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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보스버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판사. AP연합뉴스


“법원은 정부가 사법부의 명령을 위반한 것인지, 누가 이를 지시했는지, 그에 따른 결과가 무엇인지 철저히 밝혀낼 것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재판에서 제임스 보스버그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벌어진 베네수엘라 이민자 강제 추방 논란을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했다. 그는 “왜 금요일 밤 은밀히 추방 명령이 서명된 후, 이민자들이 급히 비행기에 태워졌나”라며 경위를 따졌고 “정부는 문제가 될 것을 알고 소송 제기 전 신속히 추방하려 한 것이 유일한 이유로 보인다”며 진실을 추궁했다. 재판은 진행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게 된 판사들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추방한 베네수엘라 갱단원들이 양손이 포박된 채 엘살바도르 테콜루카에 있는 중남미 최대 교도소 ‘테러범수용센터’(CECOT)에 수감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통념의 전복, 규범의 파괴, 절차의 자의적 해석이 빈번한 트럼프 행정부 정책 집행 특성상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보스버그 판사가 대표적이다. 유명세와 거리를 두고 살아온 그는 이달 중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지난달 14일 베네수엘라 국적자 200여명을 비행기에 태워 추방한 트럼프 행정부 결정에 제동을 걸며, 항공편 복귀를 명령했다. 정부가 이에 따르지 않으면서 ‘의도적 무시’인지, ‘불가피한 조치’였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며 사태를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스버그 판사를 찍어 “좌파 미치광이 판사”라 공개 비난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등 최측근과 공화당 의원들이 판사 탄핵에 가세하며 판을 벌였다. 행정부 수반이 법관 개인을 향한 조리돌림을 부추겨 삼권분립을 위협할 뿐 아니라 개인을 향한 폭력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갖은 공세에도 보스버그 판사는 ‘법과 원칙’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예일대 졸업 후 23년간 판사로 일해온 보스버그 판사는 탄압에 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는 이민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언제 이·착륙했는지, 언제 미국 영공을 벗어났는지, 항공기가 경유한 곳은 없는지 등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놓지 않는 정보를 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악재가 추가됐다. 기자를 초대한 민간 메신저 ‘시그널’에서 백악관 외교·안보 수뇌부가 군사작전을 논의한 ‘시그널 게이트’ 재판을 보스버그 판사가 맡게 된 것이다. 보스버그 판사는 사건과 관련 있는 백악관 인사들에게 시그널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를 지우지 말고 보존할 것을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사 배정 시스템에 조작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무작위로 이뤄진 것이라 했다.

보스버그 판사는 정파성과 거리가 먼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사법부 안팎의 두터운 신망을 쌓아왔다. CNN은 그가 언론과 만나지 않고,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 판사라 보도했다.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보스버그 판사를 겨눈 트럼프 대통령의 ‘법관 탄핵’ 주장을 제지하는 성명을 냈다. 2021년 ‘1·6 의회 폭동’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변호한 보수 성향 변호사 윌리엄 시플리는 최근 SNS에서 “보스버그 판사는 사려 깊고 침착하다”며 그를 ‘테러리스트’ ‘반역자’라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과 언쟁을 벌였다.

이밖에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쏟아낸 정책을 사법부가 멈춰 세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 결정에 따라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막은 행정명령 시행이 중단됐고, 정부효율부(DOGE)의 국제개발처 폐쇄도 멈췄다.

‘표현의 자유’ 아이콘이 된 이민자들

마흐무드 칼릴이 지난해 6월 1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학에서는 ‘표현의 자유’ 아이콘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가자지구 반전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8일 긴급체포된 컬럼비아대 졸업생 마흐무드 칼릴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표현의 자유 논란을 촉발한 대표 인물로 떠올랐다. 팔레스타인 출신 알제리 시민권자인 그는 미국 영주권(그린카드) 보유자로, 지난해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반전 시위 당시 학교 측과 협상했던 대표단 중 한 명이었다. 칼릴에게 범죄 경력이 없었고, 교내 시위에서도 폭력적이거나 위법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체포 적법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증거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것은 앞으로 있을 많은 체포 중 첫 번째”라는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칼릴을 시작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이주민 단속은 속도전에 돌입했다. 반전 시위에 참여한 컬럼비아대 학생 레카 코르디아가 체포돼 텍사스 북부에 구금됐고, 조지타운대 박사후과정 연구원인 인도 국적의 바다르 칸 수리도 체포됐다.

영국·감비아 이중국적을 보유한 코넬대 학생 모모두 탈도 최근 이민 당국 출석 통지를 받았는데, 반유대주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추방 조치에 대해 소송을 건 직후 벌어진 일이라 ‘보복 추방’ 논란이 일었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한인 영주권자 정모씨도 추방될 뻔했지만 법원이 멈춰세웠다. 보스턴 터프츠대학을 다니는 튀르키예 유학생 뤼메이사 외즈튀르크도 대낮 길 한복판에서 끌려갔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마흐무드 칼릴의 체포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완고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미·반유대주의 활동 가담 행위자’에 대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마스 지지자가 미국 대학에 들어와 뒤흔들어 놓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가한 외국인 학생 약 300명의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격발한 문화전쟁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헌법의 중추인 표현의 자유를 건드렸다. 언론과 법조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판과 논쟁이 확산했고 진보적인 유대인 단체까지 나서 ‘칼릴을 석방하라’며 농성을 벌였다. 칼릴을 ‘광산의 카나리아’에 빗대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즉각 추방을 목표로 후속 절차를 밟았지만,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며 사법부가 추방을 멈춰 세운 상태다.

바닥 찍은 민주당서 두각 드러내는 진보 정치인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템피에서 열린 투어 행사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함께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지지율이 바닥 친 미국 민주당은 뚜렷한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한 채 난항을 거듭하는 모습이지만, 내부에선 조용한 돌풍이 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초한 논란의 국면마다 강도 높은 비판과 정치 공세로 두각을 드러낸 정치인들이 그 주역이다. 선명성을 앞세운 강성 진보 그룹의 정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벼리며 민주당의 차기 리더십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뉴욕)은 공화당이 주도한 임시예산안에 찬성해 통과를 거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공개 비판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친이스라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침묵하는 동안 ‘헌법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칼릴, 외즈튀르크 등의 체포와 트럼프 행정부 이민자 단속을 비판했고, DOGE 주도의 인력 감축, 예산 삭감의 폐해를 지적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 CNN방송과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10% 응답을 얻어 민주당 정치인 중 당의 핵심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 리더로 꼽혔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과 전국 투어를 진행한 무소속 버디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버몬트)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달 22일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열린 집회에서 샌더스 의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왕이 아니라, 활기찬 민주주의”라며 “모든 권력이 한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직격했다. 최근 애리조나와 콜로라도, 네바다에서 두 정치인이 주도한 집회에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영국 가디언은 “현재까지 트럼프에 맞설 전략과 당의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민주당 인사로 가장 주목받는 이는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라고 평가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재스민 크로킷 연방 하원의원(텍사스)은 지난달 의회의사당 앞에서 ‘머스크에게 할 말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꺼져(F**k off)”라고 답하는 장면이 SNS에 확산하며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페리 베이컨 주니어는 “많은 민주당 관계자들이 다양성·형평성·포용(DEI)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데 소극적인 반면, 크로킷은 DEI의 이점을 강조하며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평범한 백인 남성들’이라고 지칭했다”며 “크로킷은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동의하지만 의원들은 말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평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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