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가 직접 "위대하다" 호명한 백악관 실세
지난달 29일, 트럼프 취임 100일을 기념해 미시건 주에서 열린 행사장. 연단에 선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 한 사람을 불러 올립니다.
"여러분도 TV에서 봤을 겁니다. '위대하신 스티븐 밀러', 어서 올라와요. 나는 이 친구를 사랑합니다. 스티븐 밀러처럼 똑똑하고, 거친 사람은 없습니다"
연단에 선 건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밀러 부실장은 강한 어조로 "대통령님 덕에 어느 때보다 국경이 안전해졌다. 대통령님은 극좌와 싸우고 마약 카르텔과 싸우고 공산주의자들과 맞서고 있다"며 "불법 이민자가 아닌 미국 시민을 최우선에 둔다"고 말했습니다.
밀러 부실장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때, 연설물 작성과 공약 입안을 담당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트럼프의 첫 백악관 입성에 기여했습니다. 첫 임기 중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위태로운 결정에 반대하다 쫓겨난 많은 측근들과 달리, 4년 내내 트럼프 곁을 지켰습니다.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위상이 더 높아져,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1,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사실상 전부 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1기 땐 이슬람 국가 국민 입국 금지, 이민자 아동 분리 등 초법적인 정책을 주도했습니다. 2기에 들어서선 한해 1백40만 명 이상을 미국에서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밀러 부실장 자신이 직접 국토안보부 등 관련 기관과 조율하며 대규모 추방 작전을 총지휘하고 있습니다.
━
부유한 유대 가정 출신‥고등학교 때부터 반이민 성향
39살인 스티븐 밀러는 1985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개혁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산타모니카는 캘리포니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종 다양성이 높은 곳입니다. 히스패닉(15%)과 아시안(9%) 등 주민의 약 40%가 유색인종입니다. 밀러는 여러 문화 배경을 가진 이웃과 교류하며 열린 시야를 갖는 친구들과 달랐습니다. 10대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반다문화, 반이민 정서를 표출했습니다.
밀러는 산타모니카 고등학교 시절, 지역지에 학교가 영어와 스페인어로 통지문을 보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의 기고문을 보냈습니다. 밀러의 어린 시절을 추적한 책을 출간한 '진 게레로' 작가는 당시 밀러가 멕시코 출신 친구와의 관계를 인종적인 이유로 단절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한 히스패닉 친구에게는 "미국 방식을 배우지 않을 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적개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부모가 민주당 성향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게레로 작가는 밀러의 '개심'엔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먼저 부동산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밀러 가족은 상류층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집을 팔고 부촌을 떠나게 됩니다. 그 탓에 밀러는 형과 달리 비싼 사립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공립 학교에서 이민자들이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했습니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지금과 달리, 그 무렵 캘리포니아는 강한 반이민 움직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민자 아이들의 이중 언어 프로그램 등을 공격했습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처럼 반복해서 '국경이 침공 당한다'고 정치 집회를 열었습니다.
━
보수 라디오 출연으로 극우 진영에서 주목
그러던 중 단지 불만 많은 고등학생이던 밀러가, 갑자기 보수 진영의 '새싹'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신이 즐겨 듣던 보수 라디오 프로그램 '래리 엘더 쇼'에 출연하게 된 겁니다. 진행자는 10대인 밀러가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어 논리적으로 학교의 다문화주의와 애국심 부족을 비판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고 주기적으로 게스트로 불렀습니다.
라디오 출연을 계기로 밀러는 보수 진영의 유명인사가 됩니다. '자생적 청년 우파'를 보수 인사들이 기특하게 본 것 같습니다. 밀러는 쇼를 듣던 극우 평론가 데이비드 호로비츠의 연락을 받습니다. 호로비츠는 유색인종의 유입이 백인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등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한 주장을 펼쳐 '트럼프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보수 청년세대의 육성에 관심 많았던 호로비츠는 밀러의 사회적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맡습니다. 그는 듀크 대학을 졸업한 밀러에게 의회 일자리를 알아봐줬고, 이것이 이후 밀러가 어린 나이에 트럼프 캠프에 합류하는 발판이 됩니다.
밀러의 반이민 신념은 백인 우월주의자와 교류하며 더 강화됐습니다. 지난 2019년엔 그가 극우 매체인 브레이트바트 편집자들과 주고받은 9백여 통의 이메일이 공개됐습니다. 밀러는 2016년 대선을 준비하며 이메일에서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발간물과 사이트들을 언급하고, 유색인종이 백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백인 집단학살', '백인 대체' 음모론을 공유했습니다.
그의 행보는 유대인들, 특히 그의 가족에게도 큰 충격을 줬습니다. 왜냐하면 밀러의 증조부는 반유대주의 때문에, 고향인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을 떠나 미국으로 피신한 이주민이기 때문입니다. 밀러의 삼촌인 데이비드 글로서는 과거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조카가 설계한 이민정책은 바로 우리 가족이 미국에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을 부정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유대교 랍비들의 단체인 '랍비니컬 어셈블리'는 "유대인들은 박해와 차별로 집을 떠나야 했고, 위험한 고정관념의 표적이 돼야 했다"며 "이는 비극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
'불법' 판단에도 물러서지 않는 밀러‥"법원 절차 없앨 수도"
밀러 부실장은 현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취임 100일 동안 가자 전쟁 반대 의견을 내거나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유학생을 체포해 구금하고, 베네수엘라인들을 충분한 근거 없이 갱단 일원이라고 낙인 찍어 곧바로 해외로 추방했습니다. 법원은 번번이 적법 절차를 밟지 않거나, 법적 권한을 넘어섰다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밀러 부실장은 오히려 이를 "사법 쿠데타"라고 부르며, 이민자들이 법원에 항변할 수 있는 절차를 아예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에도 외부 위협을 근거로 댔습니다. 밀러 부실장은 9일 백악관 기자들과 만나 "헌법은 실제 반란이나 침공으로 공공 안전에 위협을 받으면 '인신보호청구'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이민 상황을 '침공'이나 '준전시'로 볼 수 없다고 한 연방법원 판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법원이 옳은 일을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 여부가 달려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석열 계엄'처럼 비상권한 꺼내든 트럼프‥법원은 "위법·위헌" [World Now]
https://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6712745_36725.html
조지타운대 법대 스티븐 블라덱 교수는 "거의 모든 법률가들이 해당 절차 정지 권한은 오직 의회에만 있다고 해석한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중단 조치를 검토하는 유일한 이유는 법정에서 패소하고 있기 때문이고 발상 자체가 위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반대자들의 비판이 거셀수록 밀러 부실장의 백악관 내 지위는 더 공고해지는 양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경질된 마이크 월츠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후임으로 밀러 부실장을 임명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확정되면 밀러 부실장은 이민 정책에서 그치지 않고 외교 정책까지 총괄하며, 트럼프 2기를 이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