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1234!”
EBS ‘한국기행’의 숏폼 영상으로 유명해진 일명 할머니들 건배사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1, 2, 3일 아프고 죽자(死)”는 뜻이다. 이 건배사는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의 개념을 잘 설명한다.
노화방지에 대한 열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있었다. 최근 대형 키워드로 저속노화가 등장한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연령대다. 건강관리 연령대가 중장년층에서 MZ세대까지 확대된 것. 1020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SNS X(엑스, 구 트위터)의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 회원만 약 5만9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각자의 식단을 공유하며 저속노화 흐름에 함께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저속노화 대열 합류는 유통업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편의점 GS25에서는 지난 1월 잡곡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60.7% 증가했다. 단순당과 정제곡물 대신 푸른잎채소와 잡곡 위주 식사는 저속노화 식단의 기본이다. 편의점을 찾는 상당수가 젊은 세대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관련 식품의 배달 주문도 늘고 있다. 배달의민족 장보기 서비스인 B마트의 지난 2월 ‘건강·식단관리’ 카테고리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약 30% 증가했다. 마켓컬리의 잡곡 상품군 역시 지난해 연간 판매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
젊은 세대들의 인식 변화가 저속노화 트렌드의 한축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에는 건강보다 미용을 중시하는 원푸드 다이어트가 유행했지만 MZ세대가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수명연장으로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성인병에 걸리는 MZ세대도 많기 때문이다.
젊은층의 성인병 환자 수는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최근 5년간(2019∼2023년) 당뇨병 진료 현황을 보면 20대 당뇨병 환자는 33.1% 급증했고 10대는 23.7%, 10대 미만도 25.9% 늘었다.
또 지난해 12월 발표된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제9기 2차연도(2023년) 결과 남성은 20대(19세 포함·42.8%→43.9%), 여성은 20대(18.2%→22.1%)와 30대(21.8%→27.3%)에서 비만증가가 두드러졌다.
정희원 교수는 부모 세대가 50~60대에 경험했던 성인병을 젊은 세대가 10~20년 빨리 겪게 되면서 저속노화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부모 세대보다 빨리 늙고 있다는 위기감이 저속노화 트렌드에 불을 지핀 셈이다.
SNS도 저속노화 트렌드 확산에 한몫했다. 정 교수는 X에 저속노화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면 본인의 계정으로 재게시하고 유행하는 ‘짤’로 답변하기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정 교수는 “저속노화가 일종의 밈이 되어 재밌게 따라 할 수 있는 놀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SNS가 저속노화 실천의 주요 활동 공간이 되면서 건강정보에 대한 MZ세대의 접근성도 높아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마라탕이나 탕후루처럼 자극적인 음식을 추구했던 기존의 마케팅을 포화상태로 판단하고 웰니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인간의 노화방지에 대한 욕구는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반짝 유행하고 사라진 F&B 제품들과 다르게 저속노화 식단 유행은 장기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속노화는 정희원 교수가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개념으로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그는 “노화 자체를 막을 순 없지만 그 속도는 조절할 수 있다”며 “노화 속도를 지연시켜 만성질환이 오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고 그 기간도 짧게 만드는 것”이 저속노화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