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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디지털편집부장
인터넷, 탄핵정국엔 가짜뉴스 이끌어
대선서 허위·조작, 어둠으로 몰고갈것
건강한 공론장 유지는 언론의 책무

[서울경제]

“신문, 특히 지역 독점 신문은 모든 의견을 다루는 광범위한 오피니언 섹션을 매일 아침 독자의 집 앞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간주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런 역할은 이미 인터넷이 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이자 워싱턴포스트(WP)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는 올 2월 2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그는 “우리는 개인의 자유, 자유 시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칼럼을 매일 쓸 것”이라며 “두 가지 원칙에 반대하는 칼럼은 다른 매체가 발행하게 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2013년 8월 개인 돈 2억 5000만 달러(약 3656억 원)를 들여 WP를 인수한 뒤 다양한 관점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디지털 혁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은 베이조스의 ‘보도 지침’이 몰고 온 파장은 컸다.

논란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약 7만 5000명이 넘는 구독자가 이탈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베이조스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사설을 내지 않기로 한 후 다시 겪는 대규모 구독 취소다. 당시에는 WP가 가진 디지털 구독자 수의 12%가 넘는 30만 명 이상이 빠져나갔다.

오피니언 편집인 데이비드 시플리는 베이조스의 요구에 반발하며 사직했고 언론계의 전설로 통하는 마틴 배런 전 WP 편집국장은 “슬프고 혐오스럽다”고 했다.

“위대한 언론의 종말” “민주주의를 내던진 우경화”라는 날 선 비판과 지적 속에 베이조스도 할 말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신문은 정보 전달의 핵심 창구로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언론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속도를 내면서 그 책임감이 옅어져온 것은 사실이다.

베이조스의 발언은 조금 남아 있던 책임감마저 벗어던지겠다는 것으로 언론은 더 이상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점을 포괄하는 공론장이 아니고 특정 관점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개인화된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고 타깃층을 대상으로 한 뉴스 서비스는 디지털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언론은 완벽한 중립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대전제 역시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다른 관점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언론의 책임이다. 모든 이들을 위한 공통의 정보 기반을 제공해야 하는 것 역시 언론의 중요한 의무다.

특히 “인터넷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베이조스의 주장은 틀렸다. 인터넷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기존 관점을 강화하고 편향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진실의 분절화, 뉴스의 파편화는 자연스레 허위 조작 정보와 음모론으로 몸집을 키우면서 ‘가짜뉴스’의 시대를 이끌었다.

그 폐해는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한마디로 탄핵 정국은 막을 내렸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4개월간 대한민국은 분열과 대립의 극한을 찍었다.

유튜브,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했고 ‘허위 조작 정보 확산 사슬’로 나라를 짓누르고 또 쪼개며 어둠 속으로 밀어넣었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

2017년 2월부터 WP 신문 1면과 홈페이지 제호 아래에 적혀 있는 문구다. WP를 상징하는 워터게이트 특종의 주역 밥 우드워드 기자의 연설에 담겼던 내용으로 ‘자유는 밝은 빛 속에서 움직인다’ 등 수백 개의 후보 가운데 최종 낙점됐다.

분열과 상처만 가득한 상황에서 50여 일 뒤면 대선이 치러진다. 탄핵 정국 속에 재미를 봤던 극단 세력이 만들어낸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는 또 한 번 나라를 뒤덮을 것이다.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 보편적 사실이 제대로 설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일, 그래서 이 땅의 민주주의가 다시는 어둠 속에 있지 않게 하는 일.

언론이 마주한 시대적 과제이자 무거운 책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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