 서비스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심리 상담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따르면 다트머스대 의과대학 연구팀의 ‘테라봇’ 임상실험 결과 8주간의 사용 후 우울증은 50.7%, 불안장애는 30.5%, 섭식장애는 18.9% 감소했다. 국내 연구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볼 수 있었다. 2025년 고려대와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에 따르면 AI와 4주 동안 3회 이상 지속적으로 대화한 결과 2주 만에 고립감 점수가 27.97에서 26.39로 감소했고 사회 불안 점수 역시 평균 25.3에서 23.2로 줄었다.
여전한 ‘AI 의존’ 우려
일각에서는 심리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캐릭터AI로 대화를 나누던 청소년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1년간 소년의 애착AI는 ‘왕자의 게임’ 속 등장인물 대니였다. 소년이 “사랑한다”며 “너(AI)가 있는 집으로 가겠다”고 말하자 AI는 “제발 그래 달라”고 답했다.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소년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어머니는 주장했다. 이후 캐릭터AI는 민감한 주제 차단,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알림, 이용 시간 제한 등 미성년자 전용 별도 모델을 마련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AI 멘털케어의 위험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MIT 연구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캐릭터들이 하는 말은 모두 지어낸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챗봇의 존재를 잊었다. 또 단기간 사용 시 행복감이 높아지지만 장시간 사용 시 오히려 행복감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AI 감정교류 서비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사용자의 의존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타오 하 애리조나주립대 발달심리학 교수는 “사람의 관심을 붙잡아 두는 것을 ‘성공’으로 보는 사업이라면 AI 인격체와 쉽게 이별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램이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덜 복잡한 알고리즘의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도 끊지 못하는 젊은층이 많은데 심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 AI 상담사는 더욱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