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구역인 잠실동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아파트를 내려다 본 모습. 사진= 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6월 3일로 예정된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시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몇 달간 사회를 마비시켰던 ‘정치 리스크’가 걷힌 가운데 새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선거가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모든 공약과 정책은 ‘표’를 얻는 데 유리한 중간지대에 집중될 전망이다. 대선후보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우클릭’ 행보를 보이는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부는 헌재 선고가 나오기 전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하는 강수를 뒀다.
선거마다 그랬듯 짧은 기간에도 벌써 ‘지방 첨단산업 유치’, ‘신(新) 행정수도’ 같은 개발공약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직 각 당이 경선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세종시 집값이 들썩이며 ‘개발호재’의 여파를 실감케 하고 있다. ‘빅 이벤트’를 피하는 분양시장 특성상 정권 이양기까지 주택공급은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도 ‘우클릭’, 닮아가는 정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월 22일 오전 전남 담양시장에서 이재종 후보 지원 유세를 하면서 상인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월 25일 한 유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이재명 전 대표는 다주택자 과세에 대해 “부동산 정책은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면서 “손을 댈 때마다 문제가 됐다”고 발언했다.
이 전 대표는 고가 주택 매매에 대해서도 “강남의 특정 지역, 한강이 보이는 지역을 5억이 아니라 500억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말리나”라며 투기적 요소 외에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죄악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의 발언은 자신의 정책이 급진적이라는 인식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제20대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전 대표는 국토보유세 신설을 통해 부동산 실효세율을 1%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낸 바 있다. 이 같은 인식으로 인해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 직후부터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재개발 사업이 중단될 수 있나요”라거나 “고가주택(15억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이 막히나요”와 같은 질문들이 올라왔다.
‘받) 이재명 정부 출범 시 부동산 정책 및 시장 전망’이라는 글이 단체카톡방에 돌기도 했다. 내용은 ‘종부세율 인상’, ‘재개발·재건축 촉진법 폐지’, ‘전세 갱신주기 10년으로 확대’, ‘국토보유세 신설’ 등이다.
남기환 민주당 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악의적 음해에 불과하다”며 “아직 제정도 되지 않은 재개발·재건축 촉진법을 폐지할 수도 없으며 전세 갱신주기와 관련해서는 당에서 검토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남 위원은 “국토보유세도 이 전 대표가 직접 ‘드롭’했다고 공식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정책 실패’ 원성 피해야
올해 1월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우클릭 현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국회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민의힘이 발의한 일명 ‘재건축 패스트트랙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노후계획도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함께 가결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2022년 금리인상 이후 건설·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민간주택 공급의 필요성이 불거진 데다 2024년에는 총선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반면교사 삼기도 했다는 분석이다. 당시부터 지속된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주택 수요자들이 ‘똘똘한 한 채’로만 집중되며 부동산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면 공급 부족과 특정지역 쏠림현상들이 심해져 서울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 전 대표는 최근 강경한 발언을 자제하고 중도층의 표심을 겨냥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불과 3년 전 대선을 겪고 당대표까지 지낸 후보로서 이미 준비된 대선 전략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직 캠프가 완전히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후보 주변 전문가에 의해 대체적인 정책 방향이나 전략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 외에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총리 등 다른 대권주자들도 비교적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집값 오르면 규제는 필연적
아직 국민의힘에선 유력 후보가 좁혀지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 정부는 2022년부터 비상계엄 이후인 올 3월까지 매년 굵직한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등 부동산 규제완화 공약을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민간 및 공공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해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리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2023년에는 ‘9·26대책’(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통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지난해 ‘8·8대책’(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은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 시 용적률 제한을 완화하는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로 8만 가구 공급 계획을 담고 있다.
그런데 2023년과 2024년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국지적 집값 상승세가 이어졌다. 주택공급은 경기에 따라 기복이 심하고 부지 확보, 인허가 등으로 인한 시차가 발생하는데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대출 지원 효과는 즉각 나타났기 때문이다. 2023년 소득 제한 없이 9억원 이하 주택에 5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는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집값이 오르고 가계부채도 증가하자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하는 등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해 노력한 정부는 결국 올해 ‘3·19대책’(부동산 안정화 방안)을 내놓는다. 서울시가 지난 2월 일명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하면서 강남권 집값이 급격히 오르자 상승세 확산을 막기 위해 오히려 적용 지역을 강남3구와 용산 아파트로 확대한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 실사용(주택은 실거주) 외에 투자용도로 부동산을 매수할 수 없다. 지역개발 공약, 충청·PK 겨냥하나
하늘에서 바라 본 정부세종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시장에선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 보수 성향이 강한 후보일수록 부동산 규제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후보들의 공약이 ‘완화 일변도’로만 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강남3구와 용산도 6개월 뒤인 9월 30일 기한 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재지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구역 해제 이후 집값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택공급 촉진’과 ‘집값 상승지역 규제’라는 두 개의 큰 줄기는 차기 정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집값은 지금까지와 같이 단기적인 상승과 조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수석은 “집값 상승세가 성동·강동·마포 등지로 확산될 경우 해당 지역에 대한 토허제 추가 지정이나 DSR 규제 강화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는 “이재명 전 대표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기존 성향에 따라 공약보다 더 강한 규제를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전 공약이던 ‘누구나 집’ 같은 공공임대 공급을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어떤 후보가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민주당보다는 더 완화 기조에 가까운 정책을 내놓지 않겠나”라고 예측했다.
한편 이미 정치공약에 따른 개발 기대감으로 부동산이 들썩이는 지역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 지시로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완전 이전하는 ‘신행정수도법’(신행정수도 건설특별조치법 제정안)을 4월 중 발의할 예정이다.
이는 20대 대선부터 이 전 대표의 공약으로 최근 세종시 아파트 거래량이 늘고 KB 주간 아파트 시세가 하락에서 보합으로 전환된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 거래량은 2월 372건에서 3월 684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부터 미뤄진 주택분양 일정은 또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조1구역 등 서울에서 잘될 만한 일부 사업지를 제외하고는 하반기 이후로 분양을 미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공약은 물론 사회적 관심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어려움이 더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들 삶이 팍팍할수록 부동산 양극화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치권도 인기에 영합해 빈부를 가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며 “새 정부는 부동산에 집중하기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기로에 서 있는 나라 경제와 사회를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