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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에 대한 신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달러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글로벌 금융질서의 기반이자 국제 통화시스템의 중심축으로 작동해왔다.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이 달러로 유지되었고 국제 무역 및 투자 흐름 역시 달러를 기준으로 조정돼 왔다.

그러나 지금 각국 중앙은행은 이 오래된 전제에 점차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 70%를 넘겼지만 2023년 기준 59%까지 하락했다. 눈에 띄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 변화다. 글로벌 자산 운용자와 중앙은행들이 달러 중심의 금융질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이제 가시적인 흐름이 됐다.

이 같은 흐름의 시작은 미국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대규모 양적완화와 저금리 정책을 반복하면서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급격히 팽창시켰고 정부의 재정적자도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다.

2020년 팬데믹 당시의 부양책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여기에 반복되는 부채한도 협상 파행과 셧다운은 미국 국채의 ‘무조건적 안전성’에 금을 냈다. 특히 2011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사건은 상징적이다. 이는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전통적인 신뢰를 잠식시켰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점차 자산 다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탈달러 흐름은 단지 금융시장의 반응이 아니라 지정학적 의도를 동반한 전략적 선택으로 진화했다. 중국,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비서방 국가는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 국채 보유를 줄이기 시작했고 그 빈자리를 다른 형태의 준비자산(금, 위안화, 유로, 비전통 통화)으로 채워왔다. 이 국가들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닌, 달러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통화 주권 강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미국과 유럽의 금융 제재에 직면하면서 달러 자산을 거의 완전히 청산했다.

스위프트(SWIFT)에서의 배제, 외환 거래 차단 등은 러시아에 ‘미국 통화 체계에 대한 의존은 곧 국가안보 리스크’라는 교훈을 남겼고 이는 곧 루블과 위안화 간 직거래 확대, 금 비축 확대, 자체 결제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졌다.

같은 시기에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e-CNY)를 실험적으로 도입하면서 미국 중심의 금융망을 대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mBridge(엠브리지) 프로젝트다.
mBridge, 디지털 시대의 탈달러 인프라mBridge는 홍콩, 중국,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주도하여 개발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기반의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이다. 이 플랫폼은 기존의 SWIFT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 간 직접 연결을 목표로 한다.

기존 글로벌 결제 구조는 대부분 미국 은행을 경유하며 달러 결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는 미국의 금융제재 권한을 가능케 하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 그러나 mBridge는 이러한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난 독립형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미 mBridge를 통해 실거래 실험에 성공했고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일부 국가와의 실무 협의도 진행 중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 사용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금융주권과 통화패권의 확장을 위한 플랫폼이다. 달러화 결제 시스템의 ‘디지털 대체물’로서 작동할 수 있는 잠재력은 국제통화체제의 구조적 재편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처럼 기존 질서가 탈달러 흐름에 직면한 가운데 미국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바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서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일대일로 가치를 연동시키는 디지털 자산으로 테더(USDT), 서클(USD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유통되는 만큼의 준비자산을 실제로 보유해야 하며 이 준비자산 중 상당 부분이 미국 국채, 특히 만기 1년 이하의 단기채로 구성된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확대될수록 자연스럽게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외국 중앙은행이나 민간 자금의 이탈을 보완하는 새로운 디지털 수요 기반인 셈이다.

2024년 기준 테더는 약 91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서클은 약 29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및 레포 자산을 운용 중이다.

이는 세계 중앙은행 보유 순위로 따지면 20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단순한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가 아닌 ‘디지털 국채 보유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류 금융권에서 주변부로 취급되던 이들이 이제 미국 재무부의 국채 수요 전략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는 미국의 금리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재무부는 장기금리 안정을 정책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단기채 중심의 발행 비중을 확대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단기 국채에 대한 수요를 안정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장기채 공급을 줄이고 장기금리를 낮추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스콧 베선트는 최근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장기금리의 구조적 안정’이 미국 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되고 있다.
관세 갈등이 탈달러를 촉진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전쟁은 탈달러 흐름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104% 관세를 공식 발효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기술 안보와 공급망 재편, 전략 물자 통제 등 복합적인 차원의 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

무역이 위축되면 결제에 사용되는 달러의 총량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교역량 감소는 달러에 대한 실수요를 떨어뜨리며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점차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미국이 제재와 관세를 통해 달러를 ‘무기화’할수록 다른 국가는 달러 시스템 바깥의 대안을 모색할 동기를 갖게 된다. 이는 곧 mBridge, 디지털 위안화, 원유의 위안화 결제 확대 같은 움직임으로 구체화된다.

미국은 자국 정책이 불러온 탈달러의 부작용을 아이러니하게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방어하고 있다. 관세로 인해 달러 사용량이 줄어들고 국채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자산에 대한 디지털 수요를 유지시켜주는 구조적 우회로가 된다. 이들은 금융 시스템의 ‘주변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미국 국채 시장의 조용한 방패막이자 미국 통화 패권의 디지털 완충지대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지금 세계는 보이지 않는 통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시스템을 디지털 방식으로 확장·유지하려 하고 있고 중국과 신흥국은 CBDC와 mBridge를 통해 달러 없는 결제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이는 단순한 통화 간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질서의 구조를 결정짓는 ‘디지털 패권’ 경쟁이다.

달러는 여전히 국제통화질서의 중심에 있지만 그 위상은 이전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미국은 지금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가장 실용적인 도구를 활용해 그 지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 디지털 방어선이 얼마나 오래 견고하게 작동할지는 미국 자본시장의 신뢰, 규제 환경, 그리고 글로벌 질서의 흐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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