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곧 공석이 될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 가운데 1명으로 ‘기습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은 ‘내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공직 부적격자’다. 특히 그가 12·3 비상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참석한 ‘삼청동 안가 회동’은 임박한 내란 수사를 앞두고 범죄 사실 은폐와 추후 법률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공모의 장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이 처장은 지난 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서울법대·연수원 동기로 친분을 맺은 46년 지기로, 법조계의 대표적인 ‘윤석열 인맥’으로 꼽힌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내린 징계 처분의 취소 소송과 윤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관련 사건을 변호했다. 2022년 대선 당시엔 윤석열 선거캠프에서 활동했고,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꾸려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정무사법행정분과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제처장으로 임명된 것도 그만큼 윤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점을 방증한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일찌감치 낙점해두고 있었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그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두고 ‘한덕수의 인사가 아닌 윤석열의 인사’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큰 논란은 그가 12·3 비상계엄 다음날,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과 회동한 사실이다. 박성재 장관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보자는” 친목 목적의 자리였다고 해명했지만, 내란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대통령 안가’에서 이뤄진 윤석열 정권 ‘법조 실세’들의 만남을 친목 모임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정황상 내란 수사를 앞두고 사건 은폐와 대응 법리를 마련하기 위한 ‘대책 회의’ 성격의 자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처장의 수상한 행적은 ‘비밀 회동’ 뒤에도 이어졌다. 회동 직후 돌연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이다. 이 처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증거 인멸한 것 아니냐”(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질문에 “증거 인멸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저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답했고, “왜 휴대전화를 교체했냐”(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는 질문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었다. 사용하기 불편한 점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교체했다”며 석연찮은 해명을 내놨다.
이 처장은 현재 경찰에 내란 혐의로 고발돼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그는 이미 한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휴대전화를 교체한 이유 등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날도 이 처장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두고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 지명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이 처장은 고비 때마다 국회에 출석해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법률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은 형사재판 결과 이후 결과를 내는 게 타당한 것 아니냐’는 국민의힘 쪽 질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논거는 충분히 있다”고 감쌌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대통령 수사에 대해서는 “공소권이 없으면 수사할 수 없다고 (해석) 하는 쪽이 훨씬 더 다수”라고 했다.
일각에선 그가 2022년 5월 법제처장 취임 전까지 국민의힘 당원 신분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의혹이 사실이면 ‘정당의 당원 신분을 상실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그의 지명은 원천 무효가 된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이날 한겨레에 “국민의힘 당적을 가진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쪽은 “당적 보유 여부는 개인정보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