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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까지 77주년 4·3 추념기간
현기영 '사월에 부는 바람' 출간
벌써 4번째 계엄령을 겪었다는 소설가 현기영은 "우리가 경계를 늦추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시몬 기자


"아직도 제주 4·3의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요. 그들의 경거망동을 막기 위해서는 4·3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기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소설가 현기영(84)은 제주 4·3의 목격자이자 생존자다. 4·3은 1948년 4월 3일부터 약 7년간 제주에서 민간인 3만 명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 그는 4·3이 잊히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4·3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였던 군사독재 시절 그는 소설 '순이 삼촌'(1978)으로 4·3의 진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이후 4·3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됐고 2014년 비로소 4·3이 국가추념일로 제정됐다.

"4·3이 77년 전 일인데, 그런 일이 또 오겠어 싶겠죠.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경계를 늦추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망각해선 안 됩니다." 최근 펴낸 자전적 에세이 '사월에 부는 바람'을 들고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를 찾은 그의 당부다.

평생 4·3을 문학으로 조명해온 소설가 현기영은 최근 4·3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과 문학 세계를 풀어가는 자전적 에세이 '사월에 부는 바람'을 출간했다. 책 표지에 있는 팽나무는 동백꽃과 더불어 그날의 참상을 묵묵히 지켜본 4·3의 상징물 중 하나다. 박시몬 기자


4번째 계엄령… "역사 망각해선 안 돼"



그에게 4·3은 여전히 현재다. '순이 삼촌' 출간 후 보안사에 끌려가 사흘간 매질당한 기억이 생생한 그는 "계엄령이라면 끔찍하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에 연루된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이 보안사다. 지난해 12월 3일 밤을 그는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나, 죽었던 망령이 살아나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돌이켰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절에 더해 이번이 그에겐 4번째 계엄령이었다.

그는 "보안사 지하실에서 고문당해본 사람은 계엄의 본질을 안다"며 "우리 군인과 국회가 제때 막아서 다행이지 계엄이 성공했다면 공포 정치하에 수백 명이 체포 구금돼 고문당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과감히 대처하면서 민주주의를 가꿔야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경구를 인용하면서다.

2007∼2009년 진행된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4·3희생자 유해 387구가 60여 년 만에 발굴됐다. 사진은 유해발굴 현장. 제주4·3평화재단 제공


"내 작품은 양민 학살 피해자 위한 해원굿"



그는 평생 4·3을 글로 썼다. 제주시 노형동 외곽 자연 부락인 '함박이굴'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무렵 4·3을 겪었다. 4·3 직전 제주시로 이사 나온 그의 가족은 무사했지만 그의 소꿉동무들은 화를 피하지 못했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불타 사라진 130여 개 마을 중 하나인 '함박이굴'은 더 이상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고향을 잃었고, 4·3은 그에게 우울증과 말더듬증이라는 상흔을 남겼다. 대학 진학 이후 60여 년을 서울과 근교에서 생활했지만 그의 "정신과 영혼은 아직도 그 섬에 머물러 있"다.

문학 이외 다른 삶은 염두에 둔 적 없던 그에게는 "4·3을 제쳐놓고 다른 이야기를 쓴다는 게 죄악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란 이래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어요. 제주 출신으로 4·3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내가 펜대를 쥐었으면 온 도민이 앓고 있는 트라우마부터 써야 되지 않겠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였죠."

제주4·3 희생자 추념 기간인 지난달 29일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 유적지'의 북촌 주민 4·3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탐라중 학생 등이 묵념하고 있다. 이곳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곳이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949년 1월 17일 2연대 군인 토벌대는 북촌 마을 인근에서 군인들이 기습받은 데 대한 보복으로 북촌리를 모두 불태우고 이튿날까지 북촌초 인근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민 400명가량을 집단으로 총살했다. 제주=연합뉴스


1975년 등단작인 단편소설 '아버지'를 다 써놓고 알았다. 그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며 쓴 소설인데 흐릿한 배경으로 4·3이 있었다"며 "그렇다면 제대로 4·3의 참상을 그려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4·3에 대한 공식 기록은 지워진 지 오래다. 그는 직접 제주로 내려가 증언을 채취했다. 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순이 삼촌'을 썼다. 그는 "4·3의 진상은커녕 왜 부모 형제가 죽었는지, 왜 얻어맞고 고문당했는지 아무도 몰랐다"며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들은 죽어서 공산주의자가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평생 매달렸던 4·3에서 벗어날 결심을 여러 번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내 작품은 무당의 해원굿, 나는 4·3의 무당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는 2023년 쓴 대하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가 4·3에 대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인권과 평화에 대한 에세이를 집필 중이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나가 목소리를 더했다. "곧 늦었지만 정의를 구현하는 선고가 있을 겁니다. 늦어진 정의도 정의입니다. 그때 우리는 만시지탄이나마 '잘했다'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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