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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남석 작가의 ‘마음의 중심’ 잡기
“긍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 작가 인터뷰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씨가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에서 버려진 병을 활용해 중심잡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유리병들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닿자 모양도, 무게도 다른 병들이 아슬아슬한 원을 만들었다. 이렇듯 기이한 작품을 순식간에 만들어낸 남자는 ‘밸런싱 아티스트’로 불리는 변남석(63) 작가.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작품이 아니라 마술 같다고, 초능력을 부린 것 아니냐고.

하지만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변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누구나 자신처럼 ‘중심 잡기의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어쩌면 나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겸양의 표현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변 작가는 중심 잡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전인미답의 아티스트다. 그가 손을 대면 항상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진다. 유리병처럼 둥글어도, 오토바이처럼 커도 상관없다. 고정된 형체가 있고 얼마쯤 무게만 있다면 뭐가 됐든 기어코 ‘중심’을 찾아내는 게 변 작가다. 그런데 그는 어쩌다 이런 예술가가 된 것일까.

돌 쌓다가 예술가가 되다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성남에서 실내스키장을 운영하던 그가 느닷없이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2003년, 강원도 춘천 등선폭포에서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시각, 그는 심심풀이 삼아 기다란 돌 하나를 세운 뒤 그 위에 동그란 돌멩이를 얹었다. 그다음엔 이것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인생 행로를 바꿔놓은 것은 당시 찍힌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에 있는 것은 돌로 만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행여나 여인이 사라질까 밤잠을 설친 그는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곧장 그 여인에게로 향했다.

“단단한 돌이 동그라미가 될 때까지는 정말 많은 세월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돌이 여인이 돼서 나타났잖아요. ‘돌의 여인’이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2003년 춘천 등선폭포에서 만난 돌의 여인. 변 작가 제공


그는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 중심 잡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즈음 변 작가는 결혼 8년 만에 부인과 갈라선 상태였고 어린 아들 둘에 아픈 어머니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항상 미안했다. 그때 돌 위에 돌을 올리는 것이 취미가 됐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니 직업이 됐다. 그는 운전하다 빨간불에 멈춰 선 찰나에도 돌을 쌓았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분당 탄천에서 돌 쌓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2008년 성남시는 탄천을 작업장으로 내줬는데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변 작가를 보며 누군가는 “거기서 고기 잡으면 안 된다”고 외쳤다. 한 할머니는 “돌 쌓으면 밥이 생기냐, 떡이 생기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과 달리 돌 쌓기는 그의 밥벌이가 됐다.

언젠가부터 그는 해외 무대에도 초청되는 명사가 됐다. 두바이 왕자의 초대로 지구촌 최대 쇼핑몰에서 공연한 적도 있고,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변 작가는 “미국 메리어트호텔에서 초청을 받아 항공기 일등석을 탄 적이 있다. 그곳에 앉아 중심 잡기를 하는데 문득 이 정도면 할머니의 물음에 답이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며 웃었다.

성남시 분당 탄천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 변 작가 제공


20년 넘게 활동하니 그를 달인이나 기인 정도로 여기던 시선도 사라졌다. 변 작가는 “달인은 한 분야에서 열심히 해서 잘하는 사람이다. 다음에 만나도 그 일을 똑같이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저는 똑같은 걸 요구하면 안 해요. 대신 더 센 걸 보여주겠다고 하죠. 사람들이 다음에 무슨 작업을 할 거냐고 물으면 저도 모른다고 해요. 한 번도 안 해본 걸 찾아내는 게 오히려 쉬워요. 했던 거를 계속하는 건 재미 없잖아요. 뭔가를 발견하면서 사는 게 좋아요. 그런데 이런 삶을 포기하고 내가 뭔가를 쫓아가면서 경쟁하게 되면 치열하기만 한 삶을 살게 되죠(웃음).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변 작가는 타고난 스포츠맨이다. 특히 인라인스케이트나 스노보드, 윈드서핑이나 웨이크보드처럼 ‘중심’을 잡아야 즐길 수 있는 운동들에 자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운동들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밸런싱 아트를 하면서 생긴 ‘직업병’ 탓이다. 매일 무거운 돌을 들다 보니 허리 어깨 목 손가락 등에 문제가 생겼다. 변 작가는 “몸으로 할 수 없는 운동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중심 잡기만큼은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른다”고 말했다.

변 작가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구절을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꿔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저는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행동해요. 그러면 생각이 따라오죠. 그러다 보니 틀에 갇히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물론 그만큼 누구보다 실패도 많이 해요. 중심 잡기를 시작한 지 20년 넘은 지금도 여전히 실패하고 있고요.”

변 작가가 밸런싱 아트를 선보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수전증이다. 이따금 평소보다 손이 조금 더 떨릴 때면 낭패감을 느끼곤 한다. 이런 날이면 무대에 섰더라도 “오늘은 망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안 된다고 인정한 적 많아요. 안 되면 대놓고 ‘망했습니다’하고 치워버려요. 대신에 더 센 걸 보여준다고 하죠. 해서 또 안 되면 또 더 센 걸 보여준다고 해요. 결국에는 제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거든요.”

지난 2013년 홍콩 공연 모습. 변 작가 제공


사람들이 중심 잡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을 때면 이렇게 답한다. ‘할 수 있다’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고. 숨을 참느냐 마냐보다 내 안의 중심을 잡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중심 잡기를 해보라고 하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나는 못 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과거 그는 한 초등학교에서 ‘중심 잡기 교실’ 강좌를 열었는데, 달걀을 세울 수 있냐는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한 학생은 “선생님은 능력자니까 되지만 우리는 일반인이라 못한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어린 1학년 학생이 달걀을 세우는 데 성공하자 분위기가 달려졌다. 건성건성 하던 아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 결국 교실에 있던 모든 이가 달걀 세우기에 성공했다.

“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것, 그 경험을 한 번이라도 가지게 해주고 싶어요. 이런 경험을 한 친구는 저와 한 판 붙자고 얘기해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순간 저와 동등해지는 거죠. 열심히 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고 나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돌이켜 보면 저는 돌 위에 돌을 쌓았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런 일이 제 삶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도움도 주는 삶으로 바꿔놨어요. 뭔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니 사는 게 행복해졌어요.”

갈매기가 앗아가도 아깝지 않아

변 작가가 밸런싱 아트 작업을 하면서 묘한 기쁨을 느낄 때는 일껏 세운 작품이 넘어질 때다. 예컨대 갯바위에서 작업하다 보면 밀물이 들어와 섬을 만들고, 이윽고 파도가 작품을 자빠뜨리곤 한다. 어떤 때는 돌탑 위로 갈매기가 날아와 무너질 때도 있다.

“내내 서 있는 건 저한테 의미가 없어요. 제 작품은 갈매기가 앉아도,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쳐도 쓰러져요. 그렇게 앗아가도 아깝지 않아요. 그게 자연의 순리니까요.”

돌탑 위에 갈매기가 날아와 앉은 모습. 변 작가 제공


그의 작품은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말한다. 이날 변 작가 손에 들려 있던 것도 주둥이가 깨진 병이었다. 중심 잡기를 하다 깨뜨린 실패의 흔적이지만 새 병으로 바꾸진 않는다. 쓰임이 다한 물건들을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그의 작업이다.

변 작가의 꿈은 빙하로 향한다.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에서 녹아 떨어져 나간 얼음 조각을 중심 잡아 세워보고 싶다고 했다. 는 “바람을 타고 강을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는 걸 몸으로 익히며 살아왔다. 자연을 느끼고 살다 보니 꿈의 크기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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