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미리 단죄하는 근미래를 그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감시사회가 현실이 될까. 영국에서 살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식별하기 위한 이른바 ‘살인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법무부는 범죄자 등 수천명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살인 등 심각한 폭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식별하는 알고리듬을 개발 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2054년의 범죄 예측 시스템 ‘프리 크라임’이 미래를 보는 예지자 3명에게 의존해 첨단 기술이 예지를 분석하는 방식이라면, 영국 정부의 이 프로젝트는 광범위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측 모델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계획에는 당초 ‘살인 예측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이후 ‘위험평가 개선을 위한 데이터 공유’로 프로젝트명이 변경됐다. 법무부는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나 “연구 목적”이며 “공공의 안전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인권단체들은 “섬뜩하고 디스토피아적 구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프로젝트의 존재는 영국의 시민단체 스테이트워치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정부 문서 등을 통해 공개됐다.
리시 수낵 총리 재임 시절 총리실의 의뢰로 프로젝트가 시작됐으며, 영국 보호관찰국 및 맨체스터 경찰 등 여러 기관의 범죄 데이터를 활용한다. 프로젝트를 위해 활용되는 개인 정보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인종 등이 포함됐다.
스테이트워치는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뿐만 아니라 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까지 무분별하게 수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법무부와 맨체스터경찰 간 데이터 공유 협약서를 확인한 결과, 경찰이 정부에 제공하기로 한 데이터 유형에 가정폭력을 포함한 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까지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위해 수집되는 ‘특수 범주의 개인 정보’ 항목엔 정신건강, 중독, 장애, 자해 및 자살 시도 등과 관련한 건강 정보 역시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최소 한 건 이상의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들의 개인 정보만 활용된다며 범죄 피해자의 정보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법무부는 이 프로젝트가 현재 ‘연구 목적’으로만 수행되고 있다며 “살인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특성을 검토해 위험 평가를 위한 새로운 데이터 기법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런 프로젝트가 특정 인종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편견이나 구조적 차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피아 라일 스테이트워치 연구원은 “이 모델은 형사사법 시스템에 내재된 구조적 차별을 강화하고 증폭시킬 것”이라며 “사람들을 폭력 범죄자로 분류하는 자동화된 도구를 만드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며, 이를 위해 민감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것 역시 충격적”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