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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연



‘벽에 못 박아 주실 분 찾습니다.’

‘당근마켓’에 종종 올라오는 요청이다. 이런 글을 보면 당장 출동하고 싶다. 적합한 공구와 철물이 있다면 못 박는 일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사이에 정보와 경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벽 자재는 일반적으로 콘크리트나 석고보드, 나무 합판으로 되어 있다. 두드렸을 때 ‘통통’ 하고 빈 소리가 난다면 석고나 합판, 둔탁하게 막혀 있는 소리가 난다면 콘크리트 벽이다. 석고나 합판은 일반 전동드릴로도 뚫을 수 있고, 콘크리트에는 해머 드릴이 필요하다. 해머 드릴은 주민센터에서 빌릴 수 있지만 사정이 안 되면 인터넷 철물점에서 유료로 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못을 박기에 앞서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벽에 못을 박아도 되나?’ 세입자라면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설령 내 집이라도 망설여지기는 마찬가지다. ‘벽 뒤의 전선이나 배관을 건드리면 어떡하지?’ ‘액자 하나 걸자고 벽을 훼손할 필요가 있을까?’ 거울은 가구 위에 올려두거나 접착식 거울을 쓰면 되고, 액자는 마치 의도한 것처럼 바닥에 두고 벽과 천장이 트여 보이는 공간감을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못 박기를 피할 수는 없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운영하는 가게라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못의 쓸모를 확신한다면 용기 내서 집주인(또는 나)을 설득하자. 벽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벽 탐지기를 사용하면 알 수 있고, 못 구멍 없애기는 못 박기보다 백배는 쉽다. 구멍에 퍼티*를 발라 메우고 2~3시간 건조한 뒤 물 묻힌 사포로 평탄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실크벽지로 마감된 벽이라면 더 감쪽같은 방법이 있다. 못을 박기 전에 십자로 칼집을 내서 벽지를 벌린 다음 그 자리에 못을 박고, 나중에 못을 뽑고 벌려둔 벽지를 다시 풀로 붙이면 그만이다(정이숙 지음 <오전의 살림 일력 365> 참고). 벽지가 너무 얇거나 이미 훼손된 경우엔 일자 드라이버로 전등 스위치 커버를 떼어내 보자. 못 구멍을 가릴 정도의 벽지 조각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판 가장자리를 들추어 원하는 만큼 벽지를 잘라낼 수도 있다. 싱크대나 붙박이 가구의 안쪽, 두꺼비집(분전반) 등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여분의 벽지가 있는지 적극 탐색해 본다.

헐거워져 못이 빠지는 구멍도 수리하는 방법이 있다. 자재가 나무라면 구멍에 목공풀을 쏘고 이쑤시개나 면봉을 부러뜨려 넣은 다음 나사를 박는다. 석고나 콘크리트는 앙카를 새로 박거나 에폭시 메꾸미로 구멍을 복원하면 된다. 현관문(방화문)처럼 금속 자재의 구멍이 헐겁다면 쓰지 않는 전선의 피복을 벗기고 구리선을 나사에 감아서 박아 넣어 보자. 웬만해선 빠질 일이 없을 것이다.

못 하나 때문에 사람을 불러야 한다면 수고로운 일이다. 겁먹지 말고 뚫고, 메우고, 다시 써보자. 벽에 박힌 못이 흠이 아니라 쓸모로 보일 때, 그것은 훼손이 아니라 용기의 증거로 남을 것이다.

*퍼티: 틈새나 흠집을 메우는 보수제. ‘메꾸미’ ‘빠데’라고도 부른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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