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매출점유율 34%, SK하이닉스는 36%…AI 경쟁서 뒤처진 탓
일본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9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30여년 만에 ‘디램 1위’ 왕좌에서 내려왔다. 최근 수년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밀린 끝에 메모리 반도체 ‘절대 강자’의 자리를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 내준 것이다. 삼성전자는 1992년 처음 디램 1위에 오르며 ‘삼성의 시대’를 연 바 있다.
9일 홍콩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집계를 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1~3월) 전세계 디램 시장에서 매출점유율 34%를 기록했다. 36%로 올라선 에스케이하이닉스에 왕좌를 넘겨준 것이다. 각종 시장조사업체 집계에서 삼성전자가 디램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건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삼성이 급변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과거 ‘초격차’로 대변되는 기술 경쟁력과 대규모 생산량을 발판 삼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강호로 군림했다. 업황이 나빠 감산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디램 점유율이 40% 아래로 내려가는 일도 드물었을 정도다.
변화의 조짐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건 지난해다. 디램의 일종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인공지능 반도체 영역에서 기술 경쟁력 부족으로 고전을 거듭하며 점유율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고대역폭메모리 강자인 하이닉스에 결국 1위를 뺏긴 배경이다.
업계는 당분간 삼성전자가 ‘절대 강자’의 자리를 되찾기 힘들 것으로 본다. 최근 메모리 기업의 실적을 좌우하는 고대역폭메모리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3월 ‘인공지능 칩 1인자’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공급하기 시작한 반면, 삼성의 경우 최근까지도 납품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디램 전반적으로도 삼성의 기술이 뒤처진다는 평가가 많다. 업계는 차세대 디램에 필요한 11~12나노미터(㎚)급 공정에서도 삼성이 하이닉스에 밀렸다고 본다.
결국 1992년 막을 열었던 삼성 1위의 시대는 끝자락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1983년 이른바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한 뒤 9년 만에 디램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 바 있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낸드를 포함한 메모리 시장 전체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카운터포인트는 “올해 2분기 디램 시장의 업체별 점유율도 (1분기와) 비슷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