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선 모두 공평하다고 말하는 건 아무것도 들고 갈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지, 죽는 그 순간의 모습은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지켜 봐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떠나고 싶은 인간은 없습니다. “내 마지막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유품정리사 김새별 작가는 말합니다.
더중앙플러스 -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
여관방 바닥엔 온통 술병들이 굴렀다.
즉석 카메라로 찍어 놓은 사진들도 여러 장이었다.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사진도, 현장도 난잡했다.
20~30대 남녀 5명이 모여 극단적 선택을 한 현장이다.
여자 하나에 남자 넷.
좀 오래 전 이야기다.
인터넷 모임 사이트에서 만난 이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들은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만나 함께 일을 벌이기로 하고 여관방을 얻어 며칠을 지냈다.
남녀 여러 명이 어떻게 혼숙으로 방 한칸을 얻어냈는지 모를 일이었다.
며칠간 자기들끼리는 많은 대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남성 한 명이 마음을 바꿨다.
살고 싶어진 것이다.
나머지 네 명은 그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했다.
같이 죽기로 했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니 배신감에 휩싸인 것이다.
그들은 ‘배신자’를 죽어라 때렸다.
스스로 끊으려 했던 목숨은 타인들에 의해 끊겼다.
남자가 죽자 나머지 넷도 목숨을 버린 사건이었다.
숙박업소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오래 방치되진 않았다.
당시 나는 ‘살인과 극단적 선택이 일어난 현장’이라고만 듣고 갔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갔지만 5명의 젊은 남녀가 죽어나간 현장이라니….
자세한 내막을 듣고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꽤 오래된 이 사건이 다시 떠오른 건 최근에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오래 전 딸아이를 잃었던 엄마.
딸의 마지막 이사를 내가 챙겼던 걸까.
여성은 우연히 내 유튜브 채널을 보다 딸 생각이 나서 연락해 온 것이다.
어떤 장면이 딸아이가 살았던 집과 너무 흡사했단다.
딸을 먼저 보낸 건 잊을 순 없는 일이다.
다만 슬픔은 덜해졌다.
하지만 후회는 더해진다고 했다.
어떤 극단적 선택의 뉴스를 접할 때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떠나보낸 딸은 20대 초반이었다.
그 나이 때엔 힘든 점이야 많다.
취업, 사랑,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등.
대부분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지만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그땐 저도 일하던 때라 바빴어요.
그럴 나이니까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죠.
병원 치료도 시켰지만 안일했어요.
일하느라 내가 바빠서, 힘들어서. 지금 생각하면 다 핑계였죠.
더 집요하게 아이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사건을 겪으면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대체로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
남편은 ‘산 사람은 살아야’라고 말한다. 그걸 위로나 격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은 냉정하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걸 아는데 후회를 멈출 수가 없어요.
생각은 넘쳐나는데 말할 곳이 없어요.
내 자식이 그랬다고. 어디에다 누구에게 말할까요.
남편도 그만하라고 하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는 영원히 그 시간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딸도 그런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함께한 이는 누군지도 모를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스물 갓 넘은 우리 딸이 대체 왜? 알지도 못하는 늙은 남자랑….’
(계속)
“그 일 이후 그 남자를 다시 만났어요”
두 시간 넘는 통화 끝에 여성이 꺼낸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그날 딸과 함께였던 남성은 살아 있었고, 엄마가 목숨처럼 아꼈던 20대 딸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현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109
※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빤 6년 만에 고독사했다, 엄마 이혼시킨 두 딸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891
‘미친개’ 아들에 질려버렸다…엄마가 죽고 5년뒤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7786
결혼식 잡은 첫사랑 예비부부, 장례식장 따로 옮겨진 비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934
그는 아들 사진 한 장 없었다, 하늘 날던 기장의 쓸쓸한 추락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6696
더중앙플러스 -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
여관방 바닥엔 온통 술병들이 굴렀다.
즉석 카메라로 찍어 놓은 사진들도 여러 장이었다.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사진도, 현장도 난잡했다.
20~30대 남녀 5명이 모여 극단적 선택을 한 현장이다.
여자 하나에 남자 넷.
좀 오래 전 이야기다.
인터넷 모임 사이트에서 만난 이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들은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만나 함께 일을 벌이기로 하고 여관방을 얻어 며칠을 지냈다.
남녀 여러 명이 어떻게 혼숙으로 방 한칸을 얻어냈는지 모를 일이었다.
며칠간 자기들끼리는 많은 대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남성 한 명이 마음을 바꿨다.
살고 싶어진 것이다.
나머지 네 명은 그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했다.
같이 죽기로 했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니 배신감에 휩싸인 것이다.
그들은 ‘배신자’를 죽어라 때렸다.
스스로 끊으려 했던 목숨은 타인들에 의해 끊겼다.
남자가 죽자 나머지 넷도 목숨을 버린 사건이었다.
숙박업소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오래 방치되진 않았다.
당시 나는 ‘살인과 극단적 선택이 일어난 현장’이라고만 듣고 갔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갔지만 5명의 젊은 남녀가 죽어나간 현장이라니….
자세한 내막을 듣고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꽤 오래된 이 사건이 다시 떠오른 건 최근에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오래 전 딸아이를 잃었던 엄마.
딸의 마지막 이사를 내가 챙겼던 걸까.
여성은 우연히 내 유튜브 채널을 보다 딸 생각이 나서 연락해 온 것이다.
어떤 장면이 딸아이가 살았던 집과 너무 흡사했단다.
이지우 디자이너
“아이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무엇이 힘든지 대화하고 싶었지만 계속 거절하더라고요.”
딸을 먼저 보낸 건 잊을 순 없는 일이다.
다만 슬픔은 덜해졌다.
하지만 후회는 더해진다고 했다.
어떤 극단적 선택의 뉴스를 접할 때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떠나보낸 딸은 20대 초반이었다.
그 나이 때엔 힘든 점이야 많다.
취업, 사랑,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등.
대부분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지만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그땐 저도 일하던 때라 바빴어요.
그럴 나이니까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죠.
병원 치료도 시켰지만 안일했어요.
일하느라 내가 바빠서, 힘들어서. 지금 생각하면 다 핑계였죠.
더 집요하게 아이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사건을 겪으면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대체로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
남편은 ‘산 사람은 살아야’라고 말한다. 그걸 위로나 격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은 냉정하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걸 아는데 후회를 멈출 수가 없어요.
생각은 넘쳐나는데 말할 곳이 없어요.
내 자식이 그랬다고. 어디에다 누구에게 말할까요.
남편도 그만하라고 하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는 영원히 그 시간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딸도 그런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함께한 이는 누군지도 모를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스물 갓 넘은 우리 딸이 대체 왜? 알지도 못하는 늙은 남자랑….’
(계속)
“그 일 이후 그 남자를 다시 만났어요”
두 시간 넘는 통화 끝에 여성이 꺼낸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그날 딸과 함께였던 남성은 살아 있었고, 엄마가 목숨처럼 아꼈던 20대 딸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현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109
※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빤 6년 만에 고독사했다, 엄마 이혼시킨 두 딸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891
‘미친개’ 아들에 질려버렸다…엄마가 죽고 5년뒤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7786
결혼식 잡은 첫사랑 예비부부, 장례식장 따로 옮겨진 비극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934
그는 아들 사진 한 장 없었다, 하늘 날던 기장의 쓸쓸한 추락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6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