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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홍제루/사진=고송희 인턴기자

사찰이 달라지고 있다. 기도의 장소였던 사찰은 이제 문화콘텐츠이자 쉼의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템플스테이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세계적 셰프들이 사찰음식을 배우러 찾아온다. 불교 철학은 카페 인테리어로 들어가 일상에 조용히 스며든다. 서울 곳곳 불교 ‘핫플레이스’로 진화 중인 현장을 직접 찾았다.

열린 문화의 공간 진관사
은평한옥마을/ 사진=고송희 인턴기자


서울 은평구 북한산 초입 ‘하나고·삼천사·진관사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은평한옥마을이 있다. 전통찻집, 기념품 가게, 미술관, 박물관 등이 이어진 이 길은 북한산 능선을 배경으로 걷기 좋다.

화요일 오후 2시. 유모차를 끄는 부부, 등산복 차림의 중년들,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한 이들이 한옥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한옥마을에 난 길을 따라 900m쯤 걷다 보면 진관사에 닿는다.

진관사 연지원/ 사진=고송희 인턴기자

진관사 안에는 전통찻집 ‘연지원’이 있다. 쌍화차의 진한 향이 문밖까지 퍼진다. 대추차, 오미자차, 연꽃빵, 팥빙수까지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어 찻집만 따로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날도 실내 한옥 좌석, 마당, 온실 자리까지 대부분 자리가 차 있었다. “진관사만 오면 꼭 쌍화차를 먹고 싶어”라는 말이 귓가를 스쳤다.

진관사 홍제루/사진=고송희 인턴기자

찻집과 오층석탑을 지나 걷다 보면 홍제루에 이른다. 홍제루 아래로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머리 위를 덮는다. 연등 아래에는 ‘가족 건강’, ‘만사형통’, ‘소원 성취’ 같은 염원이 적힌 소원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시기, 대웅전 앞에서는 관불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작은 국자로 아기 부처의 어깨에 물을 붓고 합장했다. 맑은 물줄기가 아기 부처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듯이 고통과 번뇌가 씻겨 내려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경내로 번졌다.

진관사 칠성각/사진=고송희 인턴기자

진관사는 우리 역사의 아픔도 간직한 곳이다. 2009년 칠성각 보수 중 항일 태극기와 ‘조선독립신문’ 등이 발견됐으며 이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이끈 백초월 스님의 자료로 추정된다. 그의 뜻을 기려 진관사에는 ‘백초월길’이 조성됐다.

역사의 시간을 지나온 진관사는 요즘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숲길 걷기, 명상, 차담 등 휴식형 프로그램을 포함한 템플스테이는 예약 전쟁이 벌어질 정도다. 외국인 참가자도 늘고 있다. 사찰 안내실 직원은 “외국인을 위한 통역 봉사자도 따로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경내에는 영어 안내문과 체험 소개 팸플릿도 마련돼 있었다.

산사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진관사는 조선 태조 때 ‘국행수륙재’ 장소로 지정된 이래 전통 음식의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맥이 끊길 뻔했지만 1970년대부터 스님들의 노력으로 사찰 음식 문화가 복원됐다. 지금은 ‘자연을 먹다’라는 이름의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참가자들은 스님과 함께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가래떡과 절편, 백설기 등 떡도 직접 만든다. 기자도 방문 당시 흰절편을 얻어 먹었는데 소박한 그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진관사의 사찰 음식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백악관 부주방장이었던 샘 카스는 이곳에서 콩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고 2015년에는 질 바이든 여사가 직접 방문했다. 2023년에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 셰프들이 진관사를 찾아 사찰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진관사 / 사진=고송희 인턴기자
진관사는 불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일주문과 해탈문 사이에 있는 ‘종교를 넘어, 마음의 정원 진관사’라는 팻말처럼 누구나 잠시 머물며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전통과 역사, 음식과 체험을 품은 진관사는 사찰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조용한 사유의 공간 길상사
길성사 일주문/사진=고송희 인턴기자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 02번 마을버스를 타면 고급 주택가와 높은 담장이 길게 이어지는 풍경이 보인다. 담 너머로 잘 단장된 정원과 작은 갤러리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올 즈음, 길상사 일주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원래 1930년대 요정 ‘대원각’이 있던 자리다. 정치인과 문화인들이 드나들던 이 공간은 김영한 여사가 법정스님에게 전 재산과 함께 시주하면서 1997년 ‘무소유’의 철학을 품은 사찰 길상사로 다시 태어났다.

길성사 침묵의 집/사진=고송희 인턴기자

길상사는 아담하고 고요하다. 산 중턱에 자리한 이 절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풍경 소리가 울린다. 경내 곳곳 벤치에는 가만히 앉아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침묵의 집’이다. 누구나 들어가 명상을 할 수 있다. 방 안에는 사진작가 준초이의 ‘반가사유상’ 사진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다른 한쪽엔 ‘원래의 나를 만나는 정화된 공간’이라는 작가의 문구가 함께 놓여 있다.

요즘 성북동 일대에서는 ‘길상사 구경 + 빵지순례’ 조합이 유행이다. 50년 전통의 나폴레옹제과, 성북동빵공장, 밑곳간, 오보록 같은 개성 있는 베이커리들이 길상사 주변 도보 거리에 촘촘히 자리해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만 ‘길상사 근처 빵집’ 키워드로 3000개가 넘는 후기가 등록돼 있다. 사찰 옆에 있는 ‘수연산방’도 많이 찾는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옛집이자 작업실이던 이곳은 그의 외종 손녀가 1998년부터 전통찻집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 다관과 찻잔 사이로 옛 문인의 숨결이 흐르는 공간이다.

절이 아닌 곳에서도 불교 감성은 색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서울 문래동의 카페 ‘극락왕생’은 불상과 향로, 연꽃 조형물 등 불교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 유명 연예인이 방문하며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탔고 블로그 후기만 3600건을 넘는다. 보문역 근처 카페 ‘유즈리스 어덜트’에는 거대한 불상과 고미술 느낌의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없던 불심도 생기는 카페’라는 후기처럼 일상 속에서 불교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다. 절은 더 이상 경전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침묵의 경험, 무소유의 여백은 도시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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