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에 어느 한 세력이 다 한 게 있느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최근 참모들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공직 생활 55년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화, 지금의 선진화까지 모두 지켜봤는데, 이러한 성취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직 생활 끝을 두 달 앞두고, 극단의 정치를 바라보는 한 대행의 심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정부를 넘나들며 주미 대사와 경제부총리, 두 번의 국무총리까지 지낸 한 대행은 지난 8일 왜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명(이완규·함상훈)을 전격 지명했을까.
한 대행의 결단은 예상 밖이었다. 관료 출신으로 ‘중립적 대선 관리자’에 머무를 것이란 정치권의 예상이 컸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조기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의 인사권을 끌어다 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을 벌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헌법재판관 임기는 6년이다. 설령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돼도 대통령 몫 2명의 재판관은 못 건드린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 대행을 오랜 기간 지켜봤던 정부 인사들과 총리실 참모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뒤 한 대행에게 주어진 두 달의 시간을 ‘독해진 한덕수’의 가장 큰 이유로 짚었다. “대통령 탄핵으로 민주당의 독주를 막을 방파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대한민국 미래와 국익에 미칠 결정은 자신의 선에서 정리하고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한 대행은 지난 3년간 민주당과 잦은 충돌을 빚어왔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과 29번의 고위공직자 줄탄핵, 입법 독주에 대해 국회 대정부 질문 때마다 연단에 나가 갈등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에 묻힌 측면이 있었지만, 한 대행은 대정부 질문 때마다 “경제가 고꾸라지길 바라냐” “저희가 정권을 인수할 당시에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식으로 민주당과 각을 세워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로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이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정회된 뒤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 대행은 인천 지역 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출신인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도 주변에 드러냈다고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균형 추가 무너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친구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재 재판관 후보로 지명한 이유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 대행은 3년간 이완규 처장을 지켜봤고, 합리적인 법조인으로 평가했다”며 “이 처장은 지난 수십 년 공직 생활 동안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왔다”고 말했다.
헌재 재판관 지명을 시작으로 한 대행은 남은 두 달간 권한대행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석인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한 대행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자칫 과도기적 리더십 상황에서 정책적 판단과 행동이 지체되며, 국익에 소홀해선 안 된다”며 장관들에게 전권 행사를 요구했다.
한 대행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총리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한 대행에 대한 출마 요구가 쏟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꿈쩍도 안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