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의 위닝 전략]
사진=AFP·연합뉴스
글로벌 사모펀드(PE) 시장이 최근 두드러진 반등을 보이며 활력을 되찾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PE 투자 규모는 6020억 달러를 기록,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하며 2년 연속 하락세에서 벗어났다.
엑시트 투자 규모 역시 34% 늘어난 4680억 달러를 기록했다. 투자 가치와 엑시트 모두 지난 2년간의 급격한 하락에서 회복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업계가 직면한 가장 도전적인 시기 중 하나에서 벗어나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반등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레베카 버락 베인글로벌 사모펀드 대표는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초과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며 “승자의 자리에 오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표명하고 앞으로의 경쟁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최근 발간한 ‘2025년 글로벌 사모펀드 보고서(Global Private Equity Report 2025)’를 기반으로 향후 PE 시장의 5대 트렌드를 살펴봤다.
글로벌 PE 투자 규모 추이. 자료=베인앤드컴퍼니·그래픽=송영 기자
①자금조달 시장 : 없는 자와 있는 자의 격차 더 커져
PE 운용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금조달이다. 지난해 PE 규모는 23% 감소한 4010억 달러에 그쳤다. 이는 최근 5년 평균 대비 11% 낮은 수치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2021년(1조8000억 달러) 대비 거의 반토막 난 상황이다.
조성된 펀드 수도 전년 대비 28% 감소한 3000개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연간 조성 규모의 약 절반 수준에 그쳤다. 자금조달이 위축된 주요 원인은 기관투자가(LP)들의 신중한 접근과 유동성 압박이다.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 속에서 연기금, 국부펀드 등 대형 투자자들은 신규 투자보다 기존 포트폴리오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신규 투자 비중을 축소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특히 유럽 및 아시아 지역의 LP들은 출구전략이 명확한 펀드에만 자금을 배정하며 단순한 바이아웃 전략에 의존하는 펀드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올해 PE 시장은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마진 압박을 극복하고 차별화된 전략을 구축한 PE 운용사는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운용사는 자금조달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드라이파우더 규모 추이. 자료=베인앤드컴퍼니·그래픽=송영 기자
②치열해지는 경쟁과 마진 압박…“수익성 방어가 최우선 과제”
글로벌 PE 시장이 급격한 마진 압박에 직면했다. 전통적인 ‘2&20’(운용 수수료 2%, 성과 수수료 20%) 모델이 투자자들의 반발에 직면하며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베인 분석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평균 순운용수수료는 최대 절반까지 하락했다.
PE 시장의 주요 투자자인 연기금과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비싼 운용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직접 투자와 공동 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PE 운용사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수수료를 인하하거나 차별화된 투자 모델을 제시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블랙스톤은 초대형 맞춤형 펀드를 출시했다. 특정 기관투자가에게 성과 기반 수수료 구조를 제공하며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스텝스톤도 수익 공유형 모델을 도입했다. 기존보다 낮은 운용 수수료를 제시하는 대신 성과보수를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편 중소형 PE 운용사들은 더욱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일부 운용사는 기존 투자 전략을 포기하고 벤처캐피털(VC)과 유사한 초기 투자 및 테크 기반 투자로 선회하고 있다. 전통적인 바이아웃 모델로는 고금리 환경에서 기대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마진 압박은 PE 업계의 근본적인 수익 모델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운용사들의 생존 전략이 급격히 재편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③AI, PE의 생존을 위한 필수 기술로 부상
PE 시장에서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부가 기술이 아니다. 투자 검토, 기업가치 평가, 운영 효율화 등 PE의 모든 단계에서 필수 핵심 기술로 활용되는 추세다. AI 기반 초고속 실사시스템을 통해 과거 수개월이 걸리던 기업 실사 프로세스를 몇 주 만에 완료하는 등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면서 투자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베인 조사에 따르면 PE 포트폴리오 기업 대다수가 AI를 테스트하고 개발 중이며, 약 5분의 1의 기업이 이미 생성형 AI 활용 사례를 구현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테크 전문 PE 운용사인 비스타에쿼티파트너스가 AI 기반 투자 의사결정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Vista AI Analytics Platform(VAAP)’이라는 자체 플랫폼은 시장 데이터와 기업 내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 분석해 투자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VAAP는 5000개 이상의 소프트웨어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200개 이상의 성과 지표를 추적하며, 잠재적 인수 대상을 식별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포트폴리오 기업 85곳의 운영 효율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들의 주요 성과 지표인 고객 이탈률, 신규 고객 확보 비용, 고객 생애 가치 등을 AI로 분석해 신속한 개선 전략을 제시한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접근법은 비스타의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업계 평균 대비 30% 높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비스타가 투자한 기업 중 대표적 성공 사례인 로직모니터는 클라우드 기반 IT 인프라 모니터링 회사로 비스타의 AI 기술 활용 전략을 완벽히 구현했다. 로직모니터는 비스타 투자 이후 AI 기반 예측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사의 IT 인프라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로직모니터의 서비스는 평균 다운타임을 72% 감소시켜 고객 만족도를 크게 높였고 AI를 활용한 IT 인프라 분석으로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을 연간 200만 달러 절감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집계된다.
④PE 운용사도 매입 타깃…“대형화도 새로운 성장 전략”
운용사 간 인수합병(M&A)은 PE 업계의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개별 펀드를 운영하며 독립적인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주류였지만 이제는 운용사가 다른 운용사를 사들여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이후 지난해까지 180건의 대체투자 업계 M&A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이러한 전략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PE 운용사들은 인도와 동남아 시장을 새로운 투자 거점으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EQT는 바링 사모펀드 아시아(BPEA)를 75억 달러에 인수하며 아시아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대폭 강화했다. 블랙록은 120억 달러에 HPS를 인수, 대체투자 시장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2020년만 해도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PE 거래 가치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약 25%로 하락했다. KKR과 TPG는 최근 동남아 핀테크 기업 3곳을 공동 인수하며 이 지역에서 금융 산업의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M&A를 활용하는 PE 운용사들은 단순히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 포트폴리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사들여 산업 내 장악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⑤고성장 투자(그로스 에쿼티)로 전환…“벤처캐피털을 넘어서는 PE”
전통적인 바이아웃 중심의 PE 전략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스타트업 투자가 VC의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PE 운용사들도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일부 운용사들은 전통적인 바이아웃보다 고성장 기업에 소수 지분을 투자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베인 분석에 따르면 기술 부문은 PE의 주요 분야로 남아 가치 기준으로 거래의 33%, 거래량 기준으로 26%를 차지했다. 블랙스톤과 TPG는 최근 바이오테크 및 헬스케어 스타트업 투자 비중을 30% 이상 확대했으며 KKR 역시 AI 및 SaaS 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PE 운용사들이 기존의 레버리지 바이아웃(LBO) 모델을 벗어나 혁신 기술 기반 기업을 선점하려는 흐름은 2025년에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PE 시장 점진적 회복…“새로운 변화 적응 필수”
2025년 PE 시장은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안정화와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투자 및 엑시트 거래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휴 맥아더 베인글로벌 사모펀드 총괄 회장은 “2024년을 ‘부분적 호흡’ 회복의 해로 볼 수 있다”며 “2022년 중반 이후 활동을 억제했던 역풍이 계속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기존 방식만 고수하는 PE 운용사들은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AI, 성장형 투자, M&A 전략이 핵심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빠르게 도입하는 운용사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결국 PE 업계는 이제 ‘어떤 전략을 선택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는 플레이어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베인앤드컴퍼니 최원표 대표·윤성원 대표 파트너. 사진=베인앤드컴퍼니
베인앤드컴퍼니 최원표 대표·윤성원 대표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