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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무관한 참고 사진. 게이티미지뱅크

수어통역사 A씨는 지난 16일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농아인 여성이 다급한 손짓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남편이 심장 통증과 함께 호흡 곤란을 호소한다고 했다. 남편 역시 농아인이었다. 아내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 119에 신고했지만, 집에 온 구급대원에게 남편의 증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들 부부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통역을 도왔다는 A씨는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직접 119에 신고할 수 없어 편의점 직원에게 도움을 청한 농인도 있었다”고 착잡해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7일 공개한 ‘2024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등록된 장애인은 263만1356명이다. 15개 장애유형별로 살펴보면 지체장애(43.0%)가 가장 많았고 청각장애가 16.8%(44만2034명)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새롭게 등록된 장애인은 8만5947명이었는데, 그중 1위가 청각장애(31.7%)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농인이 여전히 일상 곳곳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각장애인 B씨는 “수어통역사의 도움을 받으려면 수어통역센터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병원 일정과 통역사 일정, 내 일정 등을 조율하다 보면 가능한 날이 거의 없어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현재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위탁·관리하는 수어통역센터가 전국에 있지만, 서울 기준으로 한 센터당 청인 통역사는 3~4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농인에게는 필담으로 의료진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청각장애를 갖게된 경우 한글을 익히기 전에 수어 자체를 별도의 언어처럼 먼저 배운다. 또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같이 가진 농아인도 많기 때문에 휴대전화의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A씨는 “‘항생제’라는 단어를 모르는 농인에게 ‘염증이 났을 때 먹는 약’으로 풀어서 설명한 적이 있다”며 “모르는 단어를 몰래 적어와서 물어보는 농인도 있다”고 전했다. 청각장애인 C씨도 “수어통역사가 없는 병원에서 필담으로 대화한 적이 있는데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년 장애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각장애의 경우 2023년 등록장애인은 약 43만명이었다. 그중 수어를 주요 소통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3.4%(약 1만4260명)였다. 같은 해 언어장애인은 6만9000명이었고, 수어 가능 비율은 13.5%(9315명)였다. 이 통계대로라면 약 2만명이 수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상대방이 수어를 사용할 줄 몰라서’라고 답한 비율까지 계산하면 실제 사용 인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추정치보다 조사에서 잡히지 않은 사용자가 더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복지부는 예산 약 2억2000만원을 투입해 병원에 수어 통역사를 상시 배치하는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상반기 중 종합병원급 이상인 의료기관을 상대로 모집 공모를 내서 5곳을 선정할 예정이다. 선정된 곳에는 하반기부터 수어통역사 1명과 의료 코디네이터 1명이 상시 배치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 후 경과를 보고 시행 병원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복지정책 전문가인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일 “병원에 수어통역사가 상시 배치된다면 그들이 통역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직무 범위에 대한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아예 수어통역센터의 통역사를 증원해서 이용 편의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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