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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위법한 계엄” 첫 사법 판단
역대 최장 심리 끝에 전원일치 결론
[법알못 판례 읽기]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만, 같은 달 14일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때로부터는 111일 만이다.

국회가 제기한 5가지 탄핵소추 사유는 모두 받아들여졌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위헌·위법했고, 그 정도가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했다고 판단했다.

재판관 간 정치 성향 차이를 근거로 난무했던 의견 대립설이 무색하게 재판관 8인 전원이 일치된 의견을 내놨다. 헌법학자들은 쉽고 간결하게 쓰인 헌재 결정문에 “살아 있는 헌법 교과서”라는 평가를 달았다.

최장 심리에 의견 대립설…최종 결론은 전원일치


헌재는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께 대심판정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선고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오전 11시 1분부터 선고 요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해 11시 22분께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낭독했다.

헌법재판은 단심제로 그 효력은 주문이 읽힌 즉시 발생한다. 2022년 5월 10일 취임한 윤 전 대통령이 1060일 만에 파면되는 순간이었다. 헌재의 결정은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었다.

헌재는 계엄 선포를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위헌·위법행위”로 규정하고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했다.

헌재는 지난 2월 28일 이 사건 변론을 11차례로 종결한 뒤 38일간 심리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역대 대통령 탄핵 사건 중 최장기간 심리가 이어지면서 재판관들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억측이 파다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전원일치였고 반대 의견을 남긴 재판관은 없었다.

대통령 탄핵의 요건은 헌법 65조와 헌재법 53조에 규정돼 있다. 헌법 65조는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탄핵 사유로 규정한다. 헌재는 헌재법 53조 1항에 따라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 피청구인을 파면할 수 있다.

이때 따지는 것이 대통령 파면의 실익이다. 파면에 따른 헌법수호의 이익이 이로 인한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손실을 압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대성 요건이다.

헌재는 △계엄 선포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포고령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대한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 등 5가지 탄핵소추 사유를 모두 인정했다.

뒤이어 윤 전 대통령이 “가장 신중히 행사돼야 할 권한인 국가긴급권을 헌법에서 정한 한계를 벗어나 행사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법 위반의 중대성 또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가 4월 4일 전원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국가긴급권, 가장 신중히 행사돼야” 계엄 위법성 첫 인정


먼저 헌재는 비상계엄이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계엄이 정당화되려면 헌법 77조 1항, 계엄법 2조 2항에 따라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어야 하고,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인 동시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목적이었어야 하는데,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는 “이런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계엄 선포 당시엔 검사 1인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만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를 두고 국가의 행정·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안 중 상당수는 피청구인이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표를 보류해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위헌 소지가 큰 법안들이 헌정질서를 교란시켰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당의 일방적 예산 삭감으로 안보 공백 등이 초래됐다는 주장도 “2024년 예산을 집행하고 있던 계엄 선포 당시에는 2025년도 예산안이 국가의 존립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배격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주된 사유로 내세웠던 부정선거론에도 선을 그었다. 헌재는 “단순히 어떤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선거소청 또는 선거소송 등 형사 절차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기에 계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헌재는 “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것이 아니다”라며 비상계엄이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고성·호소형’ 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해서도 “경고와 호소는 대국민담화, 탄핵 제도 등에 대한 헌법개정안 발의, 중요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부의권 행사 등으로 가능했다”며 계엄 선포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실체적 요건에 이어 절차적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헌법은 국가긴급권의 남용과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발동 절차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심의,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 시행 일시와 지역 및 계엄사령관 공고,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 등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헌법·영장주의·권력분립” 법 위반 조목조목 나열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군경 투입을 지시한데 대해 헌재는 “국회의원의 의회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이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함으로써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했다”며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을 부여한 헌법을 위반하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주요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서도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침해,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 위반으로 규정했다. 국회, 지방의회, 정당 등의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역시 “헌법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등을 위반했다”고 헌재는 적시했다.

헌재는 “비상계엄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한 요건을 정한 헌법과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했다.

선관위에 대한 영장 없는 압수수색도 “영장주의 위반이자 선관위 독립성 침해”라고 헌재는 단정했다. 전임 대법원장, 대법원 등 법조인에 대한 체포 시도는 “현직 법관들이 언제든 행정부에 의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해 사법권 독립 침해”라고 규정했다.

[돋보기]

최종 관문 ‘중대성’ 요건…“대한국민 신임 배반”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고 했다. “그 자체로 헌법질서 침해이자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고도 했다.

헌재는 “국회와의 대립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인데도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민주 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라고 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대안들이 있는데도 계엄을 택한 것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짚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해 사회공동체를 통합해야 할 책무를 위반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면서 그의 파면에 따른 실익이 손실보다 큰 것으로 계산했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때부터 일관되게 확립돼 온 중대성 요건이 이번에도 비중 있게 거론된 것이다. 헌재는 헌법 전문에 나오는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을 옮겨 오며 헌법의 근간을 되새겼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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