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 사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했던 ‘전 국민 현금 지급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고물가 대응을 명분으로 꺼낸 이 정책은 야당의 비판과 싸늘한 여론에 부딪히며 일주일 만에 폐기 수순을 밟았다. 여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여당이 준비해온 핵심 경제 대책이 백지화된 셈이다.
당초 일본은 국민 1인당 3만~10만 엔(약 30~10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안을 검토해왔다. 여당인 자민당 고위급 인사들이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직접 찾아가 “빠르게 효과를 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 신문은 “국민 실질소득이 연간 4만엔(약 40만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이를 보전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소득 제한 없이 전 국민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는 방식에 대한 반대가 컸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현금 지급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응답은 76%에 달했고, 교도통신 조사에서도 ‘반대’가 55.3%로 ‘찬성’(37.5%)보다 높았다. NHK 조사에서 찬성 비율은 38%에 그쳤다.
야당도 반발했다. 최근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제3야당 국민민주당이 신바 가즈야 간사장은 “국민 세금을 걷어놓고 다시 현금으로 나눠줄 거라면 처음부터 걷지 말아야 한다”며 실효성을 지적했다. 제2야당 일본유신회의 마에하라 세이지 공동대표는 “선거를 앞둔 명백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표를 깎아 먹을 뿐”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다. 자민당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만 받으면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성 역시 부정적이었다. 과거 현금 지급이 대부분 저축으로 흘러가 소비 진작 효과가 없었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자민당 지도부를 설득했다. 재무성은 국민 1인당 5만 엔(약 50만 원)을 지급할 경우 약 6조 엔(약 60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17일(현지시간) 자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선거용 비책으로 여겨졌던 현금 지급안이 불과 일주일 만에 사그라졌다”고 전했다.
대신 일본 정부는 휘발유 가격 인하, 전기·가스요금 지원, 저소득층 대상 3만 엔 지급 등 실질적 물가 대책에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가격 급등이 우려되는 쌀은 정부는 비축미 방출을 통해 공급을 안정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