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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미얀마 강진 현장을 가다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3일 미얀마 만달레이 인근 불교 중심지 사가잉에서 한 주민이 무너진 집 앞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만달레이로 가겠다는 운전 기사가 없어요. 그쪽 호텔은 연락도 안 되고요.”

미얀마 중부를 강타한 규모 7.7 강진 취재를 위해 현지 출장 가능성을 수소문하던 지난달 29일 밤, 양곤에 거주하는 미얀마인 세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는 지난달 28일 발생한 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그곳에 갈 것인가’였다. 평소 같으면 해외에서 만달레이 공항을 통해 입국할 수 있었지만 지진으로 폐쇄됐다. 유일한 길은 미얀마 최대 도시 남부 양곤에서 차로 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여진 탓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세인은 전했다. 그나마 만달레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 친구들이 걱정되고, 미얀마 상황이 한국에도 알려져 도움의 손길이 더 많이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동행을 승낙했다.

기자 일행이 탑승한 차량에 구호 물품이 쌓여 있다. 양곤에서 사전 구매해 간 생필품에 만달레이 현지에서 만난 개인 자원봉사자들이 잠시 맡긴 구호물품이 추가로 더해져 있다. 만달레이=허경주 특파원


하루 뒤 어렵게 차량을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인과 운전기사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 구호 차량으로 위장해 군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구호 물자를 함께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1일부터 닷새간, 생사의 경계를 오간 미얀마 지진 현장 취재가 시작됐다.

지진이 만든 참상들



8시간. 평소 양곤에서 만달레이까지 차량으로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 이동까지는 두 배 이상 소요됐다. 수도 네피도 취재를 위해 머문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14시간 넘게 걸렸다. 지진으로 고속도로 일부가 부서지거나 아예 끊긴 탓이다. 두꺼운 아스팔트 도로는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찢긴 채 갈라져 있었다. 거대한 틈이 보일 정도로 길이 뒤틀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까닭에 우회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3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사가잉으로 가는 도로가 지난달 28일 발생한 규모 7.7 강진 여파로 갈라지고 무너져 내려 있다. 만달레이=허경주 특파원


북쪽으로 향할수록 지진과 함께 무너진 미얀마 시민들의 삶이 다가왔다. 네피도부터 만달레이, 지진 진앙에서 가장 가까운 사가잉까지, 눈길 닿는 곳마다 도무지 성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건물이 완전히 옆으로 눕거나 아래로 폭삭 꺼진 현장에서는 콘크리트와 철근 잔해 사이로 언뜻 보이는 신발과 부서진 가구만이 그곳에 한때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한 여성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묻자 “조카가 묻혀 있다”며 고개를 떨궜다. 차라리 시신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었다. 한순간 벌어진 참사에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넘쳐났다. 시내 곳곳에는 ‘실종된 가족을 찾는다’는 현수막이 애달프게 나부끼고 있었다.

2일 미얀마 만달레이의 한 건물 외벽에 지진 이후 실종된 사람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만달레이=허경주 특파원


건물 형태가 남아 있는 곳 역시 쫙쫙 금이 간 채 위태롭게 버틸 뿐이었다. 행여 또 다른 지진이 찾아올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편히 발을 뻗고 잠들었을 사람들은 차라리 길거리에서 잠드는 것을 택했다. 만달레이 도착 첫날, 머물 곳을 구하지 못한 기자도 붕괴 현장 옆 공터에 차를 대고 안에서 쪽잠을 잤다.

여진도 이어졌다. 어렵게 구한 호텔 방에 몸을 뉘이면 밤사이 몇 차례씩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지난 지진으로 생긴 객실 벽 금이 더 넓어진 듯한 착각과 공포심이 들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현지 정부는 강진 이후 이달 7일까지 규모 2.8~7.5 여진이 98회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기자가 머물던 미얀마 만달레이의 호텔. 지난달 28일 강진 발생 당시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외부와 객실 벽마다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만달레이=허경주 특파원


”군인과 경찰 조심하라” 입 모아 경고



그러나 기자에겐 여진보다 군정의 감시가 더 불안했다. 가이드는 물론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군경을 조심하라’고 입을 모았다. 군부는 미얀마 지진 피해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외국 기자가 취재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어떻게 나설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군부의 심장’ 네피도에서 검문은 다반사였다. 도로 주요 지점마다 검문소가 설치됐다. 군경은 운전 기사의 창문을 내리게 한 뒤 이동 목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휴대폰 내려요” “노트북 가려요”, 세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반복해야 했다.

3일 미얀마 사가잉에서 한 구조대원이 굴착기로 외벽이 무너진 집을 복구하고 있다. 사가잉=허경주 특파원


만달레이에서도 무장 군인들이 무리 지어 순찰을 다니며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했다. 외국인이 붕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거나 시민과 대화하는 모습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까닭에 겉모습을 위장하기 위한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군이 장악한 ‘불교 중심지’ 사가잉 지역이나 군부 관심이 덜한 외곽에서의 취재가 더 자유로웠을 정도였다.

군부는 여전히 자국 참상을 감추기 급급한 모양새다. 외국인 입국과 비자 정책을 담당하는 이민·인구부는 3일 돌연 ‘모든 외국인의 관광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사업차 입국하는 건 가능하지만, 이 경우 관련 비자와 보증 회사 서류를 지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 3일 홈페이지를 통해 당분간 외국인의 관광 비자 입국을 금지한다는 공지를 띄웠다. 미얀마 SNS 캡처


정부가 외신 기자들의 취재 목적 입국을 불허하자 상당수가 관광 비자로 들어왔고, 이들을 통해 자국 상황이 알려지면서 방문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답지하는 국제사회 지원도 ‘입맛대로’ 친군부 지역 중심으로 보내고, 지진 발생 이후에도 반군 점령 지역에 공습을 가하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세인은 기자와 헤어지며 자조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얀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초대형 재난이에요. 그런데 군부는 수습할 능력도 의지도 없고, 오직 권력 유지에만 관심이 있어요. 우리가 이 악몽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금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한 세대가 아니라 그 이상 지나도 지진 피해를 복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난 4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13㎞ 떨어진 이슬람 교도 마을 본우에에서 지진을 피해 인근 공터로 피신한 어린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우에=허경주 특파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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