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 김경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우원식 국회의장이 9일 오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개헌 논의는 대선 이후 이어가자”고 밝혔다.
우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국회의장의 제안에 선행됐던 국회 원내 각 정당 지도부와 공감대에 변수가 발생했다. 현재로서는 제기된 우려를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앞서 6일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제안했으나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는 야당의 반발이 쏟아진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이 이완규 법제처장 등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며 정국이 요동치자 ‘대선-개헌 동시 투표’ 주장을 철회한 것이다.
우 의장은 개헌 주장의 배경도 상세히 밝혔다. 그는 “대선 동시 개헌을 제안한 것은, 지난 30년 동안 반복한 개헌 시도와 무산의 공회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며 “대선 전이 대통령 임기를 정하는 4년 중임제를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또 “12·3 비상계엄이 불러온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야권에서 그의 권력구조 개헌 주장을 ‘내각제 개헌’으로 몰아붙이며 공격이 쏟아진 데 대해서도 유감을 나타냈다. 우 의장은 “어떤 이유로 의장의 개헌 제안이 내각제 개헌으로 규정됐는지는 알 수 없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합리적이고 진지한 토론을 위축시키고 봉쇄하는 선동”이라고 밝혔다.
■ 우원식 국회의장 입장문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제 정당의 합의로 대선 이후 본격 논의를 이어갑시다>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합니다.
위헌‧불법 비상계엄 단죄에 당력을 모아온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이 당장은 개헌논의보다 정국수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개헌이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이라면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합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함으로써 국회를 무시하고,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안정적 개헌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의장의 제안에 선행됐던 국회 원내 각 정당 지도부와 공감대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제기된 우려를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합니다. 향후 다시 한번 각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겠습니다.
국회의장은 작년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2026년 지방선거 동시 개헌을 공식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 전후로도 여러 기회를 통해 개헌 필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개헌 제안의 배경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향후 생산적 논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첫째, 대선 동시 개헌을 제안한 것은, 지난 30년 동안 반복한 개헌 시도와 무산의 공회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대선 전이 대통령 임기를 정하는 4년 중임제를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제안 당일에도 밝혔지만,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이미 각 정당 간 상당한 수준으로 의견 수렴이 이뤄진 상태입니다. 파악된 사회 각계의 의견과 국민 여론도 흐름을 같이 합니다. 이를 구체적인 개헌안으로 합의하려면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기 전에 매듭을 짓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에 관해 제기되고 있는 여러 주장을 정치적 셈법이나 호불호에 구속되지 않고, 논의하고 정리할 방안이기도 합니다.
4년 중임제 개헌은 국민의 의사를 받들고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책임 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의장의 소신과도 일치합니다. 의원내각제로는 책임 정치 풍토를 정착시키기 어렵습니다.
둘째, 12.3 비상계엄이 불러온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각계에서 국회의 계엄 승인권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개헌은 광범위한 사회적 요구를 높은 수준에서 제도화시킬 방안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방지할 필요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을 통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거부가 국회의 헌법재판소 구성권을 침해하는 것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행정부에 의한 국회 권한 침해 상태는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행위까지 발생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더는 해석의 영역에 남겨둬서는 안 됩니다.
셋째,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는 폐단을 해결해야 합니다. 감사원의 회계 검사권 국회 이관 등이 대표적 의제입니다. 정부 예산안의 총액 범위 안에서 국회의 예산 자율권을 확보해 이른바 ‘곳간지기’인 기재부의 예산권 남용을 예방하는 것도 삼권분립 강화를 위해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의제입니다.
개헌 제안 당일에 이미 밝힌 것처럼, 비상계엄은 헌법의 잘못이 아닙니다. 위헌‧불법 비상계엄이 초래한 막대한 피해, 대한민국을 추락시킬뻔한 권력의 일탈은 반드시 책임을 묻고 단죄해야 합니다. 동시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 역시 국회의 책무입니다.
대통령 선거일이 확정됐습니다. 조기 대선은 헌정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헌법 절차입니다. 12.3 비상계엄이 파괴한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합의의 내용, 개헌의 골자를 각 정당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제시해주기를 기대하고 요청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열리고, 개헌추진 동력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토론 문화에 대해 한 말씀 드립니다. 국회의장은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제안에서도 ‘직선제 개헌’의 열망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4년 중임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제는 6월 민주항쟁의 결실입니다. 이를 버리는 내각제는 국민적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 국회의장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권력구조 개편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1, 2차 단계적 개헌 제안에 담겨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의장의 개헌 제안이 내각제 개헌으로 규정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합리적이고 진지한 토론을 위축시키고 봉쇄하는 선동입니다. 국회에는 의견이 다른 수많은 의제가 있습니다. 대부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이고,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경청하고, 존중하고, 조율하고, 조정하려는 노력 없이는 정치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자유롭되 성실한 의견 제안, 진지한 반론과 토론 참여, 성찰과 숙의가 우리 정치와 국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