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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봉도 | 글·사진 최재원 여행작가

말문고개 장봉 벚꽃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매번 아쉬움을 남기는 것들이 있다. 마지막 삼겹살 한 점과 낙화하는 벚꽃잎이 그렇다. 물론 아쉬움의 질량이 같다는 말은 아니다. 삼겹살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벚꽃은 꼬박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니까. 가만.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면 시간이 더디 흐르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눈에는 눈, 벚꽃에는 벚꽃. 벚꽃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달래줄 만한 곳이 떠올랐다.

벚꽃 비를 위한 항해

설렘을 한가득 실은 여객기가 머리 위로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이곳은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다. 인천국제공항에 가려졌지만, 영종도 한편엔 또 다른 설렘으로 채워진 곳이 있다. 삼목선착장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매립되어 영종도에 통합됐지만 고이 새겨놓은 ‘삼목’이라는 지명에서 이곳이 과거 삼목도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삼목선착장은 신·시·모도 삼형제섬의 관문인 신도선착장과 장봉도의 관문인 장봉선착장을 잇는다.

장봉도는 국내에서 벚꽃이 늦게 만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장봉도에서 벚꽃이 늦게 피는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섬은 내륙보다 기온 차가 적어 봄이 다소 늦게 오는 편이다. 거기에 해풍이 기온을 낮추어 벚꽃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내륙의 벚꽃이 낙화할 무렵, 장봉도의 벚꽃이 만개하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린 4월 중순에도 벚꽃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니 주변의 벚꽃이 떨어졌다고 아쉬워할 것 없다. 그때가 바로 장봉도로 가야 하는 시기니까.

삼목선착장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신도를 거쳐 장봉도까지 하루 13차례 매 시각 왕복 운행한다. 자세한 정보는 세종해운 홈페이지의 운항 시간표를 참고하자. 차량을 포함하여 입도할 수도 있어 노약자를 위한 섬 내 교통에도 해법이 있다. 즉, 장봉도는 수도권에서 대중교통 혹은 자가용을 이용하여 다녀올 수 있는 옆 동네 같은 섬이라는 말이다. 오전 일찍 입도하여 일몰 무렵이면 육지로 돌아올 수 있는 최고의 당일치기 여행지다.

벚꽃이 먼저 건너가 버린 바닷길을 갈매기가 안내한다. 뒤이어 여객선이 물살을 가로지른다. 여객선은 출항한 지 10분 만에 신·시·모도 삼형제섬에 닿는다. 지척에 있는 섬을 그동안 왜 모른 채 살았을까. 물론 장봉도는 여기서 30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오히려 다행이다. 오랜만에 만끽하던 바다 내음이 너무 짧아서 아쉬운 터였다. 눈을 크게 뜨고 코 평수를 늘려 이 설렘을 조금 더 유예해야겠다.

장봉도 인어상


황금어장을 낳은 인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른하게 봄볕에 익어갈 즘, 저 멀리 길고 울퉁불퉁한 섬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장봉도다. 중간에 경유한 신도선착장에서 승객 대부분이 하차하여 장봉선착장은 비교적 한산하게 느껴진다. 장봉선착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장봉도 인어상을 만나게 된다. 장봉도에는 인어와 얽힌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먼 옛날, 장봉도 날가지 어장에서 끌어올린 어부의 그물에 인어가 걸려 나왔다. 말로만 듣던 인어의 상체는 여자와 같았고 하체는 고기와 흡사했다. 어부는 인어를 측은히 여겨 도로 살려주었다. 그 후 한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어 어부는 며칠간 바다에 나갈 수 없었다. 사흘 후, 어부는 인어를 놓아준 곳에 다시 그물을 쳤는데 그물이 그만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가득 잡혔다. 그때부터 장봉도는 많은 고기가 몰려드는 조선시대 전국 3대 어장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밀물도 썰물도 즐기는 산책길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듯 장봉도에는 갯티길이 있다. 갯티길은 지역어로 조수간만에 따라 바다에 잠겼다가 드러나는 해안 산책로를 뜻한다. 바로 이 갯티길이 장봉도의 인기 비결이다. 벚꽃 시즌을 제외하면 장봉도 방문객의 대부분이 갯티길을 걷기 위해 방문한다.

갯티길 1코스


갯티길은 총 7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 2, 4코스를 합한 13.2㎞의 장봉도 종주 코스를 추천한다. 코스별 주요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먼저 1코스는 7코스 중 가장 긴 코스지만 ‘신선놀이길’이라는 이름처럼 주변 경치를 즐기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시발점은 장봉선착장 인근 명소인 옹암 구름다리다. 옹암 구름다리 끝에는 작은 멀곳이라고 불리는 바위섬이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어 가까워도 먼 곳과 같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물론 지금은 구름다리로 쉽게 건널 수 있다. 작은 멀곳에 있는 정자에서 맞은편 삼형제섬의 막내 모도를 조망하며 쉬어갈 수 있다. 옹암 구름다리에서 시작된 1코스는 곧바로 상산봉으로 이어진다. 상산봉에선 지명처럼 섬의 형태가 길고 봉우리가 많은 장봉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후 무장애숲길을 따라 2개의 구름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바로 이 구름다리 사이의 1차선 도로가 뒤이어 소개할 장봉 벚꽃길이다.

두 번째 구름다리를 건너 말문고개를 넘으면 장봉도의 주봉인 국사봉에 닿는다. 해발 150.3m에 불과한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장봉도 내 최고봉이다. 2코스 ‘하늘나들길’은 7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로 1코스의 종착점인 장봉3리부터 섬의 끝자락을 잇는다. 주요 포인트로는 코스 중간의 봉화대가 있다. 이곳에선 조선시대 강화도의 뱃길을 지키기 위해 밤마다 불을 지폈다고 한다. 이후 굽이굽이 늘어진 장봉도 능선길을 따라 걸으면 섬의 끝자락인 가막머리 전망대에 닿게 된다. 가막머리는 과거 큰 봉우리라는 뜻의 ‘감악산’ 끝의 머리라는 뜻에서 붙은 지명이다. 서해안의 대표 낙조 명소 중 하나인 만큼 눈부신 낙조에 홀려 막차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마지막 4코스는 가막머리 전망대부터 건어장 해변을 잇는 코스다. ‘야달인어길’이라는 코스 이름처럼 장봉도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자 장봉도의 대표적인 어장이다. 코스 내 해안 둘레길 전망대에서는 인근의 서만도, 동만도, 날가지, 아염, 사염 등 무인도와 주변 해역을 관찰할 수 있다. 인천시는 이 주변 해역을 인천시 최초의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희귀 조류와 어패류를 보호하고 있다. 이후 건어장 해변의 등장과 함께 길었던 장봉도 종주 코스가 마무리된다.

공영버스가 선착장과 건어장 해변을 하루 12회 왕복 운행 중이니 돌아갈 땐 건어장 해변의 버스정류장을 이용하자. 자세한 버스 운행 시간은 옹진군청 홈페이지 내 옹진 관광문화 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마지막 벚꽃 여행지

하늘에 핑크 카펫이 깔렸다. 배우라도 참석하는 줄 알았는데 상춘객을 맞이하기 위한 카펫이었단다. 떠나지 않고 기다려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이곳은 장봉도 옹암해변에서 말문고개로 이어지는 1차선 도로에 조성된 장봉 벚꽃길이다. 장봉 벚꽃길은 매년 4월 중순이면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며 장관을 이룬다. 낙화한 내륙의 벚꽃들이 떠나기 전 깜짝 이벤트를 위해 마지막으로 모인 것이 틀림없다.

백합 칼국수


비극의 주인공을 구하러 온 여왕님

장봉도는 하루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지만 먹거리가 풍부하다. 물론 섬답게 특산물 대부분이 해산물이다. 대표적으로 포도와 김, 백합, 동죽, 새우류, 바지락 등을 꼽는다. 해풍을 맞아 당도가 높은 포도와 지주식 양식법으로 생산되는 명품 김은 귀가 시 구매하기로 하고, 식사로는 백합이 좋겠다.

백합은 흰 조개를 말한다. 하얀 색깔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모양이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백 가지 무늬’를 가졌다는 뜻이다. 또한 백합은 조개의 여왕이라 할 만큼 고급 조개에 속한다. 덕분에 장봉도 어촌계 주민 대부분이 백합을 캐 생계를 잇고 있다. 그만큼 장봉도에서 백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즉, 장봉도에서 백합을 먹지 않고 돌아가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백합은 회로도 먹고 낙지와 함께 백합 연포탕으로도 먹지만, 아무래도 백합 칼국수가 가장 무난하다. 크고 쫄깃한 자연산 백합과 황태, 팽이버섯, 호박 등 각종 채소로 우려낸 뽀얀 국물이 시원한 국물 맛을 자랑한다. 사실 백합은 5월부터 9월 사이에 살이 차고 부드러워 제철이라지만, 4월의 벚꽃과 함께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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