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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전문가인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가 2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1차 한·미 관세협의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트럼프발 관세’를 없애거나 낮추기 위한 한·미 협의가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지난 24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재무·통상 수장이 마주한 가운데 양국은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위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의제는 관세·비관세,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이다.

첫발을 내딛은 한·미 관세 협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정부는 “차분하고 질서있는 협의를 위한 양국 간 인식 공유”(최상목 경제부총리)를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첫 출발’부터 미국에 지나치게 순응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통상전문가인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통상학과)는 이번 협의에 대해 “‘미국의 요구사항 파악’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부터 달성하지 못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면서 “지레 겁먹고 주눅들어 미국의 상호관세 등을 상수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임했다”고 비판했다. 28일 경향신문사에서 김 교수를 만나 한·미 통상 협의에 대한 평가와 조언을 들었다.

“미국의 요구사항 파악부터 했어야”

-지난 24일 미국과의 첫 통상 협의가 있었다. 협의 일정과 범위를 확정한 이번 만남에 대한 총평부터 듣고 싶다.

“애초 ‘왜 갔느냐’를 묻고 싶다. 미국이 우리에게 뭘 요구하는지를 듣고 오는 것이 ‘출발점’이었어야 한다. 정부 설명을 들어보면, 우리가 미국에 무엇을 얘기했는지에 대한 내용뿐이다. 미국 입장에 대한 질문에는 ‘추정한다’는 수준에서 말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무엇이었다’ 정도는 말할 수 있었어야 한다. 이번 방미의 주요 목적(미국의 요구 파악)을 달성하지 못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본다.”

-미국은 그간 ‘당신들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을 먼저 꺼내보라’는 식이었다.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었다고 보나.

“그렇다. 지레 겁먹고 주눅들어 수동적·수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7월 패키지’라는 말도 부적절하다. 왜 시한을 박아야 하나. 상호관세 유예가 90일 뒤 종료되기 때문에 그 시점에 맞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전에 상호관세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패키지’라는 말도 문제다. 사안에 따라 분리해 논의해야 할 수도 있는데 마치 ‘싱글 언더테이킹’(한 번의 협상으로 모든 사항을 일괄 타결짓는 방식)을 할 것처럼 신호를 줬다. ‘최대한 7월8일 이전에 타결해보자’ 정도만 했으면 될 일이었다. 네 가지 의제(관세·비관세,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가 설정된 것도 순서가 바뀌었다. 우리가 먼저 분야를 제시할 게 아니라 미국이 뭘 원하는지를 들어본 뒤에 정리했어야 한다. 그리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먼저 제안해 포함된 의제인) 환율은 미·일 협상에선 빠진 의제다. 그걸 우리가 몰랐을 리 없는데 덜컥 받아들인 것도 문제다.”

-환율이 의제에 포함됐지만, 외환당국이 원화 약세를 유도해온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양국 간에 이 의제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환율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질적인 득실과 함께 상징적 주권 침해 가능성까지 함께 숙고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에 제시해야 하는 원칙엔 주권의 문제도 포함된다. 아울러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압박과 관련해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간기업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도 얘기해야 한다. ‘시장 자율성’ 존중도 원칙으로 강조했어야 한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한국의 최상목 경제부총리(왼쪽에서 두번째)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맨 왼쪽),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왼쪽에서 세번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가 ‘2+2 통상협의’를 가졌다. 기획재정부 제공


-이번 협의에서 정부가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방안을 언급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미국이 좋아할 카드를 왜 ‘첫 테이블’에서부터 써버렸는가. 현대자동차그룹의 31조원 대미투자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인 순간에 잘 모아서 터뜨렸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민관 소통은 잘되고 있는지, 협상 전략은 잘 짜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유예되기는 했으나 상호관세(한국에 25% 부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정면으로 파기하는 행위였다. 여기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은 전달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유감 표명을 했어야 한다. 한·미 FTA는 트럼프 1기 때 재협상한 것인데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해야 했다. 미국은 상호관세 발표 때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무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우리도 그것에 준하는 요구를 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미국의 일방적 계약 파기를) 상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협상 상대인 베선트 재무장관은 ‘기승전 관세’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기에 (우리의) 첫 협의 태도가 더욱 아쉽다.”

“한·미 FTA 파기에 유감 표명했어야”

-우리보다 1주일 먼저 협상을 시작한 일본은 어땠나.

“일본은 협상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원칙을 미국에 밝혔다. 양국에 ‘윈윈’이 돼야 한다는 것과 국제법에 부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상호관세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의 비차별 원칙인 ‘최혜국 대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상호관세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얘기다. 일본은 최대한 지연 작전을 펼치면서 협상 시한을 설정하지도 않았다. 좋은 학습자료가 있었는데 제대로 참고했는지 의문스럽다.”

-첫 협의가 끝난 뒤 한국 정부는 “서두르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질서있는 협의를 위한 양국 간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최상목 경제부총리)고 말했다. 반면 미국 측은 “이르면 다음주 ‘양해에 관한 합의(agreement on understanding)’에 이를 수 있을 것”(베선트 재무장관)이라고 했다. 협상 속도에 대한 양국 인식차가 크다.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서로가 무엇을 합의했는지’를 명확히 했어야 한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 회의실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 기획재정부 제공


“미국에 순응적 태도…한덕수 대행 ‘조급증’ 영향 미쳤을 수도”

-한국이 미국에 순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조급증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한 대행은 한국이 미국에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 대행이 그간 (관세협상을) 본인 대선 출마에 활용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은 행보를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그는 왜 영어를 썼을까. 통역을 쓰면서 가급적 트럼프 대통령이 많이 말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자신이 영어를 잘하는 국제적 인물이라는 걸 과시하고 싶어서,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신중히 듣는’ 전략은 놓아버린 것 같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에 ‘맞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전투하러 나가는 사람이 ‘너에게 이길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국익을 챙겨야 하는 사람으로서 해선 안 되는 얘기였다. 부적절하고 무책임했다. 고위급 관료들은 새 정부가 들어오면 물러날 사람들이지만 실무진은 다르다. 한 대행은 대선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협상에서 손을 떼야 하고, 다른 고위급 관료들도 무책임하게 일을 벌여 남아있는 실무진을 힘들게 해선 안된다.”

-한·미 협의는 시작됐고 ‘대행 체제’ 정부라 해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미국과의 협의는 어느 수준까지 진행되는 게 좋을까.

“현 정부는 지금 꼭 해둬야 하는 일 두 가지만 하면 된다고 본다.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뭔지를 정확하게 듣는 것, 그리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를 비축해놓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 돌덩이를 올려놓은 상황이다. 짓눌린 우리로서는 어디까지 양보하는 게 국익에 부합하는지 냉정한 계산을 해야 한다. 지나친 양보를 하느니 차라리 관세 부담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 계산을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것들의 순위를 면밀하게 생각해보고 하나씩 제시해보는 식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왜 ‘패키지’를 얘기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가 2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1차 한·미 관세협의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움직이는 과녁에 화살을 쏘지 마라”

-우려와 달리 이번 협의에서 방위비는 논의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방위비를 별도로 다루겠다고 한다.

“안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트럼프는 상대가 세게 나오면 함부로 못하는 반면 약해 보이면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기싸움을 잘해야 하는 상대다. 그런 면에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이 정말 아쉽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은 향후 어떻게 귀결될 것이라고 보나.

“지금은 미국의 관세조치에 대한 불확실성을 넘어,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형국이다. 주가와 국채가격, 달러 등의 트리플 약세가 이어지는 것은 미국에게는 불길한 징조다. 미국의 금융패권까지도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여서 트럼프 대통령이 감당하기 힘들다. ‘트럼프 관세전쟁’을 전망하려면 주요 변수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국 행정부·의회 내부 이해관계자, 동맹과 우방,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 이 세 가지 이해당사자 그룹의 태도를 지켜봐야 하는데 그중 지지기반의 태도가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향후 국채금리와 인플레이션 지표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지지기반의 반응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상호관세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기본관세 10%는 거둬들이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내 감세를 위한 세원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향후 미국과의 협의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과녁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자체가 확정되지 않았다. 움직이는 과녁을 향해 함부로 화살을 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쏴도 되겠다’ 싶을 때까지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 이제는 과녁이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 내 반발 등으로 인해) 과녁이 사라질지 어쩔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급하고 순응적일 필요가 없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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