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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귬 성시우 셰프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 셰프죠. 신문기자 출신이자 식당 '어라우즈'를 운영하는 장준우 셰프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묵묵히 요리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셰프들을 만납니다. 한국 미식계의 최신 이슈와 셰프들의 특별 레시피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채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레귬'의 성시우 셰프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설명하고 있다. '레귬'은 오픈 1년 10개월 만에 미쉐린 별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나물과 비빔밥, 사찰 음식의 나라지만 채식 식당은 대중들에겐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건강 때문에 혹은 자연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메뉴나 식당은 공들여 찾아야 할 만큼 흔치 않다. 그럼에도 100% 채식으로 올해 미쉐린(미슐랭) 별을 받은 채식 레스토랑이 있다. 성시우(35) 오너 셰프가 이끄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레귬'이다. 국내에서 채식 전문 레스토랑으로 미쉐린 별을 받은 건 레귬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레귬은 채식하면 으레 떠올리는 옅은 맛과 심심한 간, 먹고 나서도 허기진 느낌이 들 것 같은 편견을 산산히 깬다. 채소만으로 만든 요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맛의 파도가 입안에서 차례로 밀려온다. 두 번째 접시를 비우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런 요리를 먹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채식주의자가 되리라.

미쉐린 별을 받은 레스토랑 중에 채식 메뉴가 따로 있는 곳은 많지만 오롯이 채식만 선보이는 레스토랑은 전 세계에서 단 9곳뿐이다. 해외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셰프로서, 오픈 1년 10개월 만에 별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 성 셰프를 최근 만났다.

'밭의 캐비어' 톤부리(댑싸리 나무 씨앗)를 활용한 '레귬'의 코스 요리 중 하나인 '배와 비건 캐비어'. 톤부리는 캐비어와 유사한 모양과 식감을 가진 식재료다.




-왜 비건 파인다이닝을 하게 됐나요.


"처음부터 채식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요리를 했고 10년 동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이제는 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육류나 유제품을 거의 못 드시는데 편하게 드실 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죠. 한국 외식 산업에서 채식 식당은 채소로 한 요리라기보다 채소를 소비하는 식의 과거에 머물러 있었어요. 특히 채소를 활용한 고급 요리를 하는 파인다이닝 쪽은 전무했습니다. 나름 자신감이 생겼죠."

-흔히 채식은 맛없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처음엔 손님 반응이 너무 안 좋았어요. 5만 원의 채식 코스 요리로 시작했는데 그 단가에 코스를 맞추기도 어려웠습니다. 비건 경험이 없는 분들은 늘 먹던 풍미가 아니니까 맛이 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요. 하지만 채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맛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어요.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을 중시하는 경향도 커지면서 저희도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맛있는 채식 식당을 서로 빠르게 추천하는 비건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1년 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채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레귬'의 냉이 토마토 수프.


-맛을 내는 특별한 비법이 있다면요.


"고기를 쓰면 맛 내기가 편리한 면이 있어요. 고기 육수만으로도 감칠맛이 확 올라가니까요. 반면 채소만으로 맛을 끌어내려면 상당히 복잡하고 세심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손이 훨씬 많이 가고요. 결국 좋은 채소가 가진 본연의 향과 식감의 레이어로 감동을 줄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채식이라고 하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고기보다 채소가 비쌀 때가 많아요. 여러모로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죠."

-메뉴는 어떻게 정하나요.


"메뉴를 구상할 때 두 가지로 접근합니다. 하나는 보통의 채소에 창의성을 더하는 방식입니다. 흔하고 익숙한 재료로 낯선 느낌을 주는 거죠. 우리나라는 양파, 당근 같은 기본 채소 외에 사계절 꾸준히 나는 채소가 많이 없습니다. 계절이 메뉴를 정해주는 셈입니다.

두 번째는 특별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작년까지 전남 지역에서 공수한 '히카마라'는 채소로 요리를 했어요. '멕시코 감자'라고 불리는 뿌리채소인데 배와 식감이 비슷해서 '땅속의 배'라고도 하죠. 배처럼 아삭하지만 전분질은 없어요. 특별한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를 찾아다닙니다. 한 달에 두 번은 꼭 농장을 방문해 농부들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레귬'의 채식 파인다이닝 코스 메뉴 중 하나인 병아리콩으로 만든 뇨끼.


-한국 채소 요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한국 채소는 장단점이 확실해요. 우선 단점은 품종의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한국 당근은 모두 똑같은 모양이잖아요. 외국에 가면 당근 하나도 색깔, 모양, 굵기가 다 다르고 쓰임새도 다양해요. 하지만 이걸 장점으로 보면 크기가 일정하고 맛이 일정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사람들이 당근에 기대하는 게 크지 않기에 기대 이상의 맛을 내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식감과 향을 변주해 '이거 내가 알던 당근이 아니네'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 무엇인가요.


"양파를 특히 좋아합니다. 비유하자면 주연은 아니지만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 같아요. 생으로 쓰면 아삭하고 매운맛을 내지만 오븐에 구워서 갈색이 되면 달콤해지고 무게감이 있는 재료로 바뀌죠."

'레귬'에서 맛볼 수 있는 완두콩을 활용한 전채 요리.


-비건 레스토랑으로 국내 유일하게 미쉐린 별을 받았습니다.


"별을 받고(2월 27일) 한 달 정도는 중압감이 엄청났죠. 예전에는 그냥 비건 레스토랑이었는데 이제는 원스타 미쉐린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까 손님들의 기대치가 올라간 게 보였어요. 전에는 외국인 손님이 많이 왔는데, 별을 받고 나니 한국인 손님이 더 늘어났습니다.

개인적으론 미쉐린 별을 받는 건 요리를 하는 사람이 늘 꿈꾸는 일인데, 현실이 됐으니 정말 기뻤죠.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일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게 꿈이었는데 어느새 미쉐린 레스토랑 오너가 됐으니까요. 한편으론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이제 막 데뷔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성시우 셰프는 파인다이닝 코스의 모든 요리를 100% 채소로 만든다. 그는 "좋은 채소를 계속 발굴하고 소개해서 채식의 지평을 넓히는 게 저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요리를 통해 어떤 경험을 주고 싶습니까.


"사람들이 식당을 찾는 이유가 배가 고파서만은 아니잖아요. 좋은 사람과 함께 긴 호흡으로 식사하며 대화하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행위가 파인다이닝의 본질 같아요. 제 요리를 통해 '아 이런 맛이 있구나' '이런 채소 요리도 있구나'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언젠가는 좀 더 캐주얼한 형태의 비건 레스토랑도 해보고 싶어요. 일상적인 식탁에서도 채소 요리의 매력을 느껴볼 기회를 넓히는 일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완전한 비건까지는 아니고, 베지테리언 범주 안에서 좀 더 자유롭게요. 필요하면 우유도 쓰고, 계란도 써서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즐겁게 음식을 즐기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좋은 채소를 계속 발굴하고 소개해서 채식의 지평을 넓히는 게 저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레귬'의 아스파라거스 커틀릿과 비건 대파 마요네즈.


아스파라거스 커틀릿 레시피<재료>(2인분 기준)
아스파라거스 4개
건식 빵가루 400g
튀김 반죽(박력분 420g, 소금 7g, 정수 600g, 히말라야블랙솔트 약간)
<만드는 법>
1. 아스파라거스는 튀김기 사이즈에 맞게 재단 후 얇게 껍질 제거를 해준다.
2. 튀김 반죽 재료를 잘 섞은 후 아스파라거스를 담근 다음 빵가루를 입혀준다.
3. 180도 튀김 기름에 2분간 튀겨낸다.
4. 소금으로 간을 해준다.

※비건 대파 마요네즈
<재료>
두유 200g
대파 오일 200g
쉐리비네거 35g
디종 머스터드 20g
소금 약간
메이플시럽 약간
<만드는 법>
1. 오일을 제외한 재료를 믹서에 넣는다.
2. 믹서에서 재료를 섞으며 오일을 천천히 넣어 마요네즈를 만든다.

글·사진=장준우 셰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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