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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레지던스 왜 인기 끄나 보니
사회적 관계망 형성되고 건강도 유지
놓치기 쉬운 끼니 해결돼 편리성 커져
대선 후보들도 저마다 '실버타운' 공약
2월 27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고령자 복지주택에 사는 김준임씨가 자택에서 키우는 꽃을 매만지고 있다. 정다빈 기자


"쿵딱 쿵딱 쿵딱 쿵딱~"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서울 강북구 번동주공3단지에는 보통의 아파트와는 다른 특별한 동 하나가 있다. 1층 한편에는 치매안심센터, 여가프로그램 강좌실, 경로식당이 들어섰고 다른 쪽엔 공동육아나눔터, 키즈카페가 자리 잡았다. 한 달여 전 이곳을 찾아 1층 로비로 들어서니 왁자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오세요, 할아버님, 들어오세요." 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생되는 노래에 노인 20여 명이 형형색색 응원술을 들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반대쪽 복도 끝에서도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쳐 쓴 노인 예닐곱 명이 치매안심센터에 모여 앉아 칠교놀이에 한창이었다. 눈꽃 모양, 강아지 모양 칠교판을 받아 들고 앉아 고요히 골몰하던 중, 몇몇 노인은 강사의 지도에 따라 칠교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드디어 완성했다"며 옅은 환호를 내질렀다.

이곳은 65세 이상 무주택 노인들을 위해 정부가 공급하는 고령자복지주택(이하 번동 주택)이다. '실버타운'의 공공주택 버전이다. 노인들의 주거 안정은 물론 고령자들의 건강과 사회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특화 설계된 곳으로 1층에는 복지공간, 그 위로는 고령자복지주택 100가구와 행복주택 168가구가 조성돼 있다.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이 운영하는 시니어 레지던스(실버타운)가 최근 부쩍 활기를 띤다. 올해에만 1,000가구가 넘는 시니어 레지던스가 공급될 예정이다. 한때는 공급자나 수요자 모두에 기피 대상이기도 했던 실버타운이 이젠 각광받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민영·공공 시니어 레지던스를 돌아보며 입주민 7명의 얘기를 들어봤다.

2월 27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고령자복지주택 전경. 정다빈 기자


① 놀거리 주고: 넉넉한 사회관계망과 여가활동

2월 27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고령자복지주택 1층 건강센터에서 주민들이 응원술을 들고 활동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시니어 레지던스는 자칫 홀로 남겨질 수 있는 노인들을 한데 모아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은퇴 후 사회 관계망이 느슨해졌거나 독거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민간은 물론 공공 주택이 공을 들이는 이유다.

고령자복지주택의 경우 주거 시설과 복지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형태다. 번동 복지주택 역시 아파트 1층에 여가시설을 마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복지주택 입주민뿐 아니라 인근에 사는 노인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둬 참여자들이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했다. 건강체조나 맞춤운동, 노래교실은 물론 마술, 미술, 원예정서치료 등 매일 여러 강좌에 참여할 수 있다. 입주자 김준임(79)씨는 "같은 동(행복주택)에 신혼부부나 아이가 있는 젊은 부모들도 입주해 있어 여러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장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민간 주택은 입주민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동호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프리미엄 주택인 서울 광진구의 더클래식500의 경우 검도, 골프, 바둑 동호회 등을 장려한다. 지난달 31일 만난 한 입주자는 "신부님을 이곳으로 모셔다가 기도를 하거나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관심사나 취미에 따라 여러 모임이 활성화돼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고 전했다. 수시로 연주가들을 초청해 연주회를 열거나 연말연초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프라이빗 파티를 열기도 한다.

지자체별 노인주택 현황


2월 27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고령자복지주택 내 치매안심센터에서 주민들이 칠교활동을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② 돌봐주고: 빠르게 접근 가능한 건강관리시설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의 한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에서 거주자들이 건물 안을 산책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시니어 레지던스 대부분은 고령자 친화 설계가 돼 있다. 노인에게는 치명적인 낙상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턱을 없애거나 화장실 곳곳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식이다. 올해 10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강서구의 VL르웨스트(810실 규모)는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 설계로 동선을 최소화했고, 비상콜 시스템을 도입해 위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짰다. 시공사인 롯데건설 관계자는 "입주 보증금이 최소 6억 원대에서 최대 18억 원대까지로 호텔식 입주민 서비스를 표방한다"며 "임대 계약이 이미 다 끝났다"고 전했다.

노인들의 고민거리인 건강관리를 수시로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번동 주택 1층 치매안심센터엔 상주 직원 5명이 검진 및 상담을 진행해 매일 평균 4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번동 일부 지역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가 31.5%에 달하는 곳도 있어 치매 조기검진과 인식개선 사업이 필요한 곳"이라며 "고령자복지주택 바로 아래에 있어 접근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민영주택은 종합병원 접근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기도 한다. 인천 서구 청라동의 더시그넘하우스 청라는 인근에 의료복합타운이 2029년에 들어설 예정이다. 대형병원과 연계한 응급 대기 후송체계도 구축돼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카운티의 경우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이 반경 5㎞ 안에 있고, 전북의 서울시니어스 고창은 24시간 간호팀이 상주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뛰어난 의료진과 협업할 수 있는지, 상주 간호사를 어느 정도로 운영 가능한지 여부가 입주비 산정의 관건"이라고 귀띔했다. 일부 고급 복지주택은 상주 간호사 규모가 10명이 넘는다.

③ 먹여주고: 끼니, 더 이상 귀찮지 않게

2월 27일 서울 강북구 번동 고령자주택의 한 가구 모습. 고령자 친화 설계가 돼 있어 문턱이 없고 화장실엔 미닫이문과 손잡이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정다빈 기자


노인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것은 끼니다. 귀찮아서, 입맛이 없어서 건너뛰면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민영주택의 경우 끼니당 2만 원이 넘는 고가 식단이 마련돼 있고 월 30식, 60식, 90식 등으로 의무 제공하거나 선택할 수 있도록 옵션을 두고 있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한 민영주택 입주자는 "장보기도, 요리하기도 버거워 식사를 주지 않았다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입맛이 깐깐한 편인데도 식단이 잘 나온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고령자복지주택은 건물 내 마련된 고령식당에서 학교 급식 같은 방식의 끼니를 무료로, 혹은 소정의 비용을 받고 제공하고 있다. 충북 일부 지자체는 고령자복지주택 내 매점과 식당 운영을 시니어클럽에 위탁해 노인 일자리 창출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시니어 레지던스 확대, 피할 수 없는 길



한국도 65세 이상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화사회에 본격 진입하며 시니어 레지던스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노인으로 분류되지만 적극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영 시니어' '액티브 시니어' 비중이 커지며 소비 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2020년 72조 원에서 2030년 168조 원까지 확대된다.

정부도 변화에 발맞춰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국토교통부와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해 △인구감소지역에 분양형 실버타운을 도입하고 △고령자복지주택을 매년 3,000호씩 공급하며 △서비스 전문 사업자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6월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도 △신규 주택 공급 시 고령층 편의시설 의무화 △고령층에 임대주택 및 실버주택 민관 협력으로 공급 등의 시니어 레지던스 관련 공약을 내걸고 있어 새 정부 역시 관련 정책에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레지던스란시니어 레지던스는 법적 개념은 아니다. 고령자복지주택(공공임대), 실버스테이(민간임대),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등 고령자 친화 주거 공간을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주택인 고령자복지주택은 입주 조건이 정해져 있다. 65세 이상 무주택 저소득 고령자여야 하며, 생계·의료급여수급자나 가구당 월평균소득 50%(1인 70%, 2인 60%) 이하인 자들은 우선순위가 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고령자복지주택은 전국에 9,158가구 마련됐거나 입주 예정이다. 보증금 250만~1,100만 원에 월 임대료 5만~12만 원 정도로 거주 가능하다.

민영주택은 입주 조건이 천차만별이다. 1인 기준 보증금 10억 원에 월 생활비 500만 원대를 내야 하는 '프리미엄 주택'부터 보증금 1억 원, 월 생활비 110만 원대인 '가성비 주택'까지 다양하다. 다수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80세 미만의 노령자만 새 입주자로 받는다는 조건을 걸기도 하고, 배우자나 자녀와 동반 입주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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