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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마지막 7인, 그 곁의 기록]
①생존자 박필근 할머니의 곁
구술 생애사 작업을 완성한 김은주 의원
포항여성회장 당시 박씨 자택 자주 찾아
"뭐라도 들려주고, 손 흔드는 모습에 울컥"
"혐오 발언이 당사자 향하지 않도록 해야"

편집자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7명 남았습니다. 세계 곳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약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국내에 신고·등록된 피해자 수는 고작 240명(2022년 기준).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일본의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요. 남은 일곱 분의 할머니도 평균 나이 95.7세입니다. 긴 세월 싸워온 할머니들과 이들의 곁을 지킨 이들을 만났습니다.
2020년 8월 12일 박필근(왼쪽) 할머니의 자택에서 박씨와 김은주 포항시의원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김 의원은 2019년부터 박씨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자택을 열 번가량 찾았고, 그 과정에서 박씨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졌다고 했다. 김 의원 제공


"담 밑에 밤새도록 내사 맞아 죽었니더. 안 죽어 살았니더."

위안소 탈출을 처음 시도했다가 일본군으로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했던 당시를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박필근(97) 할머니와 그 가족의 구술생애사 자료집엔 '위안부' 피해부터 그 이후 삶을 개척해온 여정, 아들 남명식(62)씨의 증언까지 놀랍도록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 구술생애사 자료집이 나오기까지는 김은주 포항시의원의 노고가 있었다. 그는 2018~2022년 포항여성회장을 지낼 당시 박씨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사업으로 기획, 구술집을 완성했다. TV 다큐멘터리 '박필근 프로젝트'와 창작 판소리 '박필근뎐' 제작에도 참여했다.

김 의원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박씨 자택을 주기적으로 찾는다. 지난달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시의회에서 만난 그는 "(박씨는) 친할머니와 다름없다"며 "지금도 '잘 지내실까' '날 찾으실 텐데'라고 수시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시의회 사무실에서 김은주 포항시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박필근(97) 할머니 구술생애사 작업을 했을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포항=최은서 기자


구술생애사 작업을 위해 열 번 방문... 끝내 마음을 열다



2019년 구술생애사 작업 초기, 김 의원은 박씨를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일상 대화까지는 잘 나누다가도 결정적으로 위안소 얘기를 꺼내면 박씨가 입을 열지 않아서였다. 김 의원은 "먼 거리를 찾아갔다가 아무 얘기도 못 듣고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김 의원은 박씨를 총 열 번가량 찾았다. 자택을 대여섯 번 방문했을 때쯤엔 '계속 이러는 게 맞나' 고민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꼭 피해 내용을 억지로 듣지 않더라도, 이후의 삶을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며 "작업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후 박씨가 끝내 김 의원에게 마음을 열면서 자료집엔 '위안부' 피해 얘기도 담겼다.

고구마 삶아주고, 끝까지 손 흔들어... "친할머니 같아 울컥"

2019년 3월 15일 자택을 찾은 김은주 포항시의원에게 박필근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고구마를 챙겨주는 모습. 김 의원은 "할머니가 절대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 제공


자식 다섯을 모두 제 손으로 산에 묻은 얘기,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다는 얘기. 박씨 생애를 들을수록 김 의원은 박씨가
"위대하다"고 생각
했다. 그는 "할머니가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했다' '내가 다 벌어먹었다'라며 생활력을 자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며 "피해자라는 단어에 눌려 수동적인 인물로 비칠 분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김 의원에게 그저 정 많은 할머니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다니는 길 위험할까, 사위가 어두워진다 싶으면 박씨는 늘 김 의원에게 "얼른 가라"고 채근했다. 떠나는 김 의원 손에 뭐라도 쥐어주었고, 줄 게 없으면 고구마를 삶거나 상추라도 뜯어 들려 보냈다. 김 의원은 "기력이 더 괜찮으실 땐 배웅을 나와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줬는데, 그 모습이 꼭 친할머니 같아 그렇게 울컥했다"고 전했다.

의미 있다고 실감 못한 지난날... 수년 지나서야 위로받아



김 의원은 구술생애사 작업에 진심을 다한 건 맞지만 스스로 자료집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실감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에는 또 다른 일들을 병행하느라 몸을 혹사했던 데다, 나로선 자료집을 볼수록 오탈자 같은 아쉬운 점만 자꾸 보여 의미를 느끼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자료집을 내고서 약 3년이 더 지난 2023년, 그때야 의미는 새롭게 다가왔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가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김 의원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위안부' 문제와 지역성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이때 구술생애사 작업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던 중 그는 불현듯 구술생애사 작업의 진짜 의미를 깨우쳤다고 했다.

김 의원은 "(구술생애사 작업이) 과거를 기록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로까지 연구와 논의가 지속되도록 돕는다는 걸 깨달았다"며 "
자료집을 토대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이어서 연구하려는 다른 이들의 노력을 보면서 비로소 위로를 받은 느낌
이었다"고 전했다.

"다리 아프다" "잠 몬 잔다"... '위안부' 상처는 그렇게 남았다

2019년 9월 10일 자택을 찾은 김은주 포항시의원에게 박필근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 모습. 김 의원 제공


박씨에게는 '위안부' 피해로 인한 상흔이 곳곳에 남았다. 위안소 첫 탈출 실패 직후 일본군으로부터 심하게 맞은 다리 부위를 아직도 아파하고, 불면증도 심하다. 김 의원은 박씨를 찾을 때 늘 케토톱(파스)과 청심환을 사간다. 그는
"할머니께서 '다리 아프다' '밤에 잘 몬 잔다' 하시는 걸 듣다보니, 언젠가부터는 그때 설움을 매번 상세하게 말씀하기 어려워 돌려 말하시는 것처럼 들리더라"
고 했다.

"'위안부' 역사는 이렇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데 너무 안타깝죠." 김 의원은 최근 '위안부' 피해 회복 운동을 향한 혐오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고 토로했다. 그는
"'위안부'에 대한 관심이 뜸해지고 왜곡된 주장이 많아질수록 할머니와 가족이 느낄 상실감이 우려된다"며 "혐오 발언이 당장 이들에게 향하지 않도록 막는 게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인터뷰 다음 날인 19일 김 의원은 기자에게 "할머니 댁에 왔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동영상 하나를 보냈다. 김 의원에게 박씨가 사과를 깎아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최근 김 의원은 박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그래 고생했고 이래 똑똑하니까 사람들이 찾아오고 먹을 것도 주지. 할머니 이거 다 받을 만한 분이라서 받는 거예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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