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①
지난 2월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2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왼쪽)과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2·3 내란 사태에서 드러난 윤석열의 광기에 세상은 깜짝 놀랐지만,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이들도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에서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을 지낸 한동수가 대표적이다. 한동수는 2020년 12월 추미애 장관의 지시에 따라 윤석열에 대한 감찰을 진행하던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윤석열이) 군대에 의한 무력 쿠데타가 아니라 검찰 수사를 통한 쿠데타를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동수는 ‘검·언유착’ 관련 한동훈에 대한 감찰을 시작으로 1년5개월 동안 윤석열과 대립하면서 그의 ‘내란 본색’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둔 3월19일 대검 간부 회식 자리에서 들은 발언도 그중 하나다. 윤석열은 이날 아무렇지도 않게 ‘쿠데타’를 언급했다.

“만일 육사에 갔더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다. 쿠데타는 김종필처럼 중령이 하는 것인데 검찰에는 부장에 해당한다. 나는 부장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검찰의 심장부에서’ 한동수 2024년)

“윤석열, 폭탄주 마시며 호기롭게 ‘쿠데타’ 말해”

2019년 12월2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전 검찰 수사관 출신 백아무개 청와대 특감반원의 빈소를 조문한 뒤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수에 따르면 당시 윤석열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이길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로 문재인 정권과 대립하던 윤석열에겐 야당의 총선 승리가 그만큼 간절했다(그의 바람과 달리 총선에선 여당이 압승했다). 쿠데타 발언엔 야당의 총선 승리에 맞춰 검찰 수사로 정국을 확 뒤엎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었다. 한동수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여러 잔 마신’ 윤석열이 ‘호기롭게’ 한 이 발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윤 총장은 삼권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양승태)을 구속시켰고, 대통령인 이명박·박근혜를 잇따라 구속 수사한 사람이다. 그 어조와 톤이 본인의 의지가 담긴 것이어서 단순한 농담이나 소회로 들리지 않았다. 검찰로 치면 부장에 해당한다는 말까지 하는 것으로 볼 때, 수사권·기소권을 통해 국내 정세를 좌우하는 권력을 지금 실감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검찰의 심장부에서’ 55쪽)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에 편승해 역대 가장 막강한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은 어느덧 정권을 넘보는 수준이 됐다. 그는 ‘적폐수사’ 칼의 방향을 바꿔 문재인 정권을 겨누기 시작했다. 검찰이 ‘청와대 선거개입’이라는 살벌한(!) 이름을 붙인 수사가 시작이었다. 지난 2월4일 서울고법에서 피고인 대부분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1심에선 모두 실형이 선고될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짜맞춘 수사였다.

윤석열 사단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변호사의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선거 캠프 구실을 했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검찰은 2020년 1월29일 송철호 울산시장과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백원우 민정비서관,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 등 무려 15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수사의 최종 타깃은 다른 데 있었다.

검찰 공소장에 ‘대통령’ 적시한 윤석열 사단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 이처럼 공무원은 그 직위를 막론하고 법률에 따른 공직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당선하게 하거나 낙선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고…(중략)” (공소장 11쪽)

공소장에 현직 대통령을 마치 ‘피의자’인 것처럼 적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임을 숨지지 않았다. 마치 문재인에게 ‘당장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임기가 끝난 뒤엔 반드시 수사하겠다’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총만 안 들었을 뿐 사실상 쿠데타였다.

윤석열이 왜 ‘쿠데타급’ 수사를 갈망했는지는 당시 정국을 달궜던 조국 수사를 보면 짐작이 간다. 윤석열이 2019년 8월 조국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명분은 권력형 비리, 즉 사모펀드 관련 비리였다. 조국이 민정수석의 지위를 이용해 5촌 조카가 운용하는 사모펀드를 키워 대선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4개월여 동안 수사한 결과 윤석열이 공언한 사모펀드 비리는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2019년 10월24일 딸의 대학 입시용 표창장 위조 혐의로 조국의 부인 정경심만 구속하는 데 그쳤다.

2019년 7월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식 뒤 환담에서 조국과 윤석열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정효 기자

문재인 정권은 조국 가족에 대한 수사를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권력형 비리’는 핑계일 뿐 실제 목적은 조국이 추진할 검찰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있다고 봤다. 특히 윤석열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했다. 차기 대권 도전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조국을 제거하려고 검찰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한편으로 조국 가족 수사는 윤석열의 체면도 구겼다. 검찰의 최정예 부대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총동원하다시피 했는데도 정경심만 구속기소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끝까지 조국을 손보지 못한다면 역풍이 불 수도 있었다. 윤석열이 살기 위해선 수사의 정당성을 입증하면서 문재인까지 타격을 줄 수 있는 ‘한방’이 필요했다.

울산지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한 까닭

윤석열은 2019년 11월26일 울산지검에 있던 황운하 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시켰다. 2018년 미래통합당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황운하를 고발한 사건이었다. 미래통합당은 울산경찰청장이었던 황운하가 현직 울산시장인 김기현(현 국민의힘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수사팀에 ‘표적수사’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울산지검은 1년이 훌쩍 넘도록 사건을 캐비닛에 처박아 둔다.

윤석열은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자마자 ‘물건’이 될 만하다고 직감했다. 울산경찰청이 울산지검에 넘긴 수사기록에 첨부된 ‘김기현 비리 의혹’ 보고서가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작성된 것에 주목했다. 잘만 엮으면 청와대가 경찰에 김기현에 대한 수사를 ‘하명’한 것으로 몰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황운하는 ‘고래고기 반환’ 사건을 두고 울산지검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 사건은 2016년 4월 울산경찰청이 고래고기 불법 유통 사건을 수사하면서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고기 30억 원어치를 울산지검 검사가 일방적으로 피의자인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주면서 불거졌다. 유통업자들이 장물을 반환받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사회는 들끓었다. 황운하는 2017년 7월 울산경찰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수사에 나섰다. 당시 유통업자를 대리한 검찰 출신 변호사에게 검사가 ‘전관 특혜’를 준 것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울산지검은 경찰이 신청한 전관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황운하는 검찰이 경찰 수사를 방해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검찰개혁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수사권 조정 문제와 겹치면서 전체 검·경 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였다. 이를 방치했다간 자칫 검찰개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2018년 1월 특감반원 2명을 울산 현지로 보내 고래고기 사건을 조사하도록 했다.

윤석열, 피의자 죽음에도 청와대와 ‘확전’ 택해

2019년 12월3일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3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백아무개 특별감찰반원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황운하 고발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울산 출장을 김기현 관련 비리를 수집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봤다. 검찰은 특감반원들이 ‘김기현 비리 의혹’ 보고서를 작성한 뒤 백원우를 통해 조국까지 보고한 것으로 수사 프레임을 짰다. 검찰은 울산 출장을 갔던 검찰 수사관 출신 백아무개 특감반원을 보고서 작성자로 지목해 소환을 통보했다. 하지만 김기현 비리 보고서 작성자는 고래고기 사건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특감반원이었다. 백씨는 수사 경험이 많은 베테랑 수사관이었고, 윤석열과도 함께 일한 인연이 있었다. 그는 검찰 소환을 앞둔 2019년 12월1일 유서를 남긴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죽음은 검찰에 큰 충격을 줬다. 피의자이기 전에 검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 여론도 크게 동요했다. 청와대에 파견된 ‘윤석열의 심복’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이광철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에게 “검찰이 문 닫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박형철은 ‘황운하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 같다’는 검찰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상황은 전혀 달랐다. 윤석열은 청와대를 향한 확전을 택했다. (다음 회에 계속)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법치’를 강조하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는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민과 국회에 의해 155분만에 제압돼 탄핵과 형사처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조롱합니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지지자들에게 궐기를 촉구합니다.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저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나왔을까요.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윤석열 내란의 뿌리를 추적해 봤습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630 “뇌 닮은 반도체로 응용”…세계 최고 삼진법 光소자 개발 [이달의 과기인상] 랭크뉴스 2025.04.02
47629 챗GPT 가입자 5억 명 돌파…‘지브리 열풍’에 고급 기능도 [지금뉴스] 랭크뉴스 2025.04.02
47628 '지브리 놀이' 전세계 유행 타더니…챗GPT 이용자 5억명 돌파 랭크뉴스 2025.04.02
47627 47억 아파트 샀는데 30억 아빠가 빌려줘…국토부, 위법 거래 조사 랭크뉴스 2025.04.02
47626 ‘재산 누락 혐의’ 이병진 의원, 1심서 당선 무효형 랭크뉴스 2025.04.02
47625 ‘계엄에 미군 투입 가능’ SNS 주장에…주한미군 “허위 정보” 랭크뉴스 2025.04.02
47624 탄핵선고 D-2…헌재 인근 24시간 철야집회로 도로 통제·출근길 혼잡 랭크뉴스 2025.04.02
47623 [단독] 중국시계 12만개 국내산 둔갑…제이에스티나 대표 기소 랭크뉴스 2025.04.02
47622 ‘인하대 딥페이크’ 제작·유포한 15명 검거…8명 구속 랭크뉴스 2025.04.02
47621 권성동, 야당 ‘최상목 탄핵’ 추진에 “실익 없는 분풀이식 보복” 랭크뉴스 2025.04.02
47620 윤 대통령 탄핵 선고 D-2…추가 평의는 계속 랭크뉴스 2025.04.02
47619 나스닥 11% 폭락…트럼프 ‘관세 전쟁’ 50일 처참한 성적표 랭크뉴스 2025.04.02
47618 [속보]‘재산 신고 누락 혐의’ 이병진 의원 1심서 당선무효형 랭크뉴스 2025.04.02
47617 입만 열면 ‘법치주의’ 한덕수·최상목…“직무유기죄 처벌해야” 랭크뉴스 2025.04.02
47616 권영세 "민주당, 승복 얘기하지 않는 것 유감스러워" 랭크뉴스 2025.04.02
47615 이복현, 금융위원장에게 사의 표명…일단 반려 랭크뉴스 2025.04.02
47614 이재명 “헌재, 민주공화국 가치 합당한 판정 내릴 것 믿는다” 랭크뉴스 2025.04.02
47613 상법개정에 직 걸었던 이복현 "입장 밝혔지만 경거망동 말라고"(종합2보) 랭크뉴스 2025.04.02
47612 [르포] 지진 피해 가리려는 미얀마 군부..."구호 물자 보급" 핑계로 검문 통과 랭크뉴스 2025.04.02
47611 ‘재산 신고 누락’ 민주당 이병진 의원 1심서 당선무효형 랭크뉴스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