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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소장
서해 中 구조물 탐사한 온누리호 보유
"방치하면 中 관할권 확대할 수도"
"잠정수역 경계문제, 대화∙탐사활동으로 대응해야"
온누리호, 서해 광역탐사 가능 유일 탐사선
"노후화로 내년엔 못 뜰 수도... 비례적 대응 차질"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연구소장.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중국 쪽 서해 연안 황폐화로 어선들이 점점 우리 쪽 중간선으로 구조물을 설치하려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법정책연구소장은 지난 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반대 입장을 적시에 지속적으로 분명히 표명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KIOST는 한국 최초 종합해양조사선인 '온누리호'(1,422톤급)를 운영하고 있다. 온누리호는 지난 2월 26일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된 구조물을 조사하기 위해 접근하는 과정에서 중국 해경 및 민간인과 대치한 선박이다. 당시 온누리호가 구조물에 약 1㎞ 거리까지 접근하자, 고무보트에 탄 중국 쪽 시설 관리인들이 막아섰다. 이에 대기하던 한국 해경도 함정을 급파해 현장에서 중국 측과 2시간여 대치했다.

양 소장은 중국이 '어업양식 시설'이라 주장하며 설치한 구조물은 "우리의 해양경제활동과 관련한 주권적 권리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라면서 "중국은 잠정조치수역에서의 자제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추가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외교적 항의와 철거라는 메시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구조물이) 해양 경계획정 협의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묵인효과가 생긴다"며 "외교적 항의와 조사선을 통한 억지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중 사이 거리가 가까운 서해에서는 해양 경계 협정이 맺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200해리(약 370km)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잠정조치 수역에서 양국 어선이 함께 조업하고 양국 정부가 수산자원을 공동 관리한다. 유엔해양법협약이 규정한 잠정약정, 즉 최종경계선을 확정하기 전에 수산자원을 함께 이용·관리하도록 양국이 합의했다. 그게 바로 PMZ다. 그럼에도 이곳에 설치한 구조물이 관심을 끄는 건, 우리 중간선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중국이 서해를 내해(內海)화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양 소장은 중국의 정곡을 찌를 대응 수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서해 구조물 논란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같은 성격의 문제로 보는 것은 경계했다. 양 소장은 "남중국해는 영유권 분쟁과 더불어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그리고 미국이라는 세력이 연계돼 다자관계라는 복잡한 셈법이 엮여 있다"며 "반면 서해는 양자관계 차원에서 대화 채널이 유지가 잘 되면 갈등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중 간 해양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자 대화체계가 없는 것도 아닌데, 다자문제로 사안을 확장해버리면 문제해결이 복잡해진다"고 덧붙였다.

33년 된 온누리호 운항 중단 위기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해양조사선 온누리호. 기술원 제공


그간 중국의 동향을 감시해온 온누리호도 문제다. 33년째 해양조사에 투입해왔는데 워낙 낡아 내년에도 배를 띄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선박 노후화로 심각한 부식과 누수는 물론 엔진 고장도 잦다. 심지어 주요 부품은 단종됐다. 안전 문제로 인해 과학자들을 태워 조사선을 띄우는 것 자체가 부담될 정도다. 그럼에도 온누리호를 대체할 새 조사선 도입은 늦어지고 있다. 예산 확보가 문제다. 시급성을 감안하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건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

온누리호가 중요한 이유는 국제법상 해양과학조사는 연안국이 행사할 수 있는 '관할권'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해양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수역에서는 모든 나라의 선박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지만 조사선인 온누리호가 탐사하는 곳은 이 해역이 한국의 관할권이라는 명시적인 권리행사로 인식될 수 있다. 더구나 온누리호가 활동을 멈추면 심해조사 장비를 가진 선박이 사라지기 때문에 중국이 구조물 근처에 안보위협 시설을 건설해도 감시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양 소장은 "중국과 한국 사이 서해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21년부터 온누리호를 활용해 한중 PMZ 끝단까지 광역탐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며 "조사선 파견 자체가 중국에 '우리의 관할 수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조사선이 파견될 때마다 중국 해경도 긴장하며 따라다닌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비례적 대응' 조치로 PMZ에 유사한 양식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비례적 대응으로 동일 구조물을 설치하면 결국 중국의 행위를 인정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시설물 설치로 몇 년을 소비하는 사이 중국은 이보다 많은 구조물을 설치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양 소장은 구조물 설치보다 온누리호 같은 탐사선 지속 배치가 우리의 대응을 공론화하고 점증하는 데에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양 소장은 "우리도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의 설치활동을 정당화해주는 역효과를 볼 수 있다"며 "강력한 대응 수단이 확보되지 않는 한 양자 관계에서 적절한 통제 수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조사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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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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