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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장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관. 로이터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묻힌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앞엔 ‘로마 백성의 구원’을 뜻하는 성모 마리아 성화(살루스 포풀리 로마니·Salus Populi Romani)가 세워졌다. 교황은 12년 재위 기간 동안, 이 성화 앞에서 126차례나 기도를 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그의 신심은 깊었다. 26일(현지시각) 저녁, 대성전을 찾은 로마의 시민들은 교황이 사랑한 마리아 성화를 마주하고 그를 위한 묵주기도를 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성화와 함께 부활을 기다리며 긴 잠에 들었다.

이날 로마 시내는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교황의 장례미사는 아침 10시(한국시각 오후 5시)부터 시작됐지만, 전날부터 바티칸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성 베드로 광장에 들어간 추모객도 있을 정도로 미사를 보려는 이들의 마음은 뜨거웠다. 유럽 인접국뿐 아니라 인도와 파키스탄, 탄자니아, 미얀마 등 세계 곳곳의 성직자들이 바티칸을 찾았다. 교황청은 이날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 수만 약 25만명이라고 추산했다.

대규모 인파가 밀집했음에도 미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추기경 단장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의 주재로 220여명의 추기경과 주교 750명, 4000명 넘는 사제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관이 광장으로 나오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별다른 장식 없이 십자가가 새겨진 소박한 목관 위에 놓인 복음서는 순간 불어온 바람에 ‘주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내용이 적힌 부분을 펼쳐 보였다.

26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린 성 베드로 대광장 모습. 사진 장예지 특파원[email protected]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늘 낮은 자와 함께한 교황의 생애를 전했다. 레 추기경은 “(교황은) 우리 중 가장 약한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바쳤다”며 “(그는) 민중 속의 교황이자,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교황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처음 방문한 곳은 국경 탈출을 감행하다가 바다에서 익사한 이민자들이 발견되는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이었던 것을 회상하며 그가 생전 강조했던 이민자, 난민 문제와 기후위기, 전쟁의 비극을 되짚었다.

26일(현지시각)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UPI연합뉴스

참석자 면면을 보면, 교황의 자리가 주는 무게와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의 궤적을 동시에 보여준다. 150개국 정상과 대표단 및 왕실 인사, 종교 지도자들이 단상에 올랐고, 취재진 수만 2000여명에 달했다. 이 단상 1열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앉는 등 60여명의 국가 원수와 왕족이 참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광장에 등장할 땐 군중의 박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노숙자 생활을 했던 안토니오 시라쿠사가 26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서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광장 한 편에는 난민과 이민자, 수감자, 노숙인, 성소수자 등이 미사에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생전에 각별한 관계를 가졌던 이탈리아 난민 구호단체 ‘지중해 구조단’과 ‘리비아 난민’ 대표단이 장례미사에 초대를 받았다고 영국 가디언은 보도했다. 지난 2023년 리비아에서 구금돼 고문과 학대를 당한 뒤 이탈리아로 탈출한 리비아 난민의 마하마트 다우드는 “(교황의) 죽음은 정말 슬프다. 그는 난민과 취약한 사람들의 편에 선 유일한 교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출신의 로만 스크리프뉴크 신부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운 11년 전부터 교황은 우크라이나인을 위해 기도해주셨다”며 “교황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현재 살고 있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왔다”고 말했다.

90여분간의 미사 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제관은 로마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등을 지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도착함으로써 여정을 마쳤다.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묻힌 역대 교황들과 달리 바티칸 바깥의 마조레 대성전에 눕길 원했다.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하길 원했던 교황이기에 바티칸 밖에 머물기 바란 그의 선택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교황의 운구차 행렬은 대형 스크린과 방송으로 실시간 생중계됐다. 6㎞가량의 길목엔 약 15만명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간소한 장례를 원했던 교황답게, 운구차도 2015년 필리핀 방문 때 탄 전용 의전 차량을 개조한 것을 썼고, 행렬도 케빈 패럴 교황청 궁무처장을 비롯한 일부 추기경과 가족·친지가 함께해 길지 않았다.

26일(현지시각) 로마 콜로세움을 지나가고 있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운구차량. 로이터 연합뉴스

마조레 대성전에 도착한 교황을 마지막으로 맞이한 건 노숙인과 수감자 등 40여명이었다. 이들은 흰 장미를 들고 대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교황의 목관을 바라봤다. 대성전 안에선 교황의 관을 무덤에 안장하는 의식이 30분가량 진행됐다. 방문객들은 27일부터 마조레 대성전에서 교황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이날 장례미사에 참석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한겨레에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당신의 삶을 통해 드러내려고 한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라고 전했다.

바티칸/장예지 특파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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